좋아하는 소설

이청준 '서편제'

clint 2023. 3. 24. 18:25

 

<서편제>는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이하는 소리꾼과 그의 딸 이야기에서 소리에만 미쳐 살아가는 소리꾼이 그 딸 또한 소리장이로 묶어두기 위해서 두 눈을 멀게 하는 끔찍한 장면을 통해 조성된다. 딸이 잠자는 사이 두 눈에 청강수를 넣은 것인데, 그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 쪽으로 옮겨가 목소리가 비상해진다는 것이다. 좋은 소리를 위해 일부러 눈을 멀게 한다! 여기에 사람의 눈보다도 더 귀중하게 여겨지는 소리의 중요성이 나타나고, 소리에 대한 우리의 전면적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청준이 즐겨 사용하는 소설구성, 즉 소설의 작중화자와 주인공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방법을 통해서 진술되고 있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적한 길목 주막이 소릿재 주막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이곳에 소리꾼 여인과 북장단을 치는 사내가 나온다. 여자는 혼자 사는 그 집의 주인이고 사내는 하룻저녁 손님이다. 춘향가, 수궁가 등을 들으며 소리에 빠져들어간 손님의 재촉에 의해 여인은 그녀에 앞서 소리를 하다가 이제는 죽은 어느 남정네 소리꾼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소리꾼은 어린 딸 하나와 더불어 동가숙 서가식 하면서 소리를 하다가 죽어간다. 그가 죽고 난 뒤 소리는 어린 딸에게 이어졌는데 그 딸의 소리에서 사람들은 애비 소리꾼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한편 이야기의 진행은 애당초 소릿재 주막에 들른 손님이 원래 그 소리꾼의 의붓아들이었음을, 그리고 그의 딸 역시 의붓동생이었음을 밝혀간다. 말하자면 소리꾼은 주막손님의 어머니가 관계했던 남자였고, 그 딸은 그 결과로 태어난 소생이었던 것이다. 주막 손님은 주막 여인의 전언을 통해 의붓아버지와 의붓동생의 비극을 알게 된 것인데, 아버지에 의한 여동생의 실명은 그 비극의 정점을 이룬다. 여기서 여동생의 실명 원인이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된다. 즉 의붓아비와 의붓 여동생, 그리고 그 손님 사이의 관계에는 일종의 긴장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은 아비가 그 손님의 친어미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증오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는 딸을 낳다가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의붓아비에 대한 살의를 갖게 되고, 그 살의는 현실적으로 그를 의붓아비에게서 떠나게 한다.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소설은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은밀하게 설명한다.

사내의 소리는 또 한 가지 이상스런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에게 살의를 잔뜩 동해 올려놓고는 그에게서 다시 계략을 좇을 육신의 힘을 몽땅 다 뽑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녀석이 정작 그의 부푼 살의를 좇아나서 볼 엄두라도 낼라치면, 사내의 소리는 마치 무슨 마비의 독물처럼 육신의 힘과 부풀어 오른 살의의 촉수를 이상스럽도록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곤 하였다. 그것은 심신이 온통 나른하게 풀어져 버리는 일종의 몸살기와도 비슷한 증세였다의붓아들은 그렇게 의붓아비 곁을 떠났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 딸 역시 아비곁을 떠날까 두려워 아비가 딸의 눈을 빼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소설가 이청준이 1976년 집필한 소설이다. 영화 서편제의 원작이기도 하다. 원래는 단편 연작인 '남도사람'에 수록된 단편소설로 한()과 소리, 억압과 예술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후에 소설집 제목을 서편제로 변경하기도 하였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방랑하는 소리꾼이 아들과 딸 남매를 데리고 판소리를 가르치기도 하였지만 나중에 아들이 방랑에 불만을 품고 아버지와의 실랑이 끝에 이탈하고 딸마저 이탈할까를 우려하여 아버지가 그녀에게 딸이 잠자는 사이 두 눈에 청강수를 넣어 눈을 멀게 한다. 결국 딸은 앞 못보는 장님이 되지만 소리는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와는 달리 원작만의 분위기가 있으며 영화의 경우 일부 내용을 각색하여 소설에는 나와있지 않은 내용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원작소설에는 영화에 없는 부분이 더 많은데, 이것은 일부분만 영화화 되었기 때문이다. 남도사람은 다섯 편의 연작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영화 '서편제'의 원작은 1 "서편제" 2 "소리의 빛"부분이다.

'좋아하는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메로스 '일리아드'  (0) 2023.03.27
이청준 '소리의 빛'  (0) 2023.03.26
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0) 2023.03.22
정명섭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1) 2023.03.21
테드 창 '지옥은 신의 부재'  (0) 202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