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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clint 2023. 3. 22. 18:51

 

1=2

1 2와 같다는 증명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증명은 a=1, b=1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a=2a로 끝난다. 

이 증명의 중간에 눈에 안 띄게 숨어있는 게 있는데 바로 0으로 나누기이다.

0으로 나누는 것을 인정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두 수도 같다고 증명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문단이 특이하다.

1, 1a, 1b / 2, 2a, 2b ~9, 9a, 9b까지 그러니까 내용에 따라 27개가 3개의 묶음으로 되어있고, 숫자만 있는 가장 먼저 나오는 문단은 수학적 증명이 기술되어 있다.

르네는 수학 교수다. 처음 장면은 르네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모습. 사실 그녀의 상태가 좋아진 건 아니지만 퇴원하기 위해 의사를 속였다. 그녀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1 2와 같다는 증명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남편인 칼은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고 하지만 날카로워질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1=2'라는 증명의 잘못된 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 어떤 증명보다 아름답고 정묘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이 세계의 수론은 잘못된 것이며 이 세계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하고 혼란스러워한다.

하루는 르네와 칼이 호텔 예약 건으로 다투게 된다. 칼이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던 일에 르네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칼을 원망하면서 수면제를 먹고 죽고 싶다는 말까지 내뱉는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를 향해 모순이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다고 외치며 그녀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4일 뒤, 칼이 집을 나섰다가 깜빡 잊은 사진 상자를 찾으러 갔다가 발견한 쪽지를 보고 불길한 일이 있어났음을 직감한다. 르네가 있는 방문을 두드리면서 칼은 기시감을 경험한다. 바로 고등학교 시절 건물 옥상에서 자살 시도를 하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친구가 그러면 안 된다고 외치는 광경과 옥상 문 반대편에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안에서 르네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자살미수칼은 같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건강한 사람이 된 것은 그의 상처를 아물 수 있도록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로라. 이제는 생사도 알 수 없는 과거의 연인이지만 그는 마음속 깊이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고, 공감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도 그녀였다. 그 사랑과 공감하는 방식은 그의 세계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친구들을 예를 들면서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공감과 감정이입이란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6년의 걸친 결혼생활 끝에 칼은 더 이상 르네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단순히 사랑이 식은 차원이 아닌 칼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마치 르네의 세계가 자신의 증명 때문에 무너져 내린 것처럼, 칼은 본인 스스로를 특징 지었던 공감과 감정이입의 능력을 르네에게는 느끼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무너뜨린다. 르네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그런 사람에게 곁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경험적인 것이고 피한다면 지울 수 없는 죄가 될 것임을 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지 않는 르네 곁에 머무르기로 한다. 스스로를 위선자라고 칭하면서, 그리고 르네에게 가지고 있는 건 오로지 책임뿐이라고 말하면서르네의 "그 느낌을 당신에게는 전할 수 없었어. 내가 마음속 깊이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고 그걸 증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이 말에 칼은 자신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자기도 알며 자신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그가 마음속 깊이 믿고 있던 자신의 인간상이 그녀와 이 상황을 통해 무너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떼어놓은 감정이입이라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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