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닐은 어느 날 천사의 강림으로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잃었다.
평범하게 신을 믿지 않고 살면서 평범하게 스스로 지옥에 갈거라고 믿었던 닐은
신을 믿고 천국으로 간 아내를 만나기 위해 신을 사랑해야만 하게 되었다.
아내를 만나기 위해 신을 사랑해야 하지만,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수 없는 신을 사랑할 방법을 고민하다,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확신해가던 닐은,
천사 강림 때 나타나는 천국의 빛을 보면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닐은 천국의 빛을 볼 확률을 높이기 위해 천사가 주기적으로 강림하는 성지로 향한다.
묘사되는 시대가 현대와 다를 바 없고 천국과 지옥 이야기라서 어디가 SF인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바빌론의 탑처럼 이런 식으로 동작하는 우주가 있다는 공리를 깔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쓴 픽션의 구조라는 점에서 SF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SF냐 아니냐를 떠나서, 종교, 특히 기독교의 교리가 갖는 의미들을 상당히 신선한 관점에서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재밌게도 천국과 지옥이 실재할 뿐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현실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거울 세계기 때문. 작중 등장하는 천사 강림이나 지옥의 설정이 매우 독특하다. 천사 강림은 재난과 같이 일어나지만 동시에 기적이 일어나며, 강림 이후에는 통계가 나와 몇명이 은총을 받고 몇명이 강림에 휘말려 사망했는지 보여준다. 재난의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라 연속적인 번개를 지상에 때리기도 하고, 회오리 바람에 지진에 난리가 난다. 작중에서는 반쯤 토네이도 같은 취급으로 현실의 스톰체이서들처럼 천사의 강림 유력 지역을 예측하고 천사가 내려오는 순간 열리는 틈으로 비추는 천국의 빛을 쫓는 사람들도 나온다(이들을 라이트시커라 부른다). 지옥의 경우 가끔씩 지상에 지옥의 풍경이 펼쳐지는 식으로 보여지는데, 불지옥이거나 그런게 아니라 평범하게 영원한 삶을 사는 지옥 주민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끔씩 보이는 타락 천사들(악마)에게 사람들이 물음을 던져도 단지 "너희 일은 너희가 결정해라"라고 알 수 없는 말들이나 해댄다. 성지에서 강림한 천사를 자동차로 추격하던 닐은 운전 실수로 사고를 내 죽어가지만, 그 순간 가까스로 천국의 빛을 본다. 그리고 이 세상 우주 전체에 깔린 신의 사랑에 대해 깨닫게 된다. 존재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음과 그것들 전부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된 닐은 그야말로 진정한 신앙자로 변모하게 되고 이로서 천국에 도달할 적합한 자격을 갖춘 듯 했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한 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자살했다고 해석해서인지 명확히 작중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이 말하듯 지옥은 말 그대로 신이 부재하는 공간이다. 그에 속하게 된 닐은 빛을 본 후부터 죽기 직전까지 찰나의 순간 동안 어느 것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신을 어느 것에서도 느낄 수 없게 된다. 고통도 모두 축복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옥에 떨어짐으로써 시야를 되찾았지만, 어느 것에서도 신을 느낄 수 없다는 고통에 눈을 뜨는 것조차 할 수 없어진다. 그럼에도 닐은 신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면 진정한 신앙을 갖게 된 닐은 설령 신의 보답이 없다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 영겁의 시간 동안 닐은 신을 사랑하지만 정작 닐 자신은 신이 없는 지옥에 있기에 신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는 고통에 빠진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닐은 비탄에 잠긴 채 계속 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 않고, 자비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기다 닐은 천국에 갈 수 있다 한들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되는 진정한 '신앙심'을 갖게 된다.
테드 창 '지옥은 신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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