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수"는 1985년에 출간되어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천만 부 이상 팔려 나감으로써 작가에게 작가적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안겨준 쥐스킨트의 첫 장편 소설이다. 독일인 특유의 내면 지향성, 철학과 문학이 혼합된 듯한 난해한 내용 등으로 너무 어렵고 지루하다고 외면 받던 독일 소설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며 독일소설로는 오래간만에 출간되자마자 독일어권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확고하게 차지한 바 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은 18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극히 예민한 후각을 타고난 냄새의 천재의 짧은 일대기를 담고 있다. 스스로는 아무런 체취도 없으면서 세상의 모든 냄새를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사악한 주인공이 최상의 향수, 즉 가장 좋은 체취를 얻기 위해 스물다섯 번에 걸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집념의 일생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 소설의 재미는 첫째, 소재의 특이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향수라는 달콤하고 이색적인 소재와 악마적인 주인공의 행태가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향수의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생활에도 이미 냄새에 관한 문제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유럽 문화에 있어 향수의 의미는 각별한 것이었고, 악취 문제와 연결된 향수의 발달사는 흥미롭기만 하다. 거기에는 향수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자료 수집과 전문가적인 구체적인 묘사가 튼튼히 뒷받침되고 있다. "향수"를 쓰던 시절, 파리에 있던 쥐스킨트의 다락방에는 18세기 파리의 대형 지도가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었고, 그는 수시로 향수의 도시 그라스로 취재여행을 떠났었다고 한다. 둘째로, 이 소설을 통해 18세기의 풍속도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향수를 만드는 장인들,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지식인들, 부를 축적해가는 시민 계급,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평민 등이 역사를 전공한 작가의 손을 통해 생생한 인물들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칫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소재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작가의 치밀한 문장력이다. 쥐스킨트는 작품을 읽어 나가는 동안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스피디한 전개는 일단 책을 손에 들면 놓아주지 않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이런 여러 측면들이 어우러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미 단순한 베스트셀러로서만이 아니라, 문학성까지 갖춘 현대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움베르트 에코 이 후 유럽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관례를 깰 정도로 전 세계 출판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가', '그의 작품은 내용은 빈약한데 형식적으로는 끔찍스러움을 추구하는 요즘의 작품들과는 다르다.', '탁월한 심리 분석을 밀도 있는 필치를 통해 소설로 완성시킨 이 시대의 독보적 작품' 등의 몇몇 서평만 보아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쥐스킨트의 작중 인물들은 우울하고 내향적인 성격에 사교를 싫어하는 작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고독하고 소외된 인간들이다. 물론 이 점에서는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도 예외가 아니다. 비록 천성적으로 사악한데다가 스물다섯 번의 살인까지 저지르긴 했지만, 그는 어느 측면에선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다. 때론 혐오스럽고, 때론 가련한 인물 그르누이의 행적을 통해 그려지는 향기의 세계에서 많은 즐거움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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