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성희 '매기의 추억'

clint 2016. 8. 26. 14:19

 

 

 

* 이 작품은 정태원 역, 츠츠이 야스다카의 단편소설 그녀들의 쇼핑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습니다. ((J 미스터리 걸작선), 태동출판사, 1999)  

 

현선, 명자, 민자, 선민, 중년이 된 여고 동창생 4인은 모교 발전기금을 모은다는 명목 하에 부자로 사는 동창생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집 주인 성자는 골프 투어 중으로 아직 귀가하지 않았고 그녀들을 맞이하는 것은 연변 출신의 가정부 아줌마뿐이다. 주인의 도착은 점점 늦어지고, ‘연변 댁마저 개인 사정으로 외출해 집을 잠시 비운다. 여자들은 차와 와인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오가는 수다 가운데 그녀들 사이의 해묵은 감정들이 드러난다. 시간은 흐르고 성자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냉장고를 뒤지고 드레스 룸을 엿보는 등 점점 대담해져 간다. 집 주인은 끝내 오지 않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결핍을 엿본 연변 댁을 상대로 엉뚱한 화풀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절망, 그리고 욕망을 누군가는 이해해 줄 것이라는 안타까운 희망만이 남아있다.

 

 

 

 

 

<매기의 추억>은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여고동창생 4인이 부자인 한 친구의 집에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하지만 작품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녀들의 단순한 아줌마 수다 정도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격정적 변화기에 피 끓는 20대를 살아낸 486세대 작가는, 자신의 또래 아줌마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자연스레 끌고 들어와 자신과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세밀하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 사십대가 처한 도덕적 붕괴와 현실에 대한 환멸의 현주소를 색다른 시각과 소재로 담아내고 있는 <매기의 추억>은 그 제목과는 이질적으로 빈부의 양극화, 승자 독점의 사회적 현상 앞에서 불안과 피해의식을 느끼는 개개인의 의식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절망감을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그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다.

 

 

 

 

 

 복잡하지 않은 플롯이지만 그것을 힘 있게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내공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장성희 작가의 꿈속의 꿈에서 보여주었던 역사와 여성 심리에 대한 성찰, 그것의 집요한 추적은 이 작품에서도 일정 부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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