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조정일 '펭귄'

clint 2016. 8. 15. 15:40

 

 

 

한때 배우였지만 현재는 남극 세종 기지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는 석기는 같은 과 후배 미래를 남극에서 만난다. 미래 역시도 한때 배우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펭귄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첫 장면은 미래가 기지에서 나와 기지 주변을 산책하며 풍경과 펭귄들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방한복 차림을 하고 남극을 돌아다니며 남극에 사는 생물들 이름을 연결하고 춥다고 독백을 하는 미래의 대사를 들으며 체홉의 <갈매기>에서 꼬스쟈가 처음에 쓴 희곡의 대사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정말 갈매기의 대사가 나왔다. ~~~ 호숫가-남극, 갈매기-펭귄, 니나-미래, 꼬스쟈-석기... 이 작품은 <갈매기>의 오마주로구나.

 

 

 

 

혼자 남극을 산책하는 미래를 찾아 나온 석기. 미래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석기를 우러러보았다.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고 존경했다. 하지만 석기는 그런 미래가 부담스럽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말하는 미래. 하지만 석기는 배우의 꿈을 접은 지 오래고, 뭐든지 너무 긍정적이기만 하고 소란스러운 미래가 짜증이 날 정도다. 지금도 그녀를 찾아 나온 것은 미래가 걱정이 되어서라기보다 자꾸만 대열에서 이탈하는 그녀를 챙기라는 대장님의 지시 때문이었고, 고된 업무로 지치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 쓰려니 굉장히 피곤하다. 무엇보다도 무엇에나 열심인 그녀의 눈빛은 마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해서 싫다. "선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아무리 '이젠 정신 차리고 배우 나부랭이의 꿈은 접었다.. 군대가 살렸지. 요리하는 능력을 개발해 주었으니... 이젠 좋아, 안정적이고...' 등등을 말해봐야 소용없다. '그러게... 난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석기처럼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고 변명해 보지만 답은 그도 알고 후배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래를 잃어버린 자의 현재라는 걸.

 

펭귄은 춥고 황량한 남극을 배경으로, 서툰 인생을 살아가는 두 남녀를 이야기한다. 한때 그저 그런 배우였으나 남극의 요리사가 된 석기와 외로움이라는 상처를 품은 석기의 후배 미래가 등장한다. 극한의 상황은 우리의 보통 삶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인생에서 누군가의 체온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펭귄으로 열연하는 배우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곱씹어보면 좋을 독백으로 극을 채운다.

 

 

조정일

 

 

 

조정일

 

연극 [달의 뒤쪽] [산토끼] 등과 창작연희극 [자라] [만보와 별별머리] 등을 발표했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분에 당선된 시인이기도 하다. 연극과 연희극, 음악극에 관심을 두고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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