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기다리는 아내를 위로하며 레스토랑의 남편은 오늘 찾아왔던 젊은 손님들의 이야기를 해준다. 온통 겨울을 짊어지고 온 듯한 텅 빈 눈동자의 소녀와 겨울엔 어울리지 않는 꽃을 든 소년이 레스토랑에 찾아와, 몇 번이고 오늘 크리스마스 특선 메뉴가 되느냐고 물었던 일이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오늘 중절 수술을 한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 연인들. 예상하지 못 했던 사연에 놀랐고, 특히 소년의 이야기에 놀랐다. 여성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낙태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남성의 시각에서 표현되는 이야기는 사실 거의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남성이라고 그런 경험이 아프지 않을 리는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세밀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것처럼 암묵적으로 이런 일에는 아파도 침묵해야 한다고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씨발, 그런 게 어디 있어? <크리스마스 특선>에서 소년은 소녀보다 더 감성적으로 아파하고 표현한다. 오히려 소녀가 훨씬 이성적이다. 남 작가인 천정완의 작품이다.
아이를 지운 어린 커플에게 크리스마스 특선 식사를 대접하는 레스토랑 주인, 그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이 겨울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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