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명숙 '두 아이'

clint 2016. 7. 20. 15:50

 

 

 

부부. 그들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아내가 슈퍼에 갔다 오자, 딸이 둘이 돼 있다. 생김새, 말투, 행동이 자로 잰 듯 똑같은 두 아이. 부부는 이 엄청난 사건 앞에 망연자실한다. 두 아이는 서로에게 질투와 미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원수처럼 할퀴고 싸운다. 둘 중 하나는 진짜고 나머지 하나는 가짜. 누가 과연 진짜 딸일까. 어느 날 갑자기 둘이 돼버린 딸, 게다가 서로 죽일 듯 미워하는 두 아이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둘 중 유전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아이를 선택하고 다른 아이는 버려야 할까? 부부의 심각한 고민에는 대책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입구가 있으면 반드시 출구가 있는 법.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처음 둘이 됐을 때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아이는 다시 하나가 된다. 비로소 상황이 종료됐다고 안도하는 부부. 그러나 죽은 아이가 가짜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어쩌면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닐까? 누가 진짜 딸일까? 아니, 어떤 게 진짜 나일까.

 

여섯 살배기 딸이 하나 있는데, 딸을 키우다 보면 문득문득 그 아이가 무척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부모들은 자식이 자기가 가르쳐준 것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때때로 그것을 뛰어넘는 행동을 한다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하면 너무 당혹스러워서 얘가 내 딸이 맞나싶을 때가 있어요. 일단 아이디어는 그런 경험에서 얻었죠. 물론 그건 아주 단순한 동기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자아의 내면에 있는 이중적인 모습과 실존에 관한 문제예요. 내 안에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이 공존하잖아요. 그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진실 된 나인지 몰라서 그것을 찾으려고 헤매고, 때로 비로소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찾았다고 할 수는 없는그런 고민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대학원 시절 그저 경험 삼아 응모했던 것을 포함해 이번이 신춘문예에 두 번째 도전이라는 최명숙 씨는 그동안 주로 희곡, 시나리오 등을 습작해왔다. 가끔 단편소설을 써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문학 쪽으로는 아직 자신이 없다는 그녀는 사실 연극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서울예고와 연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고교 시절부터 끝없이 계속됐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가 당연히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했으나, 예고 재학 시절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예고라는 특수한 환경 탓도 있었지만 소위 부르주아적인 학생들의 모습에서 느낀 괴리감도 컸고, 과연 음악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도 들었다. 사춘기 소녀다운 순수한 생각에, 뭔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유명한 연주자가 된다고 해서 그것이 개인적인 명성과 화려한 생활 외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였다. 또 한편으로는 피아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자신 안에 꿈틀대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연극에 대한 허기를 채워보고자, 연극 동아리인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다. 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연극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한양대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때 바로 대학로에 갔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들지만, 대학원에서 받았던 체계적인 수업이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녀가 대학원에 다니던 당시, 학부에는 설경구와 권해효, 조혜련 등이 있었는데 필수로 들어야 하는 학부 수업 때문에 종종 그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겠다고 생각한 건 95, 극단 유 시어터에 들어가면서부터. 일종의 연수생 자격으로 몇몇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연극인 날 보러 와요에서 여기자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연극 택시 드리벌에서 실연당한 여자 승객 역으로 출연, 외모와는 달리 푼수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난타팀이 처음 배우를 캐스팅할 때 택시 드리벌에서 그녀를 눈여겨본 관계자의 제의로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되기도 했다. 후에 극단과의 마찰로 난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몇 달 동안 연습까지 다 맞췄던 그녀로서는 그 일이 적잖은 상처가 됐다.

 

숨겨진 끼요? 없다고는 말 못 하죠.(웃음) 얌전할 것 같고 침착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지적이거나 차분한 역할을 하면 좀 어려움을 느껴요. 반대로 푼수 같은 역할을 하면 훨씬 편안하고 재밌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엉뚱한 구석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덤비는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한편 그녀는 최근까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와 구성작가로 일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지방 대학의 홍보용 광고 등 주로 라디오 광고 카피를 많이 썼고, 국립박물관이나 문화보존협회 등에서 만드는 영상물이나 코엑스 등의 기업 홍보물 제작 시 구성작가로 활동했다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최근 2~3년 의 일. 작가 양성 학원 등에서 따로 훈련을 받은 적은 없다. 그저 관심 가는 대로 책 읽고, 영화 보고 많이 써보고 한 것이 공부라면 공부였을 뿐호기심 많은 그녀는 그만큼 글로 써보고 싶은 관심 분야도 다양하고 의욕적이다. 피상적으로만 알려져 있는 역사적 인물을 찾아서 재해석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런 인물들의 인간적인 삶을 조명해본다거나 색다른 각도에서 그들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것. 또한 음악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꼭 써보고 싶다. 음악의 순수성과 자신 사이에 늘 존재 좁아지지 않는 간극과 그로 인한 고뇌를 작품을 통해 얘기해보고 싶다. 한편으론 과학소설이나 미스터리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공부가 많이 필요한 어려운 장르이긴 하지만, 그런 장르일수록 많은 상징을 내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단다. 물론 드라마나 휴먼 스토리에도 관심이 크다.

 

매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소감을 읽으면서 마냥 부러웠죠. 그런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 부담이 크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부터는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말이죠. 반면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에요. 그전까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위축되기도 했는데,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뭔가 희망을 주었다고 할까요.”

 

연극 연출에도 관심이 많다는 그녀는 지난 가을, 우연히 기회가 닿아 천안에 있는 정신병자 수용시설 성심원에서 연극 치료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연극을 통해 특정한 갈등 상황을 설정해 환자들 간에 토론을 유도하고 자연스럽게 표현 기능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마음에 병이 생긴 연약한 영혼들의 순수함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그녀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올봄에 다시 한 번 연극 치료 프로그램을 맡아보고 싶었다는 그녀는 뜻대로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예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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