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의 ‘서글픈 재능’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한 농부가정의 이야기다. 힘들게 돈을 모아 첫째 아들인 만표를 공부시켜놨더니 하라는 글은 쓰질 않고 소싸움이나 하고 있어 아버지와, 특히 둘째아들인 천석에게 미움과 원망을 사게 되는 것이다. 천석은 장가를 가려고 하나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혼인식을 뒤로 하고 먼 곳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려고 하고, 이런 심난한 상황에서 만표가 소싸움에서 일등하고 집에 들어온다. 복장이 터지는 아버지는 만표더러 나가라고 하고 만표가 그저 안타까운 어머니는 감싸기에 바쁘다. 마침내 면전에서 천석에게 ‘나는 무식해 모르겠지만은 공부하는 내 친구가 그러는데 형이 글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 만덕은 ‘내가 재능이 없어 아무리 글을 쓰고 대회에 응시해봐도 번번이 낙방이라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할 줄 아는 것이 소싸움밖에 없어 그렇게 했다’는 말을 남긴 채 짐을 싸서 집을 나간다. 만표가 나간 뒤에 천석의 장인이 나타나 돈을 마련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알고 보니 만표가 자신이 일등해서 얻은 소를 팔아 그 돈을 고스란히 천석의 장인에게 준 것이었다. 어머니는 울고 아버지는 주저앉고 천석은 몸이 돌처럼 굳어있다. 그날엔 돼지가 힘겹게 새끼를 낳는다.
평민의 일상을 그대로 다루면서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과 개인의 말 못할 사정을 잘 다루었다. ‘서글픈 재능’이라는 제목은 극의 전체적인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아주 중요한 무엇이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진지한 감상과 그에 따른 여운 때문일 것이리라.
<추석>(일명 「서글픈 재능」 『문장』 40.11)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 모작적인 성향이 가장 짙게 드러나 있다. 머레이(Murray.T.C)의 「장남의 권리」는 근면한 농부 부부와 성격이 다른 형제를 중심으로 엮은 작품으로서, 모친의 장자에 대한 편애로 천성이 농부인 차자가 집을 떠나려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친은 농사일에 적합하지 않은 장자를 미워하게 되며, 아일랜드식 하키경기에서 장자의 우승으로 인한 말의 부상 및 말을 사살한 사건으로 부친의 장남에 대한 증오와 부부간의 갈등은 보다 점증된다. 차자 대신에 장자에게 집을 떠나라고 하는 아버지의 명령은 재산상속을 포함한 장자권을 차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형제간의 갈등은 보다 치열해지고 돌발적으로 차자가 형을 죽이는 사태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 작품은 1941년 8월 현대극장 부설 국민연극연구소 제1기 졸업기념작품으로 공연되었다.
「추석」에서는 하키 경기를 추석날 씨름 경기로, 말 대신에 소를, 형이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출세하지 못한 것과 자신이 가난 때문에 약혼자와 혼례를 올리지 못하는 것을 차자의 갈등 이유로, 장자를 식민지시대 지식인들의 좌절의 한 전형으로, 장자가 우승으로 받은 소를 팔아 차자의 혼례비로 사용하도록 설정하거나 변용시킨 것 등이 새롭게 달라진 점이라 하겠다. 모작적인 성향이 짙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향토성 짙은 인물의 성격 추구와 현실감 짙은 대사의 재치는 그의 창조적 수용 노력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해준다.
각색 손정섭
. 각색할 때는 창작할 때와 달리 나름의 고통이 따른다. 원작자의 감성과 나의 감성을 먼저 일치시키고, 그후 새로운 감성을 또 재창출해야 하는것...아직 정도를 찾고 있진 못하지만, 대표가 의뢰해왔을 때..참 머뭇거렸다.. 원작의 사람들 사는 모습들, 그리고 추석과 가족끼리 부대끼는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 희망적인 원작의 향기를 잃지 않고 싶었다.. 참담한 상황에서 피어오르는 우리 민족의 삶 그런 거.. 구석기 시대 유물을 캐어내 복원하듯 조심스레 붓질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희망이라는 것. 그 시대의 희망이라는 것을 까먹지 않았다.. 짧게 묶여져 있는 극을 그저 우직하게 펼쳐 보이는 것만이 나을 것 같았다. 꾀 부리지 말고 순박하게.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당시 사실극 고유의 형태(어찌보면 자연주의같은) 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약간의 신파극 스타일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 같은)은 일부 손을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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