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인훈 작 '한스와 그레텔'

clint 2016. 5. 26. 21:59

 

 

 

 

 

'한스와 그레텔’은 작가 최인훈의 여타 작품과는 다르게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교적 최근의 역사를 소재로 하여 전쟁 범죄와 개인의 신념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독일의 어린이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작품 구성의 기본틀로 삼고 있으며 유태인 집단 학살에 연루된 독일 전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작품이 내포한 본질적 의도는 우리나라의 남북 분단 문제, 이데올로기 문제 등을 심도 있게 조망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도 분단 문제 해결에 한 치의 진전도 없는 상황에서 ‘한스와 그레텔’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또한 정치 사상적 신념과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적 권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갈등을 통해 개인의 존재적 가치는 결국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 작품이다.

 

 

 

 

 

 

 

30년째 정치적인 이유로 수감되어 있는 보르헤르트는 언제나처럼 간수 X에게 자신의 석방을 주장한다. X는 석방을 위해서는 세가지 선서에 동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보르헤르트는 진실을 증언하지 못하는 침묵에는 선서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보르헤르트를 생명처럼 사랑하는 아내 그레텔의 편지와 그녀가 보낸 '보리수' 음반을 받고 옛날 일을 회상한다. 1943년 아내 그레텔과 휴가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보르헤르트는 총독의 명령을 받고 급히 그를 만나러 간다. 총독으로부터 중대한 명령을 받은 보르헤르트는 이 엄청난 사실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괴로워 한다. 600만 유태인을 학살하라는 히틀러라는 악마 혼자의 생각이지 독일을 사랑하는 나치당원들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리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사랑스런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던 보르헤르트는 사상이 다른 그와 자신의 딸이 결혼하는 걸 반대해온 스토크만을 회상한다. 공산당원으로 소련에서 죽음을 당한 아버지와 어머니때문에 그리고 나치즘에 매력을 느낀 청년이었던 보르헤르트는 사상의 양보없이 그레텔의 사랑을 얻어 결혼에 이른다. 사상에 이르게 하는 손과 사랑에 이르게 하는 손을 맞잡고 언제나 밀고 당기던 보르헤르트는 이제 그레텔을 위해 한쪽 손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의 결단으로 선택된 사랑의 손은 그를 그레텔에게 이끈다. 결국 그는 X에게 그 선서에 동의한다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30년 동안 자신을 기다려 온 그레텔에게 몸을 맡긴 보르헤르트. 간수로서 마지막 날을 맞은 X는 서로를 부축하고 가는 보르헤르트와 그레텔을 따라 사라져 간다.

 

 

 

 

 

히틀러의 수석비서인 한스보르헤르트는 전쟁화평교섭대표로 연합군에 파견되었다가 전범으로 투옥된지 30년이 지났다.
30년이 지난 오늘 그는 약간의 조건제시 속에 석방을 통고받는다. 과연 석방조건을 수락해야하느냐 아니면 지금까지의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계속 남아있어야 하느냐는- 즉 자기의 공적인 신념과 개인으로서의 행복의 가치 사이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 이 연극의 줄거리는 회상 장면들로 구성된다.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한스는 초창기 이념이 뚜렷했던 나치당에 들어간다. 그의 결혼대상자 그레텔은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스를 남편으로 삼을 것을 맹세한다. 그래서 히틀러의 비서인 한스는 행복한 가정을 꾸민다. 어느 날 갑자기 한스’는 히틀러’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다. 그 당시 나치 독일의 전세는 대단히 불리해져 있었다. 패전국으로 전락할 운명을 직감한 히틀러는 한스에게 명령한다.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연합국이 휴전에 응하지 않는다면 억류한 600만 명의 유태인이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휴전에 응하면 유태인을 석방함과 동시에 현 상태에서 즉시 전쟁을 종식시킨다라는 중대한 의사를 전달하려 연합국 측에 파견되었다가 한스는 곧 투옥되었고 30년이 지났다. 평범한 한 가정이 파괴되고 그는 30년을 복역한다. 이제 노부인이 된 그레텔은 가끔 면회오며, 그의 석방을 청원한다. 지난 30년 동안 계속해서 같이 생활해온 간수이자 보호책임 자인 X도 그가 석방조건에 동의하기를 바라면서 많은 시간에 걸쳐 토론과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자신들의 신분에 관계없이 깊은 인간애를 느낀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에는 반대하였으나 연합국 측이 히틀러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상에 발표도 하지 않는 것에 무수한 갈등과 회의를 한다. 한스는 마침내 결정한다. 공적인 자기의 신념과 이념은 감방에 놓아두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신은 그의 부인과 자유인으로 돌아간다.

 

 

사랑과 시간 - 최인훈 극작가

 

1941년 초 한 독일사람이 영불해협을 비행기로 건너 영국에 도착하였다. 그는 평화교섭을 위해서 왔으며 당국과의 회견을 요청하였으나 그런 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는 포로로 취급되어 1945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억류되었다가 전후에 열린 뉴른베르그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구체적 범죄사실 때문이 아니라 전범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1987년까지 베를린의 특설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그해 894세의 나이로 자살하였다. 그의 이름은 루돌프 헤스라고 하며 당시 나치 정권의 제3인자, 부통령이었다. 이것이 이 작품 '한스와 그레텔의 모델이 된 역사적 사실의 간단한 내용이다. 이 인물은 90살 넘은 노령과 그의 범죄사실의 정황 등이 고려되어 서독에서 석방 운동이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수감자의 자살로 종결되었다. 그가 하려던 평화교섭이 어떤 내용. 어떤 경위의 것이었는지는 일체 공표된 적이 없다. 관계정보는 영국 정부의 관리하에 있으며 2010년 이후 기밀해제 규정에 정해진 시점에서 공개되리라고 한다. 헤스의 이야기는 나에게 상상을 보태어 그의 운명을 다루어 보고 싶은 생각을 이르켰다. 20세기 유럽의 정치정세를 특이한 관점에서 성찰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의 구체적인 진행은 전혀 필자의 상상일 뿐이다. 모델과는 달리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는 결국 석방되는 것으로 처리하였다. 논픽션이 아닌 허구의 권리로서 한 인간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지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델에게 지워진 혐의도 정치적인 일반책임을 넘어선 구체적 범죄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지나친 변형을 가했다는 추궁도 받을 이유는 없게 처리하였다고 믿는다. 장기수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었던 일이므로 전혀 생소한 문제도 아니다. 역사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생각해보려고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80년대에 그때의 문예회관 소극장이던 지금의 아르코극장에서 '창고극장'에 의해 초연된 바 있다. 20년이 지나 같은 극장에서 공연되게 되었으니 그것도 재미있는 우연이지 싶다. 무대와 관객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기대한다. '번역극'의 내용을 가진 창작극'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아는 독일 전래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부모에게 버려진 남매가 자신들의 슬기로 마녀의 손에서 벗어난다. 이 작품의 한스와 그레텔은 그들 사이의 사랑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운명을 이겨낸다. 현대의 마녀인 정치의 포로가 된 한쌍의 남녀에게 상상의 시공에서나마 해방을 선사하고 싶었다. 관객여러분도 찬성해주실 무대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