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영범 '방문'

clint 2016. 5. 27. 16:09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 막내 아들의 시선으로 시작해 가족 사이에 맺혀 있던 갈등과 오해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간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미국에서 오랜 시간 살던 진영은 목사인 형 진석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한국 집으로 돌아온다. 목사인 아버지와 형과 달리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진영은 변하지 않은 형의 모습과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과거의 추억에 잠긴다. 진석은 동생이 온다는 소식에 고기를 재우며 음식을 준비하지만 진영은 형의 행동 속에서 평소와 다른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마침 형과 아버지 교회의 또 다른 목사인 재희가 집을 방문한다. 재희의 방문으로 진영은 그동안 교회에서 낯선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옛 연인 혜원이 남자친구인 건축가 기호를 데리고 집을 방문하면서 썰렁했던 집은 사람들의 말소리로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한다사람들이 집안을 하나 둘 채워가지만 그럴수록 그들 사이에는 빈틈이 드러난다. 서로가 안다고 생각한 상대방과 진짜 그들 모습 사이에 괴리감이 드러나면서 오랜 시간 마음에 묻고 있던 갈등이 터져 나온다. 이 가운데 동생 진영은 그동안 몰랐던 형과 아버지의 현재와 맞닥뜨리게 되고 아버지와 형을 향한 마음의 매듭을 풀어간다.

 

 

 

 

 

가족의 화해를 다루는 작품이다. 과정 속에는 노릇노릇 구워지는 음식이 함께한다. 극 초반 진석이 동생을 위해 굽기 시작하는 고기는 극이 끝나갈 때쯤 알맞게 익어 집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극 중 인물이 서로에 대해 갖는 다양한 감정은 익어가는 고기 냄새와 섞이며 객석에 보다 감각적으로 전달된다. 8년의 공백을 가진 이 가족의 만남과 화해는 모두 주방에서 일어난다. 음식과 관계의 상관관계가 방문이 던지는 주요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 과연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음식이 익어가는 느긋한 속도만큼 극 전개는 급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충분한 사이와 여백이 등장인물 간의 빈틈을 확연히 보여준다.

 

 

 

 

 

주방과 식탁이 보이는 평범한 무대, 요리 준비를 하고 있는 중년의 큰아들에게 백발의 아버지는 "! 니 동생 몇 시에 온다 그랬넌? 공항에 가봐야 하지 않갔네?"라며 호들갑을 떤다. 잠시 후 미국에서 돌아온 작은아들이 들어서서 아버지와 형을 부르지만,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돌연 자취를 감췄고 형은 오랜만이란 말을 되풀이하며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군다. 등장인물은 점점 늘어나지만 대화는 자꾸 헛돈다.

극단 풍경의 연극 '방문'(고영범 작, 박정희 연출)'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못 한다'는 소설가 김훈의 말에서 '죽음'''으로 바꿔놓은 듯한 작품이다. 7~8년 만에 귀국한 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지의 변화된 처지 앞에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다. 몰랐던 진실은 양파껍질을 벗기듯 하나씩 실체를 드러낸다. 목사인 큰아들은 내일 어머니 무덤을 이장하기로 했고, 원로 목사인 아버지는 교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잠적했다. 작은아들의 옛 여자 친구가 등장해 형이 집을 팔았음을 알리고, 급기야 아버지와 형 모두가 정상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지는데, 객석을 숨죽이게 할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슬픈 사람이고, 우는 사람이었다."는 큰아들의 토로는 가족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소통의 실마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추천의 글

낯설다. 번역체를 구어로 바꿔놓은 것처럼 원가 서걱거리는 대사의 생경한 느낌? 이야기의 내러티브 역시 한곳의 소실점으로 모이지 않고 점점이 흩어져있다. 마치 인생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이라도 하듯. 일상에는 우연한 요소들이 개입하고 그 우연함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도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가슴을 툭 치고 가는 기묘한 그리움의 정체를 밝힐 길이 없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추측하건대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질게 서려있는 듯한 이 희곡은 타인사이의 소통 불가능함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극 중 진석이 옛 애인 혜원에게 털어놓듯 형이라고 발음할 때 ''이 단순한 마찰음이 아니라 '공기가 입 안에서 잠시 막혀 있다가 살짝 터져 나오는 파찰음'에 가깝듯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터져 나오는 망설임' 같은 것이 그리움일까. 언어의 철학자 비트 캔슈타인은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그에게 있어 말할 수 없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 혹은 미적인 문제 같은 인간의 내면과 관련된 것이었다. 청년 비트 캔슈타인에게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한 일이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 희곡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둘이 서로에게 간절히 말하고 싶었지만 진정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영범

-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 NYIT 대학원 영상제작 전공

주요활동경력

-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겸임교수

(연극)

- 2005<크로이체르 소나타> 단편희곡, 극단 백수광부, 연출 이성열

- 2006<새벽 448> 각색, 극단 풍경, 연출 박정희

- 2007<오레스테스> 각색, 극단 백수광부, 연출 이성열

(영화)

- 2002<낚시가다> 35mm, 13, 대본/연출, 오버하우젠 국제영화제 참가작

- 2006<모두들, 괜찮아요?> 장편극영화, 편집, 마술피리, 감독 남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