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표면적으론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위해 실태조사를 진행중인 주영이 탈북 청소년인 한결을 만나 설화를 통한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주영은 상담 과정에서 북한 주민에게 전달된 삐라에 믿을 수 없는 재질로 이뤄진 600개의 ‘변기-토일릿 보트’가 실려 있었다는 기밀 사항을 알게 된다. 믿을 수 없는 ‘토일릿 보트’에 대한 진상 조사는 결국, 믿을 수 없는 단상으로 이뤄진 현재 한국 사회의 지형도를 차례대로 펼쳐낸다. 보트 피플 혹은 뗏목 피플이 아닌 ‘토일릿 피플’이란 용어 자체부터 뭔가 상징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내재한 배변의 욕구를 '토일릿 보트'에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 결국 모두가 탈출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억압적인 장치를 돌아보게 한다. ‘토일릿’ 즉 변기는 인체공학이 아니라, 심리 공학적인 차원에서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섬광이 스치는 연극이다. 연극 ‘토일릿 피플’은 변기 타고 탈출한 탈북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모순에 찬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한결들은 그들이 겪은 극한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설화 재창작의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을 변형해 전달한다. 인물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설화와 실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관객에게 다양한 컬러로 전달된다.
특히 남한 사회에서 경험하는 ‘천민자본주의, 언론의 부패, 행정관료주의, 이념의 대립’ 장면은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탈조선을 꿈꿀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타자들은 그렇게 소환됐다.
사람을 홀려 머리를 깎게 만든다는 여우 귀신이 산다는 ‘여우굴 이야기’에서 귀신을 잡겠다, 장담하던 사내는 다름 아닌 주영이자, 그와 함께 공모한 우리 모두가 된다. 연극에서 강렬한 장면은 주영의 꿈 속에 나타난 ‘변기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선 상주들 행렬과 뱃사공’ 장면이다. 뱃사공은 요의를 느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주영에게 말한다. “마려운 게 아니니깐, 마려운 게 뭔지 알고 싶을 뿐이지.” 라고 일갈 하는 것.
막이 열리면 무대에는 심리상담 박사라는 주영이 서 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위해,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수많은 북한 난민들이 미국이 퍼뜨린 600개의 변기, 토일릿 보트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왔음을 알게 된다. 그 어떤 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 연극 ‘토일릿 피플‘은 바로 그 보트를 타고 내려온 탈북인을 말한다. 지원을 위한 상담이 시작이었지만, 주영은 어느새 토일릿 보트의 진상 조사에 더 매달리게 된다. 삐라에 첨부된 설명서에 따르면 토일릿 보트는 태풍 앞에서 UFO로 변신해 하늘을 나는 첨단 탈출 도구다. 하지만 실제 그의 재질은 한낱 욕조에 띄우는 오리 장난감과 같았고, 아이들은 말을 이리저리 바꾸며 주영의 조사를 회피한다.
토일릿 보트의 진실을 숨겨야 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남한산 토일릿 보트의 존재와 마주친다. 목숨을 걸고 남한에 내려온 사람들에게 남한은 다시 토일릿 보트를 건넸고, 그들은 밤마다 보트에 오른다는 것이다. 대체 이들을 보트에 타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보트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일릿 피플’은 2014 연극 창작산실 대본공모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트라우마 수리공’,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을 쓴 이여진 작가의 신작으로, 탈북자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담고 있다.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주어졌던 양복은 상복으로 변하고, 본질적인 아픔을 고민하지 않는 사회로 인해 사람들은 고립된다. 탈북 난민이 탄 뗏목은 토일릿 보트, 변기로 상징화되며 남한을 찾은 이들이 겪는 고충은 남한산 변기로 이어진다.
더불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전개가 극의 흐름을 풍성하게 한다. 주영과 탈북 청소년 대화 속 설화들은 환상적인 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이끌고, 그 안에서 현실을 향한 예리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남한산 보트에 오르는 탈북인과 그 보트를 찾고 싶어 하는 남한의 사람들까지. 각박한 오늘에 다치고 아파한 모든 이들이 변기를 택한다.
작가의 글 -이여진
<토일릿 피플>의 집필은 아래의 논문과 인터뷰를 직 간접적 고증으로 삼았지만 작품 속의 인물들은 실제 그 어떤 인물과도 무관합니다. '탈북 청소년의 한국 적응 사례'들은 때론 피부껍질이 벗겨지듯 괴로운 것이었지만 때론 남한 사람의 그 어떤 것보다 평범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현장에서 평생 올곧게 헌신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탈북청소년을 위해 현장에서 헌신하고 계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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