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델마와 루이스' (91년)가 한국판 패러디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제목도 비슷하게 '흉내' 낸 '달마와 류이수'이다. 수전 서랜든.지나 데이비스 주연으로 잘 알려진 '델마와 루이스' 는 남성의 폭력지배 세계에서 탈출, 자유를 꿈꾸는 두 여성의 동지적 결합을 제시한 페미니즘 계열의 명작.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강한 저항과 여성만의 연대의식을 짙게 깔고 있는 작품이다.
극단 '송도말년 불가살이' 의 창단 작품으로 선보이는 '달마와 류이수' 는 이같은 영화의 페미니즘 색채를 1백80도 비틀어 反페미니즘의 남성연극으로 만들었다. IMF시대 남성 위로용인가. 때문에 여성 주인공 델마와 루이스는 남성 주인공 '달마' 와 '류이수' 로 탈바꿈됐다. 물론 이야기도 두 남성의 '여성 탈출극' 이다. 여성들의 거센 음기에 쫓겨 산속 동굴로 피신해온 달마와 역시 아내의 구타를 피해 도망온 나약한 사내 류이수.동굴속의 두 남자는 지배계층인 여자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쉽게 의기투합,음담패설과 신세한탄,둘만의 여러가지 놀이로 여성상위 사회를 풍자·비난한다.그러다 봐서는 안될 여성들의 수행장면을 엿본 게 빌미가 되어 여성들의 토벌대상이 된다.벼랑끝에 몰린 두 사람.죽을 때까지 눌려 살 수는 없다며 여자들에게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지지만 결과는 불쌍한 최후를 재촉했을 뿐이다. 이처럼 장난끼가 다분한 희극이지만 남성 절하와 부권 상실의 요즘세태에 던지는 상호존중과 사랑이라는 따뜻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21세기 어느날 달마의 수행처가 있는 지리산 구석의 한 동굴이 무대다. 때는 여자들이 온통 세상을 쥐고 흔드는 여인왕국 '아마조네스' 의 시대다. 바로 이 곳에 아내의 외도로 세상을 떠돌던 이수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속 델마와 루이스 이상의 '혁명동지' 를 만난 것. 그러나 '세속' 에서 달마를 거친 여자중 한명이 이수의 아내였음이 밝혀지면서 둘의 갈등이 촉발된다. 이어 여자 수행자들의 반란으로 두 사람은 궁지에 몰리고, 결국 “죽을 때까지 눌려 살 필요 없잖아?” 라며 절벽 다이빙을 감행, 최후를 맞는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절벽으로 달려드는 그 영화의 마지막 명장면처럼. 그러나 작.연출의 손정섭은 “본격적인 남성주의 연극을 주창하진 않는다” 고 했다. 그저 '뒤집어 보기' 를 통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오해와 편파적 시각을 새롭게 환기시켜보자는 게 이 작품의 의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생각치고는 상당히 도전적인 데가 있다. 그동안 페미니즘 계열의 연극이 없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어쩌면 본격 反페미니즘 연극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작가의도
그간 저의 일련의 작품이 너무 심각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이번에는 연극적 재미를 한껏 부려 보고자 노력해봤습니다. 우선 행위하는 배우들이 재밌어야겠고, 보는 관객분들이 그렇고, 저 또한 눌러왔던 장난끼를 아낌없이 표출하고 싶었고요.
척박한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 그리고 여자로 부터의 탈출. 여자 남자의 문제는 참 세상사와 같아서 재밌습니다. 그 세상사를 뒤집어 상상해보는 것 또한. 이 작품 제목 ‘달마와 류이수’는 ‘델마와 루이스“란 페미니즘 영화 제목을 빗댄 것으로, 여자들 세상에서 방황하다 도망나온 두 남자의 놀이가 그 줄거리 입니다. 도피처이기도 하며 수행처이기도 한, 남성적인 힘을 느끼게도 하지만 태고의 사랑이 싹트고 그 결실인 아이를 낳아 기르던 아름다운 곳, 그 동굴이란 곳을 배경으로 남자들의 졸렬한 투쟁을 우스꽝스럽게 꾸며봤습니다. 하지만, 꼭 남녀 문제가지고 끙끙댈거였다면 이 극을 다 써내지 못했을 겁니다. 앞장서 한곳으로만 몰고가려는 흑백론, 鬪士라는 영웅주의 등을 포함해 항상 인류를 우민시 해왔던 과격하며 의도적인 그 ‘통일의지 내지 혁명의지’를 저는 많이 밉살스러워 합니다. 역시 나의 못말리는 심각 증세가 발병했고, 각종 미움들이 스며들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무척 걱정되네요. 또 재미 없는 연극 되면 어떻하나...하지만 이런 면이 이 작품의 부가적인 재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억눌린게 많은 자들에게는. 방대하고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힘들었으나, 직접 연출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지문을 생략할 수 있었던 점-지문은 사고의 속도를 자주 잡아 먹더군요, 그리고 김종훈, 강태준이라는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쓸 수 있었던 점, 극작의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달마와 류이수, 두 못난이의 고독한 행위를 이제 내놓습니다. 말하자면, 저 까지 포함해 못난이 삼형제일텐데, 프로 무대에서는 첫 연출 작품이기도 하여 무척 떨리고 그렇습니다. ‘송도말년 불가살이’ 멤버들과 특히 차기 공연 극작연출이면서 조연출을 맡아준 박주리, 부대표 강승환, 그리고 앞으로 계속 파트너가 될 작곡의 박안나님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봐주시고 거침없이 질책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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