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옛 애인을 만나고 있다면 분노하지 않을 남편이 얼마나 될까. 열애기」속의 남자도 당연히 그러하다.
출근할 때는 정장을 하지만 집에서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방바닥을 뒹구는 평범한 30대. 그러나 앰하게 당하는 아내는 기가 막힐 뿐이다. 대학 때야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세상만사에 대해 고뇌하는 옛 애인이 멋있어 보였지만,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집 한칸 장만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아닌가. 여기에 여전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만 빠져있는 무능력한 옛애인이 폐인이 되어 나오고, 제 식구는 끔찍이 생각하는 기둥서방과 열정적 창녀가 등장한다. 사랑에는 여러가지 색깔과 형태가 있다는 것이다..
,98 연희단 거리패 연출김광보로 공연 인물수T5,, M3,, F2
90년대 중반 서울 성북구를 배경으로, 경찰과 성매매업소의 진흙탕 싸움을 기반으로 한 ‘열애’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저 멀리서 쿵쾅거리며 걸어오는 남자, 그리고 그를 잡아끌며 웃음을 흘리는 창녀가 있다. 남자는 그녀를 거칠게 뿌리치고는 아내가 있는 집-집이랄 것도 없는 방 한 칸짜리-으로 들어온다. 조명은 집 안을 비추고, 그 안에서 아내는 분주하게 고지서를 확인하고 있다. 남자는 그녀에게 다가가 대문에 끼여 있던 편지를 던지며, 어린 시절의 사랑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여자는 한낱 어린 시절 잠깐 친했던 남자라며 얼버무리고, 그런 여자의 태도에 더 화가 난 남자는 거칠게 여자를 잡아 흔들며 그녀의 사랑을 바라고, 여자는 질렸다는 듯 화 내면서도 남자에게 ‘당신만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한편,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기둥서방과 그에게 잡혀 살다시피 하는 창녀는 오늘도 몸을 팔아 돈을 벌 궁리에 빠져 있는데, 기둥서방이 다른 곳으로 간 사이 창녀는 거리에서 방랑하는 거지와 이야기하며 남몰래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둘은 갈 곳 없는 서로를 위로해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거지가 다음 날 떠날 것이라고 말하니 창녀는 마음만 주고 떠나가려는 그가 미워서 자꾸만 모진 말을 한다. 거지는 창녀의 이름을 물어보지만, 그가 미워진 창녀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때,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본 기둥서방은 불같이 달려와 거지를 때리면서 꺼지라고 소리 지른다. 돈도 안되고 더러워서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창녀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떠나보내고는 다시 웃음을 팔며 몸을 판다.
그날 밤, 남자는 여자에게 화해를 시도하며 그녀를 끌어안지만, 편지의 주인공인 옛 사랑이 자꾸만 떠오르는 여자는 흐느끼며 그의 손길을 피한다. 이에 격노한 남자는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며 집을 나가고, 술에 한껏 취해 창녀에게 돈을 주고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 사이에 여자의 집에는 여자에게 편지를 줬던 옛 사랑이 나타나는데, 그는 다름 아닌 거지였다. 거지는 옛날 우리가 했던 약속을 기억하냐고 물으며 그녀에게 꽃을 건네지만, 이미 결혼을 해버린 그녀는 문도 열어주지 않고 창문만 비죽 열어둔 채 그를 외면한다. 그들은 각자의 옛 추억을 되새기며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 주저앉아 슬퍼하고, 결국 그들은 손 한번 맞잡지 못한 채 등 돌려 떠나가게 된다. 술에 취한 거지는 집으로 돌아오던 남자와 스쳐 지나가서 창녀의 집으로 가고, 창녀는 다시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 준다. 거지는 그녀의 이름을 여러 번 되새기며 자신의 이름도 똑같게 지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창녀는 거지와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둘은 결국 기둥서방에게 들키고 마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둥서방을 달래기 위해 창녀는 자신의 돈과 거지의 돈을 모두 주면서 거지도 자신을 사러 온 거라고, 손님이라고 둘러대고 만다. 이에 기둥서방은 둘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기쁨에 찬 둘은 행복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와중에 남자는 아까 스쳐 지나갔던 거지와 아내의 편지 속에 있던 첫사랑의 사진이 똑 닮아 있음을 눈치 챘고, 분노에 찬 그는 속옷 차림으로 달려나가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있던 거지의 뒷덜미를 잡아채 끌어낸다. 그리고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자신만큼 아내를 사랑할 사람은 없다고 화를 내고, 거지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죄송하다고 거듭해 말한다. 창녀는 이들을 말리느라 정신없고, 아내 또한 남자를 중재시키느라 정신 없었으며, 이를 발견한 기둥서방 역시 그들을 말리고 거지를 무자비하게 쫒아내려 한다. 거지는 머리를 땅에 박으며 모두에게 민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외치고, 그런 그를 창녀가 보듬으며 흐느껴 우는데, 거지는 급히 옷가지를 챙겨 자리를 떠난다. 그제야 조용해진 성북동 골목길은 어둠이 내려앉고, 남자와 아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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