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섬에 버려져 섬에서 자란 이쁜이. 그리고 친구이자 남자의 딸인 탱자, 그리고 어부인 남자...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오랜 낚시 끝에 잡아온 고래 뱃속에서 하멜이 나타난다. 그를 중심으로 섬에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의 기류가 흐르는데...
<섬>에서 아버지는 열흘 중 나흘 동안 나가있는 끝없는 바다와 늙어 약해져만 가는 자신의 몸뚱이에 대한 두려움을 섬에 갇혀 살아가는 두 소녀에 대한 폭력으로 애써 감춘다. 아버지는 두려움을 폭력으로 참아내지만, 두 소녀들은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섬 안에서의 외롭고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채운다. 라디오 속의 가수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서로를 안고 춤추고 입 맞추며 미지의 연인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소녀들은 서로에 불안하게 기댄다. 치명적인 외로움을 감춘다. 아버지가 잡아온 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된 하멜은 섬의 이 불안한 균형을 깬다. 아버지의 딸은 하멜을 사랑하게 되고, 딸의 친구이자 새엄마격인 소녀 역시 하멜을 사랑하게 된다. 거칠게 이 두 소녀를 소유하고 있던 아버지는 자신이 잡아온 고래속의 하멜에게 모두를 빼앗기게 되고, 아버지는 자신의 두려움이 드러나는 상황을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섬의 가장 큰 균열은 아버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멜만큼 갈라진 두 소녀 사이의 틈은 백만 개의 하멜 가지고도 채울 수 없다. 사라진 하멜만이 그 틈을 채울 뿐. 소녀의 친구이자 새엄마격인 소녀는 하멜을 바다 저 멀리로 떠나보내고, 소녀의 친구이자 소녀의 수양딸격인 소녀는 아버지가 타고 나갈 배의 바닥에 구멍을 뚫는다. 하멜이 사라진 자리는 두 소녀를 다시 가까이 다가앉히고, 아버지가 (영영) 사라진 섬에는 이제 정녕 두 소녀만이 남게 된다. 다시 외로움은 감추어지고, 서로에 기댄 나날은 다시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의 은유들은 가부장적 폭력이나 gender를 넘어서는 사랑의 현상을 지시하겠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성숙의 경계에 있는 소녀들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상상과 꿈으로 극대화시켜 관객에게 바로 전이시킨 데 있을 것이다. 은폐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채 치명적으로 불안한 인간의 본질을 원형으로 간직한 모습이 바로 그 상태의 소녀들이 아닐런지. 김민정 극작가의 <섬>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왜 거기 갇혀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 그 소녀들의 외로움이 내게 바로 전이되는지 어렴풋하게 연결고리가 보이기도 할 것이다. 불안. 외로움. 바로 현대인의 본질이 아니던가. 김민정 극작가의 작품은 무대 안에 꾹꾹 들어찬 질곡 속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너무나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풀어놓는데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범철 '서울테러' (1) | 2016.05.15 |
---|---|
장우재 '열애기' (1) | 2016.05.14 |
오재호 '성(sex)스러운 수다' (1) | 2016.05.13 |
오재호 '멀고 먼 여로' (1) | 2016.05.13 |
오재호 '귀로' (1) | 2016.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