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메난드로스 '중재 판정'

clint 2016. 5. 3. 07:55

 

 

 

 

 

 

작품해설

 

카리시오스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아내 팜필레가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아이를 낳아, ()유모 소프노네의 도움을 받아 내다버린다. 하인 오네시모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카리시오스는 집을 나가 친구 카이레스트라토스의 집에 머물며, 고급 창녀인 하프 연주자 하브로토논을 부르는 등 재산을 탕진하자, 팜필레의 아버지 스미크리네스가 노발대발한다.

팜필레가 버린 아이는 양치기 다오스가 주워 숯쟁이 쉬로스에게 주었는데, 그의 아내가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오스와 쉬로스는 아이와 함께 발견된 패물을 두고 말다툼을 하다가 행인에게 중재 판정을 받기로 합의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스미크리네스는 중재 판정을 요청받고는 패물은 부모가 아이에게 준 것인 만큼 당연히

아이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판정한다. 오네시모스는 패물 가운데 하나인 반지가 자기 주인 카리시오스의 것임을 알아본다.

그사이 자신의 편협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뉘우친 카리시오스가 자기는 결혼하기 전에 어떤 축제에서 팜필레를 유혹했으며, 바로 자기가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라고 자백한다. 하브로토논의 호의적인 개입으로 모두가 화해한다. 이 희극은 스미크리네스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눈치 없이 딸을 데려가려고 나타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로마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의 희극 장모가 플롯 면에서 이 작품과 비슷하다.

 

 

 

작가소개

아테나이(Athenai)의 중기 희극과 신 희극의 작가 대부분이 그곳에 정착한 외지인들인 데 반해 메난드로스(Menandros 기원전 344/3~292/1)는 아테나이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메난드로스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제자이자 후계자인 테오프라

스토스(Theophrastos 기원전 370년경~287년경)와 희극작가 알렉시스(Alexis 기원전 372년경~ 270년경)에게 배웠으며, 또 다른 철학자 에피쿠로스(Epikouros 기원전 341~ 270)와 같이 군 복무를 했다.

메난드로스는 기원전 323/2년에 데뷔하여 약30년 동안 100편이 넘는 희극을 썼는데, 그중 더러는 아테나이의 축제가 아니라 지방 축제나 그리스의 다른 도시에서 공연된 것으로 추정된다. 메난드로스는 희극 경연에서 8번밖에 우승하지 못했는데, 훗날 그 이름이 잊히다시피 한 필레몬(Philemon 기원전 368/60~267/63)보다도 적게 우승했으니 상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Marcus Valerius Martialis 기원후 40년경~102년경)극장은 메난드로스에게 갈채를 보냈으나 그가 영관을 차지하는 일은 드물었다.”고 쓰고 있다. 또 메난드로스는 살았을 때보다 죽은 후에 더 큰 명성을 누렸다고 말하고 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아우소니우스(Decimus Magnus Ausonius기원후 310년경~393년경)도 손자에게 먼저 호메로스와 메난드로스를 읽기를 권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알렉산드레이아(Alexandreia /Alexandria) 시의 도서관장을 지낸 뷔잔티온(Byzantion) 출신 학자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기원전 257년경~180). 메난드로스를 그리스 시인들 가운데 호메로스에 버금가는 작가로 평가한다. 메난드로스의 작품들은 현재 97개 정도의 제목이 알려져 있는데. 그중 일부는 그의 사후 재 공연될 때 붙여진 다른 이름으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은 기원 후 7, 8세기에 없어졌는데 메난드로스의 희극들이 고전 앗티케어가 아니라 훗날의 공용어인 코이네(Koine)에 가까운 앗티케어로 씌어졌다는 이유에서. 뷔잔티온 학교들의 교과과정에서

제외되면서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전사되지 못하고 산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이집트에서 잇달아 파피루스가 발견됨으로써 메난드로스 희극들 가운데 심술쟁이는 거의 온전히 복원되고, 그 밖에 중재 판정모스의 여인‘, ’삭발당한 여인, ‘방패’, ‘농부’, ‘아첨꾼도 줄거리를 알 수 있을 만큼 복원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메난드로스 작품들의 파피루스들은 호메로스와 에우리피데스 다음으로 많은데, 이러한 사실은 메난드로스가 헬레니즘 시대에 인기 작가였음을 말해준다. 파피루스들이 발견되기 전까지 메난드로스는 900편이 넘는 인용문들에 의해 알려져 있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금언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도덕적으로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격하다는 느낌을 준다. 메난드로스 희극들의 무대는 주로 당시의 아테나이 또는 앗티케 지방이다. 줄거리는 대체로 부유한 가정의 사생활, 그중에서도 애정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심술쟁이에서는 크네몬(Knemon)의 인간 혐오가 소스트라토스(Sostratos)의 연애 사건보다 비중이 더 크다.

 

메난드로스 희극들은 당시의 실생활보다는 오히려 무대 위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는 특징들을 담고 있는데. 버려지거나 주워온 아이들, 장신구들에 의한 발견, 야간 축제에서의 양갓집 규수의 납치. 우연의 일치 등이 이에 속한다. 등장인물들의 경우에도 수다스럽고 잘난 체하는 이발사. 허풍떠는 군인, 노발대발하는 아버지, 교환하면서도 비겁한 노예, 마음씨 고운 창녀 등 상투적인 인물들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상투적인 인물들이 보여줄 수 없는 다양성과 생동감이 있으며. 또한 그들의 발언은 적절하고도 타당하다. 메난드로스 희극들의 플롯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교묘하게 짜여 있어 손에 땀을 쥐게 하며. 대화는 발 빠르고 재치와 기지가 넘친다. 이렇듯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에서 메난드로스는 최소의 투자로 최고의 효과를 산출할 줄 아는 가장 경제적인 극작가라고 할 수 있다. "! 메난드로스와 인생이여. 그대들은 어느 쪽이 다른 쪽을 모방 했는가?“ 라는 뷔잔티온 줄신 아리스토파네스의 발언은. 메난드로스희극들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고 그 밑바탕을 이루는 감정들이 현실적임을 말해준다.

메난드로스 희극들은 운문, 즉 약강 3보격 시행(iambic trimeter)으로 씌어졌지만 그 언어는 문장구조와 어휘에서 일상어에 가까우며, 아테나이 고희극의 대표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언어보다 훨씬 단순하다.

메난드로스 희극들에서는 코로스의 역함이 축소되어, 노래와 춤으로 전체를 5막으로 나누는 살아 있는 막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 메난드로스는 자신의 희극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동정과 아이러니가 뒤섞인 태도를 보여주며, 이해와 관용과 아량만이 인간관계에서 진정한 행복의 열쇠임을 은연중 내비치곤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넓은 의미의 정치'에 너무 깊이 개입하여 유명 정치인들과 소크라테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계몽적인 지식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인신공격하고 성행위나 배설물을 자주 언급한다. 때문에 아리스토파네스가 세상을 떠나기도 전에 그의 '고 희극'은 메난드로스의 앗리케 '신희극'에서 볼 수 있는 '풍속희극'에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반면 메난드로스는 로마의 희극작가들인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 기원전 250년경)와 테렌티우스(기원전 195/90~159)의 번역, 번안올 통해 르네상스 희극과 영국의 셰익스피어, 프랑스의 몰리에르, 독일의 레싱(Lessing) 같은 작가들의 희극에 큰 영향을 줌으로써 서양 근대 희극의 아버지가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