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사이먼 스티븐스 '항구(port)'

clint 2016. 5. 2. 11:10

 

 

 

 

 

 

 

<포트>는 2002년 11월 영국에서 국가 지원을 받는 극단 가운데 하나인 맨체스터의 로얄 익스체인지(이름에 Royal이 들어가는 극단은 국가가 지원하는 곳들임. RSC, RNT 등)에서 초연되었다. 2002년 피어슨 희곡상(신작 희곡에 주는 상)을 수상하였다.
11살 꼬마 여자아이 레이첼과 남동생 빌리는 엄마와 차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폭력적이고 정신병적 기질이 있는 아버지가 잠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채는 남동생 빌리와 무관심하고 애정 없는 엄마 사이에서 레이첼은 엄마의 가출을 감지한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레이첼이 13살 되던 해 가장 사랑하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외할아버지가 변태였다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레이첼은 발악한다. 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님을 아는 레이첼은 울음을 멈추고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빌리는 음료수를 훔치고 아버지는 그것을 허락한다.
몇 년 뒤 레이첼은 영리하고 낭만적인 15살 여학생이 되었다. 빌리는 자꾸 비뚤어져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작은 범죄자가 되었다. 빌리는 동네 친구들과 상점을 털게 되고 그로인해 감옥에 가게 된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17살이 된 레이첼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외할머니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레이첼은 엉뚱한 얘기만 되풀이하는 외할머니의 입에 쵸콜릿을 가득 쑤셔 넣고 핸드백을 내동댕이치고 나온다.
독립을 못한채 19살이 된 레이첼은 동네 상점에서 일하면서 만난 어린 시절 친구 대니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2년 뒤 싸구려 휨방에서 새 천년을 함께 맞이하려는 사람은 대니가 아니고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고 의처증까지 있는 케빈이라는 사내다. 케빈의 의처증은 의심을 부르고 급기야 레이첼은 폭행을 당하고 만다. 케빈이 나가 버린 휨에서 레이첼은 빌리에게 전화해 남편과 헤어질 것을 얘기한다.
24살이 된 레이첼은 남편과 이혼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돌아와 만난 옛 사랑 대니는 이제 가장이 되어 있다. 레이첼은 같이 떠나자고 하지만 대니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대니는 레이첼이 머지않아 근사한 사람이 될 거라 고 하며 가족과 보냈던 특별한 장소에서 아침을 맞아보라고 한다. 레이첼은 그 옛날 집에서 쫒겨 나와 엄마랑 있었던 곳에 빌리와 함께 온다. 빌리에게 잘 지낼 것을 이야기하며 떠날 것을 망설이는 레이첼에게 빌리는 떠나라 고 한다. 떠나려는 레이첼에게 언덕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밝게 빛을 비춰준다.

 

 

 

 '떠나라. 너를 옭아매고 좌절시키는 지금 이 곳, 혹은 이 순간으로부터'             

이것은 주인공 레이첼 키츠뿐 아니라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변화를 원하지만, 하나 둘씩 늘어가는 현실적인 핑계앞에 발목을 잡혀 자신도 원치 않는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그것은 비루한 현실이 주는 마약같은 안락함 때문이다.<포트>의 레이첼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택은 사랑하는 대니 밀러와 함께 지긋지긋한 스탁포트를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살의 그녀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정도의 용기 밖에는 없었다. 결국 깨어지고 상처받은 그녀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배는 언제까지나 항구(Port)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확한 태도를 지닌 작품을 만나는 것은 기분좋은 경험이다. 어떻게 보면 그 명확함 때문에<포트>는 선댄스에 단골로 출품되는 사람사이의 관계와 성장에 관한 독립영화들같은 지루함을 지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치부하기엔 이야기나 연기에서 느껴지는 알찬 느낌은 나쁘지 않다. 만약 작품이 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면 뭔가 있어보이기는 했을테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원작자 사이먼 스티븐스의 초기작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딱 이정도의 준수함이 아마도 이 작품에 맞는 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이먼 스티븐스는 1971년<포트>의 무대인 영국 체셔주 스탁포트에서 태어났다. 10대에는 Tom Waits 등 미국의 블루스, 재즈 락 가수들에게 빠져 송 라이터를 지망했으나 요크 대학에 진학, 연기과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98년 야간 근무를 하는 택시 운전사와 그의 차에 오른 승객들의 만남을 보여주며 익명의 도시 속 고독을 그린<블루버드>(1998)로 데뷔. 이어 영국 창작극의 산실로 불리는 로얄 코트 극장에서, 이혼한 30대 중반의 아버지와 교내 불량 학생들에게 린치를 당한 10대 아들의 덤덤하면서 짠한 부자애를 다룬<왜가리들>(2001)로 연극계의 주목을 받는다. 런던 활동 후 귀향해 로얄 익스체인지와 작업한<포트>(2002), 그의 작품으로는 예외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보 여주는<원 미닛>(2003), 성탄절 작은 술집에서 벌어지는 주당들의 이야기를 다룬<크리스마스>(2004),<컨트리 뮤직>(2004)을 연이어 발표,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그리고 국립극단 에서 막이 오른 3대에 걸친 가족의 얘기를 다룬<ON World Wide the of Shore>(2005)로 ‘올리비에 희곡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일반 관객 모두의 사랑 과 관심을 받고 있는 영국 연극계 중견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주로 가족 관계를 덤덤하지만 치열하게 탐색하고 있는데 일견 상당히 폭력적인 것 같지만 이 를 압도하는 작가의 낙관적 태도와 현실적인 일상 묘사로 다른 동시대 작가들과는 차별되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 를 만들어가고 있다. 젊은 극작가 프로그램을 이끌며 로얄 코트 극단의 상임 작가를 역임하고 국립극단 최초의 상임 작가를 맡았으며 3대 연극 학교 중 하나인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에서 극작을 가르치고 있다.
<포트>는 누군가의 삶을 흔들어놓을 만한 걸작은 아니지만, 적어도 혜화동의 시끌벅적한 풍경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대신 그냥 '좋구나'하고 가볍게 웃음지을 수 있는 어둡지만,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냥 그대로 충분할 정도의...
'포트’는 1988년 11살 소녀 레이첼이 2002년 25살의 나이로 고향 ‘스톡포트’를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다. 레이첼과 동생 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린다. 어머니는 급기야 가출했다. 빌리는 도둑질을 하며 감옥을 들락거리고, 레이첼은 자상한 대니와 사랑을 나누지만 결혼은 아버지와 똑같이 폭력적이고 의처증이 있는 남자와 한다. 결국 이혼하고 대니에게 함께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이미 가정이 있는 대니는 거절한다. 레이첼은 그러나 꿈을 잃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항구’를 떠나기로 한다. 빌리도 다시는 지옥 같은 감옥에 가지 않고 새출발하기로 결심한다.
스티븐스는 한국 관객들에게 “나의 어린시절과 청년기에서 많은 부분을 직접 따온 이 작품은 간절히 원하는 것(yearning)에 대한 희곡”이라며 “두려워할 줄 모르는 추구와 용기로 삶을 헤쳐나가는 레이첼은 충분히 행운을 차지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는 11살 꼬마에서 가장 사랑했던 외할아버지를 잃고 죽음을 배운 소녀, 순수한 사랑에 더할 수 없이 기뻐하는 여성 그리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레이첼 역을 장영남씨가 멋지게 풀어냈다. 삶에 찌든 서민의 꿋꿋한 생명력을 거칠면서도 낙관적으로 그리는 데 강한 연출가 박근형씨는 특유의 강력한 에너지와 해학으로 레이첼의 쉽지 않은 삶을 눈물반 웃음반으로 엮어 극적인 희망을 만들어냈다.
“항구”는 2002년 11월 12일 맨체스터의 Royal Exchange Theatre에서 초연되었다.

사이먼 스티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