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노다 히데키 '빨간도깨비'

clint 2016. 3. 7. 20:14

 

 

서정성 안에 빛나는 철학적 사유 - 노다 히데키의 걸작<빨간 도깨비><빨간 도깨비(赤鬼)>는 노다 히데끼의<赤鬼(적귀)>를 한국식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1996년 일본 초연을 시작으로 태국, 영국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공연이 올려지는 나라의 배우들이 직접 출연함으로써 매번 다른 버전으로 그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까지 성공적으로 담아내왔다.
<빨간 도깨비(赤鬼)>는 해안가에 표류한 한 남자가 마을사람들로부터 ‘빨간 도깨비’로 몰리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밝고 우화적인 분위기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 ‘재미’의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이 빚어내는 비극과 혼돈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주제가 담겨 있다. 보편적이며 철학적인 깊이가 탁월한 만큼 그저 좋다는 수식어로 모자란 그윽한 감동을 선사한다.

 

 

객석에 둘러싸여 마치 배를 뒤집은 것처럼 돋워진 무채색의 네모난 무대는 집이 되었다, 동굴이 되었다, 바다가 되었다 하며 관객의 상상력 위에서 연극적 유희의 장이 된다. 바닷가 마을에 해안에서 밀려온 ‘미지의 인물’, 생긴 것이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르고 언어도 다른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빨간 도깨비’로 낙인 찍히고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여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 여자’라 불리는 외지 사람이다. 그의 좀 모자란 오빠 토비와 마을의 난봉꾼 미즈카네, 연극은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다.

 

 

작가의 글

“인간은 인간의 형상과 가까운 것을 먹을수록 건강에 해롭다”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언이 있다.
즉, 야채를 먹는 것보다 인간에 가까운 동물을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생선보다 인간에 가까운 포유류인 소나 돼지를 먹는 쪽인 더 건강에 해롭다.따라서 인간이 인간을 먹는 것이 가장 건강에 해로운 것이다. 최소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다. 정말 지당하고 그럴싸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런 명언은 없다. 내가 방금 지어낸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정말 두려운 것이다. 그럴싸한 이야기가 제 멋대로 퍼져 나가면서 마릴린 몬로와 다이애나비가 암살되었고, 아폴로 11호는 달에 착륙한 적이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40년 전에 혈액형에 대한 지식은 단지 수혈 시에만 필요한 것이었지만 이 40년동안, 최소한 일본에서는, 한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지난 40년동안 일본 술집 주위에서 퍼져 나온 말들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혈액형에 근거한 이런 믿음의 실제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마치 점보는 것처럼 자기암시에 지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차마 입밖에 꺼낼 수가 없다. 내가 혈액형에 의한 인간판단에 대해 가장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술집에서 혈액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화가 부족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럴싸하게 퍼져나가는 말들로 인해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알게 되고, 판단한다. 사랑에 빠진다든지, 어떤 일을 무시한다, 무엇을 동경하거나 경멸하거나 하는 것들이, 사람들에게서 비롯되고 퍼져나가는 말에서 비롯된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말이 퍼지는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시간을 가지고 검증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 진 말들은 혼자서 퍼져나간다. 더 재미있는 문구들을 사용하면 할수록 말은 더 빨리 퍼져나간다. 오래전이 아니라 바로 최근에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해 퍼졌던 소문이 바로 그 일례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누구도 모른다. 나는 묻고 싶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당신은 섬찟해지지 않습니까?”라고. 최근에도 제멋대로 퍼져나간 말 때문에 큰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미안하다, 이런 말은 소용없었던 것 같다. 지금 그렇게 이야기해봐야 죽은 사람만 곤혹스러울 뿐이다. 곤혹이란 말조차 적절치 않다. 사람들은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말은 사람들에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인간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빨간도깨비]는,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는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인간의 형상과 가까운 것을 먹을수록 건강에 해롭다” 라고.
- 노다 히데키(野田秀樹)

 

 

 

 

작/연출 노다 히데키 (野田 秀樹)
극작가, 연출가, 배우. 동경대학 법학과 재학 중이던 1976년 극단「유메노유민샤(夢の遊眠社)」을 결성, 처녀작<달려라 멜스>로 주목을 받으며 이후 소극장 붐의 선두를 달린다. 1992년 극단을 해산한 후 1년간 문화청연수생으로 영국으로 유학. 귀국 후 기획제작회사 노다 맵(NODA-MAP)을 설립한다. 첫 번째 공연<키루>를 시작으로<모작ㆍ죄와 벌>,<롤링 스톤>,<판도라의 종>, <캐논>,<oil>,<TABOO>,<반신>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와 호평을 불러 일으킨다. 그 외<한여름밤의 꿈><헛소동><십이야>등 이른바 '노다판 세익스피어작품'의 상연과 가부키와 오페라 등 전 장르에서 독특한 해석과 연출기법을 선보이며 현대 일본연극을 대표하는 주자로 활동하는 한편,<빨간도깨비>의 런던버전공연을 시작으로 활동무대를 영국으로도 넓히며 명실공히 세계적인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