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도미니크 보나 '에밀아자르의 탄생'

clint 2016. 3. 4. 22:47

 

 

 

 

 

 

한 작가가 평생 동안 한 번만 수상할 수 있는 문학상, 공쿠르 상. 그러나 자신이 창조한 분신의 이름으로 한 번 더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가 있다. 로맹 가리.
그의 내부에는 로맹 가리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재능과 열정이 응집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노쇠"했다며 수군거리는 프랑스 문단의 온갖 비평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에밀 아자르'가 되어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내용과 문체의 "참신함"으로 평론가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켜, 로맹 가리에게 프랑스 문학사상 전무후무하게도 두 번의 공쿠르 상을 안겨준다. 이 책은 자유와 욕망을 좇아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버린 대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준다.
자신의 첫 전기 작품인 이 책 『로맹 가리』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전기 부문 대상을 거머쥔 도미니크 보나는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공쿠르 상 수상작 『하늘의 뿌리』를 읽고 로맹 가리에게 단번에 빠져들었고, 면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그때까지 수수께끼와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삶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프랑스 최고의 전기작가인 도미니크 보나의 손끝에서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한 가난한 소년의 열망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외모로 세계 외교 무대를 사로잡은 한 외교관의 카리스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프랑스인이 되고 싶었던 이방인

 

 

 

1914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전쟁의 포화를 피해 열세 살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에 정착한 로맹 가리.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은 이때부터 프랑스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 야망과 꿈을 키워나간다. 파리 법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파리 지역의 유력한 정치?문학 주간지 『그랭구아르』에 ?소나기?가 게재되면서 드디어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으로 참전한 로맹 가리는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를 누구보다도 열망하지만, 항상 전쟁은 끊임없이 달아나며 로맹 가리를 기다리게 한다. 고대하던 전투는커녕 어이없는 세 차례의 사고를 겪고 좌절하던 그는 1943년 10월부터 1944년 4월까지 60여 차례의 전투 비행을 실시하게 되고, 마침내 전공을 인정받아 자신의 영웅 샤를 드골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떠나자! 떠나자! 숨쉴 곳을 찾아서!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31세 되던 해에 비평가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는 이제 프랑스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켜야 할 규칙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넘쳐나는 외무부에서 행복을 찾기에는 너무나 열정적이고 개인적이고 독립적이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로맹 가리는 영화배우 같은 외모와 뛰어난 화술을 바탕으로 외교관으로서, 소설가로서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뉴욕을 떠나 볼리비아의 라파스에서 주재하던 시기에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외국 작가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잘 모르는 러시아인 이민자로 여겨질까 두려움에 떨던 그는 이제 프랑스인 어머니에 조지프 콘래드 같은 위대한 망명 문학가들과의 인연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러시아인 아버지를 둔 중견작가로 자신의 삶을 미화시키고, 프랑스 문단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다.
진 시버그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이별
라파스를 떠나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부임해온 로맹 가리는 자신보다 스물네 살이나 어린 '팜 파탈' 진 시버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랑에 빠져버린다. 둘은 첫 만남이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밀회를 갖기 시작하고, 로맹 가리는 자신이 거둔 성공과 새로 찾아온 사랑을 만끽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성공, 부, 명예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진 시버그와의 이혼, 이혼 즈음에 겪은 갓난 딸의 죽음,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기자들의 식어버린 관심 등으로 그는 점점 지쳐간다. 창조적 에너지가 이제 다 바닥났다고, 더 이상 로맹 가리에게서는 새로운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고 떠들어대는 비평가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마침내 자신의 펜에 가면을 씌워 장난을 칠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에밀 아자르는 탄생하고, 로맹 가리는 자신의 그림자 뒤로 숨어버린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를 창조했고,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삶을 이끌었다!
이미 포스코 시니발디(『비둘기를 안은 남자』), 샤탄 보가트(『스테파니의 얼굴들』)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던 로맹 가리는 단 하나의 피부, 단 하나의 삶 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첫 소설 『유럽의 교육』(1945)으로 비평가 상을, 『하늘의 뿌리』(1956)로 공쿠르 상을 거머쥔 문학의 대가였지만 그는 늘 자신을 넘어서기를, 새로워지기를 갈망했다. 삶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고, 구태의연한 문단 권력과 작품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비평을 쓰는 평론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펼친 '아자르의 코미디'. 『그로 칼랭』에 이어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두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또다시 공쿠르 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는 연극을 계속하고, 베일에 가려진 저자의 정체를 밝히려는 아우성으로 프랑스 문학계는 발칵 뒤집힌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카 폴 파블로비치에게 아자르 역을 맡기고,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가며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완벽히 연기해낸다. 그러나 1980년 12월, 하루가 다르게 자신을 조여오는 노쇠, 자신이 깊이 사랑하던 여인의 죽음, 독립할 나이가 된 아들의 성장, 서른 편의 소설을 앞에 두고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는 선언을 뒤로한 채,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히면서.
꿈꾸는 현실주의자,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몽상가,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유럽의 교육』 등의 보석 같은 작품들로 우리나라에서도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로맹 가리는 1980년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기까지 서른여섯 편의 작품을 남겼다. 매 작품마다 문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로맹 가리』에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던 '아자르 사건'을 포함한 파란만장한 삶의 일화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과 창작의 배경, 그리고 내면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보다 더 깊은 감동을 전해줄 그의 전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꽃같이 살다 삶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한 "영원한 자유인"이 있다.

 

 

 

진셰버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요약.
내가 시마롱에 있는 집에 있을때 진 세버그가 전화를 해왔다.
자기 앞의 생이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자 르 누벨 옵세르 바퇴르는 그 소설의 작가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레이몽 크노와 아라공을 지목했는데 그 이유가 그 소설은 '그 정도의 위대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것"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곧이어 나는 에밀 아자르가 실제로 레바논의 테러리스트 아밀 라자라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
그는 돌팔이 의사, 무면허 낙태시술자, 범죄자, 아니면 미셀 크루노 자신이라는 것이다.
또는 그 책이 공동작업의 산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편 나는 에밀 아자르와 한때 애정관계를 가진적이 있다는 한 아가씨를 만났다. 그는 대단한 바람둥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를 지나치게 실망시키지 않았기를.
...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던 초기에,
나는 자기앞의 생을 가명으로 발표할지 어쩔지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마조르크에 있는 우리집에 왔던 린다 노엘이 내책상에서 제목이 분명하게 적힌 검정색 노트를 보게 되었다.
.... 노엘이 그 작품의 저자는 로맹가리에요. 내가 봤어요. 내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 라고 아무리 떠들고 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로맹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 한 유명한 에세이스트가 로베르 갈리마르에게 단언했던 말이다.
..... 로맹가리는 끝난 작가다. 그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어떤 어떤 작가라는 고정관념속에 자리 매겨진 기성작가일 뿐이었다.
.....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네권의 소설을 펴냈다.
나는 기존의 관념이 지배하는 쉽고 단순한 분석으로는 절대로 그 가명에서 나를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열렬한 포옹에서 로맹가리의 목소리를 읽어낸 평론가는 단 한사람도 없었따. 자기 앞의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보시라.
나의 작가인생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자기 앞의 생을 완전히 끝낸 뒤 나는 출판사에도 알리지 않고 가명으로 발표할 결심을 했다.
명성, 내 작품의 평가 기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내 얼굴, 그리고 책의 본질 사이에는
모순이 많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미 두번이나 가명을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악착같이 내 자신을 방어했다.
거듭부인했고 익명을 유지할 권리를 행사했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싶어 했기 떄문에 그것이 가능 했다.
.....나는 언제나 매우 설득력이 있는 작가의 허영기를 마음껏즐겼다.
아자르가 그정도로 나의 영향력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는데 당신이 지적한대로 그렇게 똑같다면 표절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직 젊은 작가인 만큼 항의할 생각은 없어요.
대체로 내 작품이 젊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요. 그런데 당신이 그걸 알아주시니 저로서는 기쁜일이고...
.....이제 자기 앞의 생에 수여되었던 두번째 콩쿠르 상에 대해 말해야겠다.
자기 앞의 생이 나왔을때 이 책은 테오프라스트-르노도 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자르의 정체가 공개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려운 나머지, 브라질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편지를 통해서
수상후보를 사양했다. 나는 그 편지를 심사위원단과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보내도록 했다.
나는 그것들을 무척즐겼다.
안녕, 그리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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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 소설을 발표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연기했던 작가,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 로맹 가리의 66년 생애를 조명한다.
공쿠르 상은 한 작가가 평생 동안 한 번만 수상할 수 있는 문학상이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1956년<하늘의 뿌리>로 첫 수상을 한 뒤, 1975년 자신이 창조한 분신ㅡ에밀 아자르ㅡ의 이름으로<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며 또 한 번 공쿠르 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로맹 가리>는 문학비평 기자이자 르노도 상 수상 작가인 도미니크 보나가 저널리스트의 치밀함과 소설가의 감수성으로 쓴 평전이다.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아자르 사건'을 포함하여, 로맹 가리의 내면세계와 모든 작품과 창작의 배경,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한 가난한 소년의 열망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외모로 세계 외교 무대를 사로잡은 한 외교관의 카리스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자 했던 한 작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도미니크 보나는 자신의 첫 전기 작품인<로맹 가리>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전기 부문 대상을 거머쥐었다.
1975년 공쿠르 상 수상자가 『자기 앞의 생』을 쓴 에밀 아자르라고 발표되자 수상작가는 공쿠르 상 아카데미에 수상 거절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아카데미 의장인 에르베 바쟁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아카데미는 한 후보가 아닌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탄생과 죽음처럼 공쿠르 상은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수상자는 여전히 아자르이다.” 그렇게 해서 베일에 싸인 작가 에밀 아자르는 수상자로 남게 되고, 후에 아자르가 실은 로맹 가리임이 밝혀지게 되면서 로맹 가리는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로 남게 된다.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4세때 프랑스로 이주해 니스에 정착했으며, 법학을 공부한 후 공군에 입대해 1940년 런던의 드골 장군과 합류했다. 1945년 첫소설「유럽의 교육」을 발표했고, 같은 해 프랑스 외무관에 입성한 후 외교관의 자격으로 불가리아의 소피아, 페루의 라파스,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했다. 두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여러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며,「하늘의 뿌리」로 1956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 1961년 외교관직을 사퇴하고,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했다. 쓴 책으로는「대탈의 실」「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레이디 L」「여기서부터 당신의 표는 무효다」「여자의 빛」「연」등이 있으며, 사후에 남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글로칼랭」「가면의 생」「솔로몬 왕의 고뇌」와 1975년 콩쿠르 상을 받은 「자기앞의 생」을 썼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