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훼르난도 아라발 작 '환도 와 리스'

clint 2016. 1. 16. 11:58

 

 

환도와 리스는 이상의 세계를 찾아 끝없이 헤맨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다. 좌절과 고통 속에서 끝없이 두 사람은 사랑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환도는 고독과 절망을 잊어 보려고 난폭하며 원색적인 독특한 놀이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도 모르면서... 결국은 유일한 친구이며,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리스를 잃고 환도는 그녀의 무덤 앞에서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천천히 죽어간다.

1장
환도와 리스. 유모차. 리스의 두 다리는 소아마비로 불편하다. 리스는 자기가 죽은 후 아무도 자기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환도는 자신의 그녀를 기억하겠다고 한다. 리스는 그러는 환도를 불신하는 듯하고 환도는 자신을 믿는다고 말해달라한다. 리스가 그를 믿는다고 여러차례 말하지만 모두 진심이 결여되어 있다. 결국 여러번의 반복끝에 믿는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즉 그를 믿게 되어버린-된 리스. 리스의 이런 말에 환도는 감동되고, 환도의 감동에 리스도 감동한다. 리스는 환도가 생활전선에서 싸우길 바란다. 하지만 환도는 자신이 없다. 리스는 둘이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리스는 환도에게 맞고 사는 모양이다. 리스가 환도를 책망하자 환도는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고 딸르-그들의 목적지-에 가면 배를 사겠다고 장담한다. 그러고는 환도는 리스를 업고 간다. 가는 길에 리스는 돌을 보고 환도는 꽃을 보는데 리스가 꽃은 없다고 하자 환도는 화를 내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는 점점 지친다. 그는 난폭해진다. 리스가 꽃이 보인다고 하면서 환도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 환도는 비아냥 거리며 꽃이 어디있냐며 그녀를 땅바닥에 쿵하고 던져놓고는 질질 끌고 다닌다. 그러면서도 환도는 리스가 울면 떠나버릴 것이라고 한다. 리스가 울먹이자 정말 나가는 환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환도. 그는 용서를 구한다. 리스는 환도를 버릴 수 없다. 그녀는 그녀가 병원에 있을 때 환도가 편지도 써주고 잘 해준 것을 잊지 못한다. 다시 잘하겠다고 하는, 믿어달라고 하는 환도.

 2장

다시 등장하는 환도와 리스. 저녁노을. 리스의 발은 굵은 쇠사슬로 유모차에 묶여있다. 리스는 이상하게 계속 무표정이다. 리스와 환도는 오랜 시간 걸었던 듯 하다. 하지만 둘은 계속해서 그 자리이다. 리스는 환도에게 무관심이다. 조심해서 그녀를 다룬다. 북을 쳐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환도. 리스는 아무런 표정도 대답도 없다. "왜 말을 안 하지, 리스?" 이 때 세 사내의 등장. 한 우산에 세 명. 또소는 잘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미따로는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나뮬은 바람이 어디로 불어나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논쟁은 계속된다. 조심을 해야한다는 것, 하지만 일을 피하기 위해 1분 이전의 조심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 이들은 논쟁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는 상대적인 관점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도 동시적인 것도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어느 관찰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다시 그들은 바람이 어디에서 부는지 어디로 불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은 환도. 하지만 이들은 그를 붙여주지 않는다. 환도는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환심을 사려하지만 잘 되지 않고 다시 말없는 리스에게 돌아와 그들보다는 그녀가 훨씬 낫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녀는 대답이 없다. 긴 침묵. 환도는 계속해서 리스에게 말을 하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침묵.
3장
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환도.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유모차, 그 안에 리스. 세 남자는 딸르에 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환도는 그들의 논쟁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멀리서 들었을 때 그들의 논쟁소리가 마치 음악과 같이 아름다웠다며 좋아한다. 그들은 환도에게 리스와 함께 가는 것이 좋냐고 말하고 리스를 보러가자고 한다. 환도는 리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그들에게 리스를 만져보고 껴안고 키스하게 해 본다. 리스를 약혼녀라고 소개하는 환도는 그들에게 그녀를 자랑하고 싶다. 이 중에 또소는 계속해서 딸르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미따로와 나뮬은 좀 더 주변적인 것에 대해 논쟁하고 싶어한다. 환도도 또소보다는 미따로나 나뮬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그들의 주장 내용을 옳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날은 어떤말을 한 사람이 옳다, 혹은 어떤 날은 어떤 옷을 입은 사람이 옳다 등의 제멋대로의 판단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미따로와 나뮬은 그의 이런 방법을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다시 또소가 딸르로 가자고 하고, 환도는 동행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모으고 환도와 리스와 동행하기로 한다. 다섯 명이 동행한다.

4장

유모차에 여전히 묶여 있는 리스. 리스는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한다. 환도는 리스를 유모차에서 내려준다. 리스는 아프고 기분이 나쁘다. 환도는 리스보고 죽으면 안 된다고 한다. 환도는 다시 제자리라며 비관하고 리스는 비관만 하는 환도의 거듭되는 사과를 책망한다. 게다가 환도는 리스에게 수갑까지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환도는 수갑을 채우지 않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리스가 아픈 것은 환도고 그녀를 추운 거리에 지나가는 남자들 앞에 벗겨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리스를 보고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환도는 리스를 침대에 묶어 채찍으로 때리곤 하였다. 리스는 괴롭다. 환도는 수갑을 감추고 있다. 리스는 수갑을 발견하고는 울면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며 환도를 껴안는다. 학대하지 말고 버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리스. 다시 그들은 딸르의 희망으로 부푼다. 하지만 한 순간에 돌연 변해버린 포악한 환도는 결국 리스에게 수갑을 채운다. 암전이 된 상황에서 리스의 신음 소리 매질 소리. 조명이 들어오자 리스는 무대 중앙에 쓰러져 있다. 이를 관찰하는 세 남자. 이들은 리스가 죽었음을 확인하고 환도에게 말한다. 환도는 리스에게 슬픔에 젖어 다가간다. 환도는 조심스레 리스를 땅에 눕히고 옷매무새를 고쳐준다. 환도는 울 것 같다. 환도는 자기 이마를 리스의 배에 묻는다.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5장
세 남자는 리스가 죽으면 환도가 꽃을 가지고 개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꾸었던 딸르의 꿈을 이야기한다. 또소는 대체 딸르에는 언제 가는 거냐고 말한다. 나뮬과 미따로는 환도를 포함해서 넷이 가면 된다고 말하고 환도를 따라간다.

 

 

 

 

이 작품은 아라발이 1955년 23세에 쓴 작품이다. 무척 부럽게도 그 젊은 나이에 이런 괜찮은 작품을 쓴 것이다. 그의 또다른 작품, 35세에 쓴<건축가와 아시리아 황제>에 비하면 물론 밀도와 완성도는 좀 부족하지만 그건 후자의 완성도와 탁월한 풍자 때문이지 이 작품의 수준 탓이 아니다. <환도와 리스>에서는 하반신 마비로 몸이 불편해 유모차를 타는 리스와 그녀를 보살펴주는 환도의 이야기로 끌고 간다. 아마도 이 둘의 이야기였다면 단막극으로 끝났든지, 아니면 이야기를 늘리기 위해 다른 수법을 썼겠지만 여기서는 '딸르'(이상향)로 가는 세 남자가 등장해 환도 일행과 조우한다. 이로써 장막극(막의 횟수가 아니라 상연 시간 측면에서)이 완성된다. 초반에 환도는 리스를 사랑하면서도 리스의 잦은 울먹임과 그녀를 보살펴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가끔 그녀를 멀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리스에게 용서를 빈다. 환도는 점점 리스를 구박하고 리스는 운다. "어느 날엔가는 나는 당신을 버리고 멀리 떠나버릴 테야." 하고 환도는 말하지만 곧 용서를 구한다. 그들은 '딸르'로 떠난다. 여행의 도중에서 세 남자와 조우한다. 세 남자는 비효율적인 토론과 의견 차이 때문에 자주 다툰다. 지식인들의 탁상공론을 풍자한 듯하다. 단순 행동주의자인 '또소', 독야청청 자신의 이론만을 펼치는 비타협적 논리/원리주의자 '미따로'(원인을 중시한다), 이에 비해 다소 타협적이며 협동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나뮬'(결과를 중시한다). 타협주의자와 원리주의자는 행동주의자를 몹시 싫어한다. 비지성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런 논쟁을 보며 유아적 퇴행성을 지닌 환도는 세 남자의 논쟁을 무척 부러워한다. 잔인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한 어린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환도에게는 어른들의 논쟁이 무척 부러운 것이다. 환도는 타협주의자와 원리주의자, 즉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두 사람의 손을 들어준다. 행동주의자를 비난하면서. 그 근거는 또한 아주 희한하다. 환도 자신이 구축한 옳고 그름의 체계는 제멋대로이며 뒤죽박죽이다. 그 생각을 지성주의자들은 과대해석해서 환영한다. 아무튼 힘의 우위에 선 환도는 약자인 리스를 학대하면서 자신의 권력욕구를 채운다. 새디-마조히즘이 다소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새디-마조히즘의 관계로 본다면 특별할 것도 없는 장면이다.) 리스는 유모차에 발이 체인으로 묶인 채 처음 등장해서 나중에는 환도가 수갑을 채운다. 리스의 항변에 의하면 침대에서 환도가 채찍으로 리스를 자주 때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여행길 중간에서 환도는 리스를 여행객들에게 창녀로 제공한다. 이에 불편하고 몸이 아파진 리스는 결국 환도의 폭력에 숨지고 만다. 하지만 환도는 아직도 리스를 사랑하고 있다. 꽃을 들고 개를 데리고 연인 리스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세 사람의 남자(학자)는 논쟁을 하고 있다. 환도와 리스의 최후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다소 우의적이기도 하고. 남녀 사이의 권력 관계, 지성인들의 헛된 논쟁, 이상향에 가닿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 사랑의 지속성 등. 개인적으로는 2인극에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를 이 작품에서 발견한다.

볼프강 바우어의 '매직 애프터눈'에서 4인극의 매력을 발견했다면. 개인적으로 1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스토리 위주의 극작을 선호했는데 아라발의 몇몇 작품, 바우어의 작품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대폭 축소와 대사와 상황의 힘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아라발은 스페인 내란 속에서 부모를 잃었고, 그후 프랑코 독재정치 아래서 자라서 체제에 대한 반항, 인간해방에 대한 집념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왠지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아주 친숙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스페인계의 뜨거운 피와 나의 피 사이에 유사성이 있나 보다.<건축가와 아시라아 황제>를 마저 읽어야겠다.

 

 

 

 아라발의 연극은 대본보다 언행을 중시하고 언어보다 스펙타클에 역점을 둔다. 시각적 메타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연극은 현대적이다. 그는 연극의 새로운 패턴을 찾아 연극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이 새로운 패턴은 전후 모순이 없는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구성(플롯)과 성격의 발전을 중시하는 전통극과는 달리 보다 주관적이고 미학적인 논리에 의존하려 한다. 그 결과 연극은 무질서하고 제멋대로이고 아나키(anarchy)가 지배하며 괴기와 그로테스크가 현저한 특징을 이룬다. 그러나 그의 인물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회의 도덕이 그들에게 강요한 명백한 범죄 앞에서도 정신적인 순진성을 끝까지 그대로 간직하며, 세상에 지친 부조리극의 인물들과는 달리 그들 자신이 창조해 놓은 세상에서 사랑과 환상과 공포의 리츄얼(ritual)을 연출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