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1년 총으로 그의 애인을 살해하고 종신형을 언도받은 폴린느 뒤비숑이라는 어느 여대생의 실화를 소재로 하여, 다양한 장면들을 마치 영화적인 흐름을 갖고 빠르게 전개되는 극으로 완성시켰다. 프랑스 공연비평가 상을 받은 바 있는 현대 프랑스 연극의 대표적인 극작가 미셸 비나베르의 작품으로 너무도 사랑했던 남자를 죽이고 재판장에 선 여인 소피. 재판정에서 여러 증인들은 소피에 대해 당혹할 만큼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하고 있으며,각자의 이념적 결점이 드러난다. 그녀의 연인,선생,부모,남자친구는 모두 그녀의 개인적인 발전과 성취를 부정하면서 그녀를 수동적인 역할로 몰아넣는다.
소피는 이 희곡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그녀의 답변은 심문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녀의 처지를 동정하는 유일한 동료인 기보 부인조차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비나베르는 오직 자료에 충실하게 의지한 채 이 희곡을 완성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온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 30년 후의 일이었다. 작품의 모델이 된 뒤비숑은 1964년 모범수로 십여 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하지만 그로부터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미셸 비나베르는 프랑스 일상극의 선구자이며 대표 작가이다. 현재 빠리 제3대학 연극연구원에서 극작법을 강의하는 교수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첫 희곡 『한국사람들』로 프랑스 공연비평가 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1927년 파리, 유태계의 고미술상을 하는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먼저 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하였지만, 1956년에 공연된 『한국인들(Les coreens)』로 일약 극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다국적 거대 기업인 질레트(Gillette)의 고위 관리이기도 했으며, 초기 작품은 전반적으로 부조리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1959년에 쓴 작품 『이피게니아 호텔(Iphigenie Hotel)』 이후로는 기업활동에 전력하기 위해 10년 동안 극작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구직(la Demande d'emploi)』, 『일과 나날(les Travaux et les Jours)』, 『등을 땅바닥에(A la renverse)』 등에서는 치열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보여주며, 일상극의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1986년 『이웃집 사람들(les Voisins)』로 극작가로서 최고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입센(Ibsen)상을 받았다.
희곡 작품으로는 『한국사람들』『문지기들』『구두장수의 축제』『호텔 이피제니』『가장자리』『구직』『이단자』『명백한 일』『니나』『그것은 별개의 것』『노동과 나날』『이웃들』등이 있으며, 소설 작품으로는 『라톰므』『기피자』와 『연극론』『비나베르 전집』등이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연극계는 이념성과 정치성에 의해 주도되었다. 50년대의 부조리극과 60년대의 정치 극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후의 이런 경향은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힘겹게 승리한 프랑스의 많은 예술가, 지식인, 그리고 노동자들이 연극을 포함한 예술의 이념적, 정치적 기능 - 주로 좌파적 입장에서 - 을 중요시하게 된 것에 기인한다. 특히 프랑스에는 50년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브레히트(Brecht)의 '변증법적 서사연극 (theatre dialectique et epique)' 이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작가인 사르트르와 까뮈의 영향도 컸다. 이와 같은 50〜60년대의 이념과 정치적 성향은 '68년 5월 혁명'을 맞으면서 그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68혁명은 이념과 정치의 결합 속에서 탄생한 일종의 유토피아였다. 70년대에 들어서자, 차차 혁명의 열기가 식어가고 유도피아의 실현이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면서,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감상적인 기대나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으로부터 눈을 돌려 다시 자신들 의 일상적인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념이나 정 치와 같은 거시적인 인류 전체의 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각 개개인의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치열한 진짜 삶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시적인 문제들, 한마디로 일상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70년대에 일어난 일상에 대한 관심은, 당시 철학, 문학, 예술 분야에서 형성된 새로운 기류와도 관계가 깊다. 푸코(Foucault), 데리다 (Derrida) 그리고 료따르(Lyotard) 등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이 기존의 근대적 거대담론을 비판하였다. 이들은 지금까지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었던 인간의 이성이 정말로 신뢰할 만한 것인가? 또 이 이성에 의해 발견되고 정당화된 진리는 과연 진리인가? 그럼 이 진리의 토대 위에 구축된 근대적 윤리와 이념, 그리고 역사는 어떤 근거 가 있는 것인가? 둥둥 근대적 사유, 이를테면 이성 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 그리고 합리적 진리 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인으로 서의 인간과 인간성에 대하여 성찰하였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는 별도로^ 70년대에는 사회학, 심리학, 언어학 등 인문, 사회학 분야에서도 범 학문적인 차원에서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가 성장하여 직접적으로 일상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고프만<E. Goffman>의 '미시사회학(micro-sociologie)과 가펑클(H. Gafinkel)의 '민속지학, 베이츤(G. Bateson)을 비롯하여 와슬라윅(P. Watzlawick) 등 '팔로 알토학파(Ecole de Palo Alto)'의 심리학자들(주로 정신과의사들), 하임즈(D. Hymes)를 중심으로 확립된 '의사소통의 민속학이 주요한 분야였다. 이들은 인간을 고립적이고 단자론적으로 보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 및 컨텍스트(contexte) 내에서의 상호작용적 존재로 파악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행하는 다양한 행동양식(말, 표정, 시선, 몸짓, 자세, 상호 간의 거리 등)을 분석하여, 총체적인 현상으로서의 의사소통과 인간을 연구하였다.

일상 극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였다.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재미를 제공하거나, 혹은 원대한 이념이나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려했던 전시대의 연극들과는 달리, 우리 시대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 연극으로, 독일의 크뢰츠(Franz Xaver KROETZ; 1946~)와 프랑스의 반젤(Jean Paul WENZEL; 1947~ ), 콜테스(Bernard Marie Koltes; 1948〜1989), 비나베르 (Michel VINAVER; 1927~) 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들은 극작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기도 하고 직접 연출도 하는가 하면, 이론가, 교육자, 사업가 등,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런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보다 세밀하게 일상 혹은 일상 속에 있는 사람들을 그려내었다. 미셀 비나베르는 프랑스 일상극의 선구자이며 대표 작가이다. 1927년 파리, 유태계의 고미술상을 하는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대어났다. 먼저 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하였지만, 1956년에 공연된 「한국 사람들」로 일약 극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다국적 거대 기업인 질레트(Gillette)의 고위 관리이기도 했으며,1959년에 쓴 작품 「이피게니아 호텔 (Iphigenie Hotel)} 이후로는 기업 활동에 전력하기 위해 10년 동안 극작활동을 멈추기도 하였다. 이때까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부조리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1969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구직(La Demande d'emploi)」, 「일과 나날 (les Travaux el les Jours)」, 「등을 땅바닥에(A la renverse)」 등에서는 치열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보여주며, 이때부터 일상극의 경향이 나타낸다. 1986년 「이웃집 사람들」로 극작가로서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는 입센(Ibsen)상을 받았고 「여인의 초상」은 그보다 앞서 1984년 에 쓰인 작품(1986년 출판)이다.

작품해설
일상생활에서의 대화는 ① 시간과 공간에서의 참여자들의 직접적인 접촉과 즉각적인 반응, ② 일상적 낯익음, 자발성, 즉흥성, 무 긴장성, 즉 최소의 제약과 자유로운 대화. ③단순한 수다라고 할 만큼 무상성 또는 무 목적성, ④참여자들이 대화상의 권리(말할 권리)와 의무 (들을 의무)에 있어서 동등함 둥의 특징으로 요약된다.
대부분 대화로 이루어진 연극의 대사는 일상회화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작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썼다는 점에서 이 일상회화와 다르다. 우선 연극은 인물들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삶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일상회화의 ①의 특징과는 동일하다. 그러나 모든 등장인물의 발화는 극적구성을 위해 작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본다면 일상회화의 ②의 특징(일상회화에서는 비일비재로 나타나는 대화의 주된 논지와 관계없는 발화의 난무)은 대단히 약화되어 나타나며 더구나 ③의 특징이란 거의 없고 등장인물의 발화의 대부분은 대단한 설득력과 논리를 갖추고 전개된다. 또 ④의 특징(발화순서 tour de parole 상의 갈등 : 타인이 발화하는 중에 끼어들어 말하기,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발화시작, 또는 아무도 발화하지 않음)이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혹 나타난다 하더라도 어떤 목적을 위해 조작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웅변가들처럼 긴 대사를 말하고 또 상대방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경청하며,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는 병리적 현상으로 보이는 독백(또는 방백)도 한다. 일상회화와의 이러한 상이성은 사실성을 표방하는 자연주의 극에서 조차 '극적 관습(convention dramatique)'이라는 이름하에 받아 들여졌다. 그런데 아래의 시퀀스에 나타난 소피와 자비에의 대화를 보면 위에 언급한 일상회화의 특징들이 그대로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①대화의 즉각 성과 대화주의에 입각하여 독백이나 방백도 또 서사극과 부조리극에서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는 서사적 담화도 없다. ②대화가 고향, 취미, 시험, 음식 등 낯익은 주제들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전개된다. ③대사의 논리성 결여나 비약이 많고, 또한 질문과 대답은 두 대화사이의 관여성이 적을 때가 많다. 그래서 대화만 으로는 무슨 이야기인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대화가 속한 시퀀스 전체 또는 다른 시퀀스까지 확장해서 보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④발화순서상의 갈등은 보이지 않으나, 대화의 비약이나 대화 도중에 일어나는 행동들로 인해 발화상의 공백(아무 말 않기)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또 거의 모든 대사(판사와 두 검사 그리고 변호사 제외)가 매우 짧고 간결하다. 세상의 모습을 가능한 한 사실 또는 진실에 가깝게 그려내려고 하는 점은 자연주의 극이나 부조리극, 또 「여인의 초상」과 같은 일상극에 있어서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자연주의 극은 연극의 제약성 속에서 극적 관습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인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했고 부조리극 또한 이를 "사실보다 더 진실한 세계의 모습” 으로 그려내려 했다. 하지만 자연주의 극은 극적 환상을 창출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이 제시하는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 사건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히는 말, 즉 다음에 언급할 '통일적 주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주의 극에서 추구하는 사실성은 작가가 논리성을 부여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이 사실성은 어디까지나 '사실적 직함''이라는 의미에서의 사실성이지 따지고 보면 정작 인위적인 것이다. 한편 부조리극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들을 최대한 부각시켜 인간관계의 소외 및 삶의 역설성과 부조리 성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러한 인간관계와 삶의 조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할 목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진실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작가의 필요에 따라 어느 정도 과장되게 묘사되고 또 변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인의 초상」과 같은 일상 극은 마치 작가가 사건의 현장 속에 뛰어 들어, 카메라로 몰래 찍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화가 일상의 회화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고 여기에 작가는 그 어떤 목적의식도 가지지 않은 채,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있다. 일상 극은 이렇게 일상의 삶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 자연주의 극이나 부조리극과 다르다. 이런 입장에서 일상 극을 “(일상) 회화의 연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인의 초상」은 "릴, 카페의 테라스", "던케르크 외곽에 있는 오자노의 집", ''파리, 어느 작은 주점 안" 등과 같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소제목으로 붙인 시퀀스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단편적인 시퀀스 구성은 비나베르의 다른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그 형식은 막과 장, 단순한 번호 등의 형태로 구분되거나, 번호가 붙는 경우 또는 소제목이 붙은 경우도 있고 붙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하다.
전통연극도 막이나 장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비나베르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작품을 구성 하는 각각의 단위가 서로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고 있어서 최종 적으로 통일된 이야기를 생산하는 기능을 한다면, 후자는 서로 이런 긴밀한 통일성이 없는, 있어도 아주 느슨한 단위들이기 때 문이다. 이는 일상 극이 내용의 차원에서 앞서 언급한 '통일적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통일적 주제란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인과론적인 관점에서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장치이다. 비나베르 연극에서 이것의 부재는 전체를 통합하고 통일시키는 그런 장치의 부재를 의미하고 그 결과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각각의 사건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하지 못하고 조각난 상태로 남아있게 되며, 또 작품의 주제도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거나 혹은 다의적인 채로 남게 되는 것이다.
「여인의 초상」의 경우에도 시퀀스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그래서 과거-현재-미래로 배열됨을 거부한 채, 오직 "지속에 대립된 매 순간 위에 세워져 있는(위베르스펠트)” 현재성만을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극단 적인 현재성은 각각의 시퀀스가 재현한 일상의 사건들이 "우리의 세력권 밖에 존재하는 우연성”에 귀착됨을 보인다. 작품의 전체성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각각의 시퀀스들은 주인공 소피의 행동과 그 행동의 변화처럼 서로 아무런 논리적 상관관계가 없다. 대사도 시퀀스 속의 현재적 발화일 뿐, 어떤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 작품의 전체성에 의도적으로 삽입 된 것이 아닌, 그야말로 조각나 있다. 주인공 소피의 행동의 변화를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배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소피는 사랑을 한다든지 하는 특별히 설명될 만한 이유 없이 자신을 따라온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2)소피는 사비에를 좋게 보고 있고 또 그래서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사비에의 구혼을 거절 한다.
(3)소피는 다른 남자들(꼴로나 교수, 슐레진저 박사, 비인에 사는 프랑스 기술자)과 관계를 갖는다.
(4)소피는 사비에가 프랑신느와 결혼을 결심하고 자신을 떠나자, 그의 부재에 대해 괴로워한다.
(5)총포상에서 총을 구입한다.
(6)소피는 사비에가 의사 시험에 합격한 후 릴르에서 파리로 이주하자 그의 아파트로 찾아가 그를 살해한다.
(7)소피는 재관을 받는데, 이 재판 중에 소피 또는 여러 사람들은 진술 또는 증언을 한다.
이렇게 조각난 이야기는 사실 해체적인 글쓰기의 전형이기도 하다. 통일적 주제라는 개념은 '초월적 기의'라는 개념과 동일한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 초월적 기의가 부재하면 주제가 부재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작가의 부재'와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이때 문학 텍스트(연극을 포함하여)는 오직 독자의 마음속에 다양한 의미 작용의 유회를 유발시키는 '흔적'만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대서사의 부정과 비합리적 주체에 의한 새로운 글쓰기의 모색이라는 료따르의 주장과 이런 대서사, 즉 메타담론이 지배 권력을 합법화하기 위한 담론이라는 푸코의 비판과도 상통한다.
비나베르의 연극에서는 이야기가 조각난 형태로 전개됨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단편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렇게 제시된 성격도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이거나 분열적인 양상까지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초상」에서 소피는 솔직한 여자(기보부인), 마음이 약한 여지(소피 어머니), 현실적이거나 이해 타산적이지 않은 뜨거운 여자(꼴로나 교수), 충동적 기질의 여자(오르브르 박사), 부도덕한 여자(사비에의 친구들) 등 매우 다양한 성격으로 그려진다. 이는 현대인간의 성격이 단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 반대로 그 인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 다시 말해서 여러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한 인물을 각자 나름대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즉 어떻게 다르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이 동일한 인물 뿐 아니라 동일한 사건 또는 동일한 현상에 대하여 서로 얼마나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래서 정작 그들 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획일화된 인간성과 그 획일화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며 거부이기도 하다.
「여인의 초상」의 대화 속에는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인물들의 대화가 종종 끼어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이오네스코의 「코뿔소」에서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 박사들의 대화가 삽입된 것처럼, 한 장면에 여러 상황, 또는 어떤 사건에 다른 사건이 서로 뒤섞이는 경우이다. 이런 경향은 비나베르의 후기작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일상이라는 시공간이 사람들의 만남, 갈등, 화해 등 지금 여기에, 즉각적이고 현재적으로 실재하는 사건뿐만 아니라 과거(기억이나 회상 이라는 형태로)와 미래(기대나 전망이라는 형태로)가 공존하는 시공간이며, 또 꿈과 몽상 같은 비현재적이고 비실재적인 요소들이 중첩되고 쌓여서 이루어진 아주 복합적인 시공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일상에서 어떤 한 순간의 나를 상상해보 면 우리는 그 순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입체적인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시퀀스가 끼어들어 대사가 맞물리는 것은 ①재판에서 행한 직접진술의 층위와 ②극화된 진술의 층위 그리고 ②의 층위 하부에 서로 끼어든 시퀀스들의 층위로, 그야말로 충위의 스펙트럼을 보인다. 즉 재판증인이면서 그 재판 속에서 극화된 자기 진술의 극중 인물이기도 한 등장인물들과 또 그들의 대사는 마치 무한히 전개되는 극중극의 형태를 갖는다. 비나베르의 「여인의 초상」은 이처럼 시퀀스의 끼어듦과 대사의 맞물림, 그리고 다층의 구성을 통해 동시에 일상의 혼돈성과 입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대화의 뒤섞임은 혼돈과 입체성을 넘어서서,'극 중 극 중 극' 의 형식으로 확대된다. 일반적으로 '극중 극'의 형식은 서사극 에서. 발생하는 '거리두기 효과'와 동일한 효과, 즉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극 안에서 또 다른 극(='극중 극')을 바라보는 관객(=극 안에서 '극중 극'을 관람하는 등장인물)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 효과, 다시 말해서 자신은 연극을 보러온 관객으로 눈앞에 펼쳐진 사건은 현실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몰입에서 빠져나와 극의 사건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효과 (이중부정의 효과; 위베르스펠트)를 낳는다. 그러나 「여인의 초상」과 같은 비나베르의 일상극-이 점은 사실 부조리극에서도 많이 나타난다.-에서는 '극중 극'의 형식은 취하고 있으나 정작 어디까지 가 극이고 어디에서부터 '극중극'인지 구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거리두기 효과와는 정반대의 효과, 즉 극과 극중극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동시에 현실과 극의 경계도 모호하게 하여 관객을 오히려 혼란에 빠트리는 효과를 낳게 한다. 이 혼란은 환상주의 연극에서의 환상과는 다른 효과이다. 왜냐하면 환상이란 관객이 자신을 어떤 등장인물과 또는 현실을 연극(허구)과 동일화할 때 발생하는 효과라면, 여기에서의 혼란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발생하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한편 '극 중 극 중 극'의 형식은,'극중 극'을 다시 극화함으로써 '극중 극'의 거리두기 효과를 통해 획득한 자각을 아이러니화 하는 효과, 즉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연극이다'라는 자각을 다시 극회는'지금 보고 있는 것이 연극이다 는 자각이 연극이다') 하는 효과, 다른 말로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행위(=사실)- 연극화(허구화)하여 극적 사건에 대하여 비판한 것을 다시 한 번 스스로 의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여인의 초상」의 이러한 형식을 통해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비나베르의 연극은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사건들-의미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의 의미에 관해 작가가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일견 인간관계, 사회문제, 정치문제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거나 전혀 비판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문제들을 오히려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는 바로 일상으로부터 나오면서 다시 되돌아와서 일상과 그 일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상에 관한 모든 언급은 작가, 연출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여러 문제를 함축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주의 극에서는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그것은, 작가란 항상 극의 바깥-사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인데, 만약 이런 작가가 극(적 사건) 안-허구의 세계-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면 극의 바깥 세계를 연극(허구)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 연극 (허구=극적 사건)에 몰입해 있던 관객의 환상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상 자연주의극의 작가는 그 모습은 감추고 있지만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가 이며,실제로 통일적 주제의 관점에서 전체의 이야기를 조정하여 작품의 의미를 제시하는 초월적 존재이다. 따라서 자연주의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초월적 존재의 목소리가 허구적인 인물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일상 극에서도 작가는 극 속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데, 이것이 자연주의 극보다도 더 철저하다. 자연주의극의 작가가 '참여하지 않는 관찰자로 그러나 초월적 존재로서 의 이야기 창조자라면, 일상극의 작가는 '참여하는 관찰자'로 자신이 본 것만 묘사하는 리포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형식적으로 일상극은 관찰한 단편적인 사건을 그냥 있는 그대로 제시하기만 할 뿐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킨다거나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인의 초상」과 같은 일상극에서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모아 나름대로 논리성을 찾아내어 이야기를 형성 해내고 또 그 속에서 주제를 구축해(절대로 찾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여기에 '극 중 극 중 극' (혹은 경계가 모호한 극중 극)이라는 형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긴장과 의심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연극을 대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이와 같이 일상극은 문제와 문제의 해결에 관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스스로가 작품 속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어떻게 비판하고 해결해야 할 것인지 모색 해 보아야 한다. 이점이 일상극의 관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은 연극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또 인물들은 왜 이런 말을 하며 그렇게 행동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흥미도 잃게 된다. 물론 관객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볼 수 있고, 따라서 전혀 다르게 비판하고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관객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목소리가 바로 일상 극이 추구하는 바 이며, 또 관객이 동일한 한 사건을 이렇게 서로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 즉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 있고 따라서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일상극이 추구하는 바이며, 이런 의미에서 일상극을 모든 의미생산에 있어서 관객이 주체가 되는 관객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5집에 실린 본인의 논문 "일상극 연구: 탄생의 배경과 형식"을 발췌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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