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셰익스피어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clint 2016. 1. 16. 09:36

 

 

 

 

 

 

음모, 배신, 복수, 살인, 강간, 학살, 악행, 위선, 애욕, 불륜, 잔혹…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복수극<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셰익스피어의 초기(1589∼1593) 작품 중 유일한 잔혹 비극으로<리어왕>,<오델로>와 같은 작품의 기초가 된 작품이다. 잔인무도한 이야기가 활개를 쳤던 당시 엘리자베스 시대에<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아 한동안 이 작품의 인기를 능가할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시대적인 유행이 변하면서 지나친 잔혹성 때문에 오랫동안 공연이 기피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1950년대 이후 피터 브룩 등에 의해 그 가치가 재발견되어 무대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힘이 넘치는 언어, 강렬한 극적 행동, 스피디한 전개 속에서 권력투쟁·성 대결·가족갈등·인종차별·계급문제·종교갈등 등으로 빚어지는 다양한 갈등 양상은 가장 보편적인 소재이면서 이 작품이 오늘날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셰익스피어의 원본은 거의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무대와 의상, 조명, 음악 등으로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구태의연한 셰익스피어 공연들과는 다른 진짜 셰익스피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흑·백·적·청으로 된 단순한 빈 공간, 그 속에서 부대끼고 나뒹구는 적나라한 인간군상들 - 국립극단 김철리 예술감독의 날카로운 연출로 빚어질<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대량 학살과 폭력 속에 무방비 상태인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이고 폭력과 광기란 또 무엇인지, 많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줄거리
용맹한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고트 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다. 타이터스는 포로가 된 고트 족의 여왕 타모라의 애원을 무시하고 여왕의 큰아들을 살해한다. 원로원은 타이터스를 황제로 추대하지만 그의 거절로 사악한 왕자 새터니어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고, 새터니어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타모라는 황후가 되어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복수심에 불타는 타모라는 무어 인인 정부 아론, 두 아들 카이론, 디미트리어스의 힘을 빌어 복수를 시작하고, 극은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살육, 광기로 점철되면서 예측불허 속에 잔인무도한 일들이 일어난다. 타이터스의 딸 라비니아는 타모라의 두 아들들에게 겁탈 당한 뒤 손과 혀가 잘리고 타이터스의 두 아들들은 살인 누명을 쓰고 목이 잘린다. 타이터스 역시 한쪽 손을 잃고 미치광이가 되고, 간신히 이 모든 음모의 정체를 알아차린 타이터스는 반격에 나서는데…,

 

국립극단 공연 (2003년)

 

셰익스피어는 영국 관객들이 잘 아는 내용의 영국 사극 보다는 덜 알려진 로마 사극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창작했을 게 당연하다. 이 작품은 첫 번째 로마 사극이며, 초기 실험작 혹은 비극을 쓰기 위한 습작으로 1593-4년에 썼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몇 가지 말썽이 따른다. 1594년에 4절본으로 처음 출판되었지만 그 원본이 불확실하다. 이 4절본과 극장에서 쓰던 프롬트북을 참고로 하여 변형된 것이 나중에 나온 2절본이다.
정치 갈등과 복수의 이야기를 일정한 톤과 드라마로 구성한 이 작품의 오리지널 소스는 에우리피데스의 ‘헤쿠바’(Hecuba), 세네카의 ‘티에스테스’(Thyestes)와 ‘트로아데스’(Troades)이고, ‘오비드’와 플루타크(Plutarch) 영웅전에서 딴 부분도 있다.
이 작품은 아주 거칠고 자극적이며 잔인한 행동이 너무 많아서 한동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한지 약 100년 뒤인 1687년에 영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에드워드 레이븐스크로프트(Edward Ravenscroft)는 이 작품을 각색하여 공연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작가가 쓴 것을 셰익스피어가 몇 부분 고친 것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가 부정확하고 말도 안 되며 구성도 엉망인 이런 ‘쓰레기’(Rubbish) 덩어리를 썼을 리가 없다.”
‘쓰레기’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써가면서 셰익스피어의 고귀한 명성을 구해내려고 했던 레이븐스크로프트처럼 수많은 셰익스피어 추종자들은 이 작품을 다른 작가가 썼다고 우긴다. 그러나 메레스(Meres)는 1598년에 낸 ‘팔라디스 타미나’(Palladis Tamia)에서 이 작품의 작가가 셰익스피어라고 틀림없이 써 놨다. 그리고 인쇄된 첫 4절본 중에 이 작품이 들어있기에 학자들은 할 수 없이 이 작품도 셰익스피어가 쓴 것으로 인정하게 됐다. 그러나 다른 로마 사극들에 비해서 수준이 몹시 떨어지는 점에 대해 계속 변호했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쓸 당시 겨우 26세로 비극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실험하던 시기라는 거다. 도대체 이 작품의 품질이 얼마나 나쁘기에 그렇게 아우성일까?

 

 

 

우선 이 작품은 단순한 사극으로 분류하기도 힘들다. 대부분의 사건과 인물은 역사적 사실에서 뽑아낸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순수한 창작이 많다. 또 비극의 요소도 갖고 있지만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못한다. 억지로 이 작품을 분류하자면 주인공이 끈질기게 노력하여 성공하는 ‘복수 비극’이다. 실제로 여러 면에서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유행이던 복수극의 형식을 많이 따랐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패러디한 느낌이 든다.
쓰레기였건 복수극이었건, 이 작품은 처음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관객들은 (요즘처럼?) 피가 잔뜩 튀기는 얘기를 좋아했고 이 작품은 약 10년간 엄청난 인기작이었다. 물론 품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최고작이 아닐지 몰라도 작품의 시를 보면 틀림없는 셰익스피어 스타일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압도적인 의견이다.

 

 

 

클라크 헐스(Clarke Hulse)라는 사람이 세어보니 이 작품에서는 모두 14번의 살인이 벌어지는데 그중 9번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6번이 아주 끔찍하며, 강간은 (보는 기준에 따라) 1-3회, 생매장이 1회, 사람을 먹는 장면이 1회, 그리고 별별 끔찍한 장면이 많아서 평균 막마다 5.2번 혹은 대사 97줄마다 한 번씩 잔혹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비평가 마이크 진 월러스(Mike Gene Wallace)가 몇 마디 더 보탰다. “14회의 살인이 맨손, 칼, 창, 단검, 활, 파이로 이루어지고 동물 울음소리가 가득한 중에 대가리가 잘리고, 손이 잘리고, 혀가 잘리고, 약 8리터의 피가 흐르기 때문 구토지수 94를 기록한 끔찍한 작품이다!” 게다가 대사들도 장면에 뒤질세라 아주 잔인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한마디로 ‘폭력 카탈로그’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영화감독 샘 페킨파가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로마 장군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가 10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데리고 나간 25명의 아들 중 넷 만이 함께 돌아온다. 그는 고트족의 왕비 타모라(Tamora)와 세 아들, 그리고 흑인 아론(Aaron)을 포로로 데려왔으며, 로마의 의식에 따라 그 중 큰아들을 죽여 죽은 아들들의 제물로 바친다. 타모라는 이에 분노하여 복수를 다짐한다. 마침 서로 황제가 되려는 두 왕자 사이에 갈등이 터지고 타이터스의 딸이 연루된다. 그리고 일이 꼬여서 타이터스는 친 아들을 하나 죽이게 된다.
타모라는 새로 황제가 된 새터니너스(Saturninus)를 ‘꼬셔서’ 황후가 된다. 그리고 정부 아론을 시켜서 타이터스의 두 아들을 황제의 형제 바시아누스(Bassianus)의 살인범으로 누명 씌운다. 그래서 타이터스의 두 아들은 목이 잘린다. 그러나 아직도 성이 안 풀린 타모라는 자신의 두 아들 키론(Chiron)과 데미트리우스(Demetrius)를 시켜 타이터스의 딸 라비니아(Lavinia)를 강간한 뒤에 고발을 못하도록 두 손과 혀를 잘랐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타이터스의 아들 루시어스(Lucius)는 로마에서 달아나 적인 고트족과 연합하여 쳐들어오려고 한다.
계속되는 불행 속에서 늙고 지친 타이터스는 미친 것처럼 괴상한 행동을 한다. 그러자 타모라는 그것을 이용하여 루시어스의 공격을 막으려한다. 그러나 타이터스는 미친 것처럼 행동하며 타모라를 속여 그녀의 두 아들을 잡아 죽인 뒤에 파이로 만들어서 타모라에게 먹이고 결국 그녀와 자기 딸 라비니아를 죽인다. 루시우스는 아론을 생매장하고 로마의 새로운 황제가 된다.

 

 

 

컬트 걸작
이 작품의 예술성이나 도덕적인 문제 등은 더 이상 따지지 말자. 그 대신 비디오 샵을 뒤지거나 DVD를 찾아서라도 꼭 봐야 할 ‘죽이는’ 작품을 권한다. ‘매드 맥스’와 ‘매트릭스’ 그리고 스필버그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틀림없이 좋아할 이 영화는 1999년 영국의 여자 감독 줄리 테이모가 만든 ‘타이터스’(Titus)로, 안토니 홉킨즈와 제시카 랭 주연이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봐도 아주 좋아할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왜 우리나라에서 개봉이 안됐는지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단, 임산부와 노약자는 보면 안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대사는 이태리 식당에서 스파게티에 소스와 미트볼도 들어있느냐는 질문에 주인이 하는 대답이다. ‘때로는 스파게티도 혼자 있고 싶어 합니다!’
이 영화가 화제를 일으키자 이 작품은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몇 작품이 계속 나왔다. 리차드 그리핀 감독이 2000년에 만든 영화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는 공포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앞의 영화에 비하면 ‘썰렁’하다. 그보다는 영화 ‘타이터스’의 스타일을 이용한 크리스토퍼 던 연출의 무대 공연이 영국과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