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쓰야쿠 미노루 '죠반니의 아버지로 가는 여행'

clint 2016. 1. 15. 20:48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성냥팔이 소녀>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베쓰야쿠 미노루와<수수께끼 변주곡><블라인드 터치>의 연출가 김광보의 만남은 예정된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작품 세계는 현실 속에 녹아있는 부조리를 파헤치고 비극과 희극적 상황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등 많은 부분들이 닮아있다. 만화영화<은하철도 999>의 원작자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의<은하철도의 밤>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이 작품은, 일본 소시민의 전형과 부권의 부재를 딛고 일어서는 한 인간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공방전. 23년 전 별 축제가 열리던 날, 마을사람들은 죠반니가 평소에 그를 괴롭히던 자네리를 일부러 강에 빠뜨렸고, 물에 빠진 자네리를 구하려다 캄파넬라가 대신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믿고 있다. 죠반니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서 23년 만에 아버지의 부음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사람들은 그의 자백만이 캄파넬라가 진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라 믿으며 죠반니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연극을 한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은 죠반니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향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과 그 믿음에 부응하는 진실을 구현해 내는 것. 그것이 주인공 죠반니가 아버지의 되는 과정이고, 그가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해 냄으로써 사람들을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베쓰야쿠 미노루(別役實)

 

 

베쓰야쿠는 서구 부조리극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일본인의 무의식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매우 독특한 일본식의 화법을 통해 작품을 구축했다.<죠반니>에서 드러나는 주제 역시 이러한 맥락과 연결이 되는 부분이 많다. 원래 이 작품은 일본 근대소설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그 전개와 내용은 완전히 다르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 어른과 아이... 이 모든 것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설정이 이 작품을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모호함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극적 유희로 작용한다. 이 유희는 이 극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터지는 유머, 그리고 이 유머 속에 병행되는 그로테스크를 통해 다시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이끌고 있다.

 

 

 

 강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자신 안에서 은하계를 의식하고 그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하계를 포용하는 투명한 의지, 그리고 거대한 힘과 정열이다. - 미야자와 겐지
베쓰야쿠 미노루의 1987년 작<죠반니의 아버지로 가는 여행>은 한국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와 함께 그 해 일본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었다. 예술선장문부대신상과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연극평론가가 뽑은 87년도 베스트 5로
아사히신문 문화면에 소개되었다. 베쓰야쿠는 서구 부조리극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일본인의 무의식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매우
독특한 일본식의 화법을 통해 작품을 구축했다.<죠반니>에서 드러나는 주제 역시 이러한 맥락과 연결이 되는 부분이 많다. 원래 이 작품은 일본 근대소설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그 전개와 내용은 완전히 다르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동화에서는 어린 죠반니의 성장과 그를 둘러싼 마을과 우주에 대한 동경, 환상이 담겨 있다면 베쓰야쿠의 작품에서는 냉혹한 현실의 문제의식이 첨예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 즉 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부성이 이끌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이 시스템은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여지는, 그렇지만 그 시스템 선상에서 발생하는 책임의 원리는 냉엄하다.
즉 개인과 집단 간에 벌어지는 현대사회의 비정함, 아버지가 사라진 세대,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결의(이 결의는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며 개인
에게 발생하는 질문들을 말살하는 것, 타인에 대한 증오조차 사라진 것에 대한 두려움-일종의 침묵에 대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죠반니는 마을을 떠나 23년 만에 다시 마을사람들에 의해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누명을 밝히고자 마을에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가 확인받게 되는 것은 그 스스로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느냐로 이어진다. 하지만 통과의례에 대한 이 이야기는 사실 결말이 없다. 다만 멀리 기적으로 울리며 마을로 다가오는 은하철도를 통해 죽은 자들이 비로소 그 죽음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한 트릭을 거쳐 진행된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희미해지고 아버지의 누명을 밝히겠다는 죠반니는 그 스스로가 인정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전보다 미약하다. 그들은 사회 속에서 그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것. 간단한 원리이지만 이것은 현대사회 속에서는 매우 희미한 여정으로 그려진다. <죠반니>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매우 냉혹하다 싶은 정도로 차갑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경험이 될 수 있지만 죠반니의 여행은 미야자와가 말한 대로 투명한 의지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베쓰야쿠 역시 사회 시스템에 대해 항거하는 방법은 소시민적 삶에 대한 대응으로서 조용히 삶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구원하게 하는 힘은 결국 자기 스스로의 힘 밖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스스로가 자신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