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알레한드로 까소나 '나무는 서서 죽는다'

clint 2016. 1. 15. 20:31

 

 

영혼의 집. 이곳은 가짜 광대, 거지 등 역할대행인을 교육하고 그 대행인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기억과 영혼의 궁핍을 겪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기억과 영혼을 얻도록 돕는 자선단체다. 정신없이 등퇴장하는 인물, 그들이 벌이는 해괴한 짓거리들에 사무실은 혼란스럽다. 그곳 ‘영혼의 집’ 소장의 계획에 말려 한 외롭고 절망에 빠진 아가씨, 이사벨이 대행인으로 동참하게 된다. 동시에 할아버지 발보아가 할머니의 죽기 전 소원인, 20년 전 집을 나간 손자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이루어 주고자 '영혼의 집'에 의뢰를 하게 된다. 다급한 시점에 소장과 이사벨은 할머니의 손자 마우리시오와 그의 아내 역을 맡게 된다. 할머니의 집은 20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마당의 정원수 하나까지 그대로 지켜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이다. 할머니 앞에서 소장과 이사벨은 손자부부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20년 전 진짜 손자가 좋아했던 케이크를 찾고 진짜 부부처럼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할머니에게 연기한다. 그들을 진짜 손자부부로 알고 있는 할머니는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푼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에 이사벨은 삶의 희망을 얻게 되고, 소장은 이사벨로부터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되지만 아슬아슬한 거짓 연기는 점점 더 소장과 이사벨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결국 소장은 그 집을 나갈 묘안을 마련하지만 뜻하지 않은 손님의 등장으로 그들의 거짓 연극이 탄로 날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알레한드로 까소나(Alejandro Casona)는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유명한 극작가이다. 까소나의 작품에는 여느 영미 희곡이 쉽게 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이 깃들어 있다. 까소나는 현실 속의 비현실, 비현실 속의 현실을 추구함으로써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상징적 수법 통해 지나치게 어려운 연극보다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잔잔한 휴머니즘을 추구한다. 이는 사실주의 연극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미 아모르(Mi Amor) 라면 스페인어로 나의 사랑이란 말인데 얼마전 공연된 이 작품의 다른 제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두 차례 '굿바이 마우리시오'(2005, 2006)란 제목으로 공연된 바 있다 - 작품에 나오는 중심인물인 손자의 이름이다... 헌데 왜들 좋은 제목을 놔두고 이렇게 제목을 바꾸는지 모르겠다
* 1949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초연된 연극은 알레한드로 까소나(Alejandro Casona)의 '나무는 서서 죽는다(Los árboles mueren de pie)' 원작명 그대로이다. 작품은 까소나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생활 하던 시기에 쓰였으며,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알레한드로 까소나(Alrejandro Casona, 1903-1965)

스페인의 현대 극작가들 중에서 알레한드로 까소나 만큼 많은 나라에서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 1932년<좌초된 인어>로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극상 중에 하나인 로빼 데 베가 연극상을 수상하면서 자국 내 극작가로서의 위치가 확고해졌지만 곧이어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망명의 길을 걷게 된다. 프랑스를 거쳐 멕시코, 쿠바,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였고, 1937년 멕시코에서는<봄에는 자살 금지>를 무대에 올려 공전의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라틴 아메리카를 순회하던 까소나는 1939년 결국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착하여<여명의 숙녀>,<어부 없는 배>,<나무는 서서 죽는다>,<일곱 개의 발코니가 있는 집>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아르헨티나는 물론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까소나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거둔 성공은 고국 스페인에까지 알려져 프랑코 철권정치가 어느 정도 완화된 1962년에는 드디어 스페인으로 귀국하게 된다. 그의 귀환과 함께 시작된 까소나의 공연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국 내의 관객에게도 큰 호응을 얻게 된다. 프랑코 정부의 엄격한 검열 정책으로 인해 문화가 극심하게 위축되었던 스페인에서 페르난도 아라발이나 막스 아웁 등 다른 귀환 작가들의 작품들이 별다른 관객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까소나의 성공은 무척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연극이 대중 친화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의 억압 속에서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당시의 스페인 연극계의 지성들에게 신화적이고 시적인 공간만을 보여 주는 까소나의 연극은 현실 도피적으로 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스페인 비평가들로부터 다소 유아적이고 멜로드라마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0년대 당시 스페인 연극 비평가들에게 칭송을 받던 부에로 바에호나 알폰소 사스뜨레 또는 사실주의 세대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까소나의 작품들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삶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까소나의 예술적 감성은 사회문제보다 인간의 내면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전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꿈과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며, 그가 그리고 있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심각한 갈등은 작품에서 심리적 깊이를 얻으며 환상적 분위기와 긴밀하게 결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