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73

임선영 '작은 집을 불태우는 일'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한 불씨는 집을 불태운다. 봄, 여왕벌은 집을 만들고 어린 장수 말벌인 89와 90은 길러주는 엄마인 5를 통해 집에 대한 규칙을 배운다. 89는 자신들보다 오래 사는 꿀벌이 밉다. 시간이 지나 성년식이 다가오고, 89와 90은 성년식을 거쳐 집을 지키는 일과 집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 한편, 5는 성년식 동안 다른 뜻을 품는데.... 장수 말벌의 세계에 빗대어 인간 세계의 다양한 화두들을 논의해 보려는 작품이다. 시적 언어와 소재의 선택은 흥미로웠으나, 전반적인 개연성이 부족하여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세계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인간중심 세계에 대한 은유로서만 쓰인 것인지, 혹은 인간중심 세계를 벗어나 장수 말벌인 비인간 존재세계 자체를 내밀히..

한국희곡 2024.01.27

쥘르 르나르 '홍당무'

붉은 머리 때문에 홍당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프랑소와는 사랑에 굶주린 외로운 소년이다. 방학동안 집에 와있는 홍당무는 어머니의 학대와 멸시에 점점 자신감을 잃고 집을 나가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사냥에 동행할 기대로 들떠있는 홍당무에게 하녀로 일할 아네뜨가 찾아오고, 홍당무는 그녀와 긴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의 반대로 사냥을 가지 못한 홍당무는 아네뜨의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진정한 화해를 한다. 아버진 홍당무를 별명이 아닌 프랑소와라는 본명으로 불러준다. 홍당무의 어머니는 특별한 이유 없이 홍당무를 미워하고 괴롭힌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항상 바쁘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홍당무는 눈치가 빤하다. 밥을 먹을 때나 인사를 할 때도 엄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

외국희곡 2024.01.26

성준기 '금연교실'

이 작품은 주인공 김석철이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고, 의사는 신경쇠약증세라며 담배가 그 주요 원인이란다. 의사의 권유로 금연교실이라는 곳을 소개 받는다. 성실한 회사원이었던 주인공은 금연단체에 가입 서명하게 되면서 그의 사생활은 컴퓨터 감시망에 의해 완전히 노출되어 버려서 어떤 비밀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김석철은 금연교실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경찰, 관청 등을 찾아 다니며 호소하지만 오히려 김석철 자신이 우습게 취급되어 버린다. 그 모든 것이 그가 서명한 가입서에 다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조직의 힘과 목적에 의해 자신의 삶이 침해 당하는 그는 어떻게 될까. 회사에서도 잘리고, 가족들도 떠나고 혼자 남게된 그는 끝까지 버틴다. 현대는 목적에 따라 수단이 정당화되는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이..

한국희곡 2024.01.26

이예본 '제로쉴드제로'

기후위기의 기점으로 언급되는 2050년 이후, 국가는 지속 가능한 방안이 아닌 저렴하고 파괴적인 에어로졸 정책을 시행한다. 슈트와 헬멧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화성 이주와 '쉴드', 과학기술을 믿으며 안도한다. 버려질 행성에 남은 '스모그 베이비 세대' 루이와 재이는 고작 한 평의 쉴드, 그리고 산책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쉴드에 균열이 생기면서 또 다른 목소리들이 방문하기 시작하는데... 작가의 말 - 이예본 매년 갱신하는 더위, 자신의 집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사람들, 주거지를 빼앗기는 동물들을 생각하며 를 시작했습니다. 는 기후 위기 기점을 지난 205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로쉴드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침입 당하는 루이와 재이의 이야기가 ..

한국희곡 2024.01.26

강신욱 '대구장 가는 버스 '

군위, 90대 초반. 10대 중반에 여기로 시집을 왔다. 영천, 80대 후반. 20대 초반 영천에서 여기로 시집을 왔다. 남편은 중풍에 걸려 고생하다 10년 전 저 세상으로 갔다. 4남매를 두었으나, 모두 대구, 부산에 산다. 안강, 70대 후반. 20대 초반, 안강에서 여기로 시집을 왔다. 남편을 일찍 잃었다. 자식이 있었으나, 병으로 지금은 아무도 없다. 다리가 아파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군위, 영천, 안강은 이름이 아닌 이 할머니들의 친정이 있는 고향이다. 이상 세 할머니가 등장하며 매일 매일 마을 휴게소에서 소파를 닦는 게 일상이다. 한때는 시집살이에 서러워서, 또 한때는 남편에, 자식들 때문에 속상할 때마다 그녀들은 서로를 위로해주며 달래고,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해온 것이다. 장소만 바뀌었을 ..

한국희곡 2024.01.25

성준기 '옛날의 금잔디'

파이터 강은 복싱선수로 세계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한창 전성기에 그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절룩이게 되자 권투계를 떠났지만.... 그는 일자무식인데다 우직스럽기만 해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예전 그의 매니저를 찾아가 링에 세워달라고 조른다. 그러나 매니저는 갖은 욕설로 협박하다 또는 감언이설로 달래 파이터 강을 돌려 보내려 애쓰나 파이터 강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식이 되고 만다. 한편 파이터강의 딸 나미는 경제적으로 가정이 어려워지자 공장에 나가는데 결국 돈 때문에 직장상사와 육체관계를 갖게 되고 대학에 다니던 아들 용수마저도 아버지의 무능함에 반항하듯 대학을 중지하고 체육관에서 복싱연습으로 울분을 달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수는 우연히 누나인 나미의 비밀을 알게 되자 그만 집을 뛰쳐 나오고 만다...

한국희곡 2024.01.25

박소영 '찬란한 여름'

어느 날 학급 반장민애가 학급비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친구인 정혜가 평소 음침하고 잠만 자고 있는 찬란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민애는 그런 찬란이 신경쓰인다. 찬란은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민애를 따라 용기를 내보기로 하는데... 결핍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각자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아두었던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 치유하고 자신의 상처를 대하며 나누는 공감의 정서와 이야기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딱히 부족한 것도 없지만 알 수 없는 결핍을 느끼며 살고 있고 그 결핍을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외롭고 또 괴로운 것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한국희곡 2024.01.24

위성신 '청년창업 고군분투기'

29살 대학을 졸업 후 인생의 쓴맛을 본 진나리와 최고야는 인생의 황금기를 취업과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각종 아르바이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에 다가올 서러운 서른을 대비해 새로운 인생 설계를 계획한다. 이른바 창업! 우여곡절 끝에 컨셉 카페를 열기로 결정한다. 플라워 카페(꽃집+카페)를 창업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 끝에 카페 오픈!! 그러나 쉽지 않은 카페운영과 홍샛별의 꼬드김에 심야식당을 오픈, 한 장소에서 여러 가게를 운영하는 24시간 운영체제로 바꾼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즈음, 여러 가지의 위기가 발생하는데... 그들은 수많은 지뢰밭을 뚫고 무사히 청년창업의 성공 신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사회에서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 실업자들..

한국희곡 2024.01.24

토머스 데커, 토머스 미들턴 공동작 '왈패 아가씨'

토머스 데커, 토머스 미들턴 공동 집필의 '왈패 아가씨'는 1611년 공공 극장 포춘(The Fortune)에서 초연되었다. 이 초연에서 몰의 실제 모델인 메리 프리스(Mary Frith)가 무대 위에서 남장한 채 류트를 연주하며 노래했다고 하니, 여성의 무대 출연이 법으로 금지되어 소년 배우들이 여성역할을 했던 런던에서 메리 프리스는 공공극장 무대에 등장한 첫 여성인 셈이다. '왈패 아가씨'는 도시희극의 유행 이후 1951년까지는 리바이벌 공연 기록이 없고, 브라이언 기번스나 알렉산더 레가트 등의 도시희극 연구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왈패 아가씨'가 영문학 비평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1990년대에 여성주의 비평이 도래하면서부터인데 근대 초기 영국에서 남장여성은 성과 젠더, 결혼과 계급. 여성..

외국희곡 2024.01.24

박태원 원작 성기웅 구성 '소설가 구보씨의 1일'

1930년대 전반,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 이 도시의 남북을 가르며 흐르는 청계천에도 살얼음이 얼고, 그런 탓에 개천가 빨래터에 아낙들도 한산하며, 전차가 오가는 광교 아래엔 거지 깍쟁이들이 목을 잔뜩 움츠린 채 허연 눈동자만을 껌뻑이고 앉은 어느 겨울날, 조선 문단의 샛별소설가 구보 씨는 늘 그렇듯 해가 중천에 이르고서야 광교 옆 사옥정 7번지 공애당약국 2층의 자기 방에서 잠을 깬다. 벗어둔 안경을 집어쓰고 앉은뱅이책상 위의 어지러운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구보씨는 이내 펜을 들어 새로운 소설 작품의 창작에 골몰한다. 언제나처럼 오후가 되면 우리의 소설가 구보 씨는 한권의 창작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또 모자도 쓰지 않은 맨머리 바람에 멋진 단장을 짚으며 집을 나설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한국희곡 2024.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