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전반,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 이 도시의 남북을 가르며 흐르는 청계천에도 살얼음이 얼고, 그런 탓에 개천가 빨래터에 아낙들도 한산하며, 전차가 오가는 광교 아래엔 거지 깍쟁이들이 목을 잔뜩 움츠린 채 허연 눈동자만을 껌뻑이고 앉은 어느 겨울날, 조선 문단의 샛별소설가 구보 씨는 늘 그렇듯 해가 중천에 이르고서야 광교 옆 사옥정 7번지 공애당약국 2층의 자기 방에서 잠을 깬다. 벗어둔 안경을 집어쓰고 앉은뱅이책상 위의 어지러운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구보씨는 이내 펜을 들어 새로운 소설 작품의 창작에 골몰한다. 언제나처럼 오후가 되면 우리의 소설가 구보 씨는 한권의 창작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또 모자도 쓰지 않은 맨머리 바람에 멋진 단장을 짚으며 집을 나설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구보 씨의 발길을 쫓아 경성 산책을 떠난다. 이제 구보씨는 이른바 일본 제7대 도시로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대도회지 경성에서 생활하는 딱한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을 통해 오늘 하루 구보씨의 노트를 어지러이 채울 명랑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더러는 싱겁기도 한 창작 메모들을 엿보게 된다.
이 소설은 작자 자신의 자전적 소설로서 1930년대 문학인의 정신구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성탄제(聖誕祭)」·「비량(非凉)」 등의 초기 단편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편이라는 점에서 작자의 작품 변모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조선일보』에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연재되었다. 민족항일기에 문학을 하는 당대 지식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에 비치는 일상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상(李箱)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렸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26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인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탄 뒤 거기서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하나 모른 체하고 후회하며,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대합실에 가나,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며, 거기서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또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강도와 방화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 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또 전보배달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대모집’에 대하여 물어오던 일을 기억하며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전 2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구성 각색의 글 – 성기웅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게 구보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의 단골 지문으로 퍽 친숙한 모양이지만, 우리 세대에게 구보 박태원은 그다지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구보 박태원은 월북작가란 이유로 그 존재가 가려져 있다가 해금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나보다 윗세대 사람들은 최인훈의 '구보씨'는 알아도 박태원의 '구보씨'는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그 원조 '구보 씨의 얼굴을 다시 만난 건 10여 년 전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일본 땅에서였다. 일본의 문학연구가들에게,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경성(서울)으로 돌아가 가장 경성적인, 혹은 서울스러운 소설을 써낸 서울내기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같은 이는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나는 바다 건너 낯선 그곳에서 구보 박태원이 광교 언저리 청계천변에 살았던 서울내기 소설가라는 걸 새삼 알았고, 먼지 앉은 지도를 떨어내고 보듯 그가 기록해 놓은 당시 서울의 모데르놀로지(고현학)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소설에 담긴 '깨알 같은 서울말도 비로소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구보 씨와 그의 단짝친구 시인 이상을 등장시킨 연극을 만들기 시작한 지도 벌써 6,7년이 되었다. 작품 수로 치면 세 작품을 만들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물었었다. 왜 그렇게 구보 씨에게 애착을 느끼냐고. 구보 씨의 어떤 점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하냐고. 예술에 있어 몰입과 일체감, 비대한 에고이즘 따위는 촌스럽거나 구질구질한 것으로 알았던 예전의 나는, '연극 작업이란 자기애의 발현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란 누군가의 말을 지당하고도 멋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질문을 우습게 들어 넘겼었다. 그런데 이번 재공연 연습을 하면서 보니, 나는 생각보다 이 구보 씨에게 꽤 몰입하고 있는 것 같다. 배우 이윤재(박태원 역)와 오대석(구보 역)에게 '내가 구보 씨라면 이러겠어' 하며 어떤 주문을 하기도 한다.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안 좋은데, 나는 구보 박태원처럼 키가 큰 꺽다리도 아니고 최신 유행에 민감한 얼리 어답터 기질의 예술가도 아니며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몸으로 대하소설을 구술할 만한 의지의 한국인도 못 되는데. 그런데 얼마 전 어떤 팟캐스트에서 20대 젊은 친구들이 이 소설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친구들은 참혹한 불경기 속에서 다니는 직장도 없고 따라서 정해진 일과도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백수 구보 씨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대입해보고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구보 씨의 얼굴이란 별난 기질, 독특한 개성을 지닌 어떤 젊은 예술가의 얼굴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평범한 우리 모두와 닮은 얼굴이기도 한가 보다. 과연 구보 씨가 어떤 캐릭터냐 묻는다면 답이 간단치 않은 것- 바로 거기에 구보 씨의 실체가 있는지도 모른다. 만담 수준의 농담을 치렁치렁 늘어놓는 유쾌 명랑함과 호주머니에 3B 약통을 넣고 다니는 신경쇠약 환 자의 이중성, 가장 비정치적인 예술지상주의자 같았던 젊은 시절과 너무나 정치적인 행보를 택한 것처럼 보이는 중년 이후의 삶 사이의 거리, 냉정하고 이기적인 깍쟁이 서울내기 같았다가도 더러더러 내비치는 따뜻하고 감상적인 휴머니스트의 면모…. 우리 모두는 어쩌면 이렇게 모순 투성이에 앞뒤 안 맞는 사람들이니까. 그런가 하면 또, 이도 저도 아닌 표정과 어정쩡한 포즈, 딱히 무어가 어떻다고 결단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 단함, 니 말도 옳고 개 말도 틀리지 않다 할 것 같은 어중간함, 쭈뼛쭈뼛거리고만 있는 소심한 발걸음도 구보 씨의 매력이다. 잘 나서 매력인 게 아니라 친숙하고 남 같지 않아서 매력인 것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싱겁고 심심하기만 하지만, 사람들은 이 별볼일 없고 심심한 하루에서 자기와 닮은 얼굴, 꼭 자기 같은 목소리를 발견하고 싱긋 웃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구보 씨의 '보편성'을 새삼 확인하면서도, 이번 재공연은 소설가 구보 씨가 살았던 193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을 조금 더 강조해보려 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정치적 상황, 이종 뒤섞임 등을 더 문화의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자칫 역사에 대한 상투적인 접근이 되는 건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한편으론 이웃 청년처럼 친숙할 수도 있을 우리의 구보 씨가 너무 먼 옛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편성이란 건 어차피 각자의 특수성 속에서 찾아지는 것일 테니까. 구보 씨의 초상을 그리면서 그 배경을 아니 그릴 순 없다.
연극을 보는 일이 일상에서는 여간해서 겪지 못하는 강렬한 감정과 에너지를 대리 체험하는 일이길 기대한다면, 원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처럼 이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도 재미없고 지루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하루하루의 소소한 생각과 감정이라 생각해 본적 있는 관객이라면, 자기와는 동떨어진 잘나고 별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무대로부터 들려오는 나를 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된 관객이라면, 익숙한 방식으로 즐기는 편안함에 안주하기보다 뭐 하나라도 새롭고 독특한 것에 안테나를 곤두세워줄 관객이라면 이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이 두 시간여를 즐겨주실 거라고 감히 기대해본다. 구보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아주 소설적인, 그러니까 오로지 소설로만 할 수 있는 이런저런 문장의 실험과 모험을 감행하고 있듯이, 우리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도 아주 연극적인, 그러니까 오로지 연극으로만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실험과 모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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