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선웅 '인어도시 - 동의할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

clint 2024. 1. 22. 13:27

 

 

 

한 달 내내 비. 호스피스병실 7002.

창가 쪽으로 보이는 저수지에 아구가 산다.

아구의 노래를 들은 환자들은 아구의 먹이가 되고 싶어 안달이다.

밤낚시를 갔다가 아구에 물린 정씨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혼수상태에서 빠졌던 이씨도

느닷없이 깨어난다.

환자들은 앞 못 보는 노파를 불러 저수지의 내력을 듣는다.

노파의 이야기는 마을 저수지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기이한 저수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사람들은 죽음에 두려움 때문인지

서서히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이 호스피스 병실에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인물들은 현실에 대한 집착과 함께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던 인생에서 깨달음을 얻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작가의 글 - 고선웅

나는 문화지체자다. 2~30대까지는 나름대로 정보 추구자였으나 40대에 들면서 줄곧 세상의 빠른 물리적 행보에 지쳤다. 연극을 하면서 더욱 밀려났다. 유리로 된 핸드폰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능란하게 요리하는 사람들이 낯설고 신기하다. 한때 비난했던 기성세대처럼 변해가는 나를 느끼며 사는 중이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보편적인 진리와 진부한 경구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실, 근면, 협동, 자립, 신용, 준법, 사랑 따위들이다. 어릴 적에는 울림이 없던 말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 평범하고 고루한 진리가 신경망처럼 복잡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참 요긴한 기준들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만고불변의 진리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모세대들에게 배운 대로 따라가는 형편이고 내가 체감하는 현재의 나이를, 먼저 산 선배들의 말과 느낌들에서 배우며 감탄하고 산다. 나 역시 그들과 다름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런 와중에 한국인을 말할 연극의 기회를 얻었다. 감격했다. 그런데 며칠도 안가 딜레마에 빠졌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 과연 무엇이 한국인인가? 흔히 말하는 한국적이다라는 말도 애매했다. 아침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점심 때 빅맥을 먹으며 저녁때 오꼬노미 야끼에 들르지 않는가. 이런 고민을 정리하는데 탁석산의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책이 도움이 되었다. 그 책은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있어 고유성과 창의성을 기준으로 현재적이고 대중 적이며 주체적인 성향을 그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소수의 한국인이 즐기는 판소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조용필의 노래가 더 한국이라고 말한다. 서편제보다는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논리적으로 정의된 한국인이 아니라, 나의 잠재의식 속에 면면히 흐르는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더 중요하고 그 안에서 나의 주제의식을 찾는 편이 더욱 용이할 것이라는. 그러나 학습과 고민은 여전히 필요했다.

 

 

 

방향을 틀었다. 근현대사를 살폈다. 버나드 비숍이 쓴 책의 구한말 한국인과 이규태가 쓴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읽고, 식민통치, 해방과 미군정, 분단, ·우익의 갈등, 6.25사변, 군사독재와 다시 군사쿠데타, 민주화 과정을 쳐다보았다. 예전의 작업에서 병자호란 당시를 공부할 때 읽었던 책들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선조들과 선배들의 삶을 관통하는 그 무엇을 보았다. 피해의식! 내지는 위기감! 전쟁과 약탈, 피압박으로 말미 암은 절박한 생존유전자!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밀려나거나 도태될 수 있다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내 조상의 어떤 부모는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강해져라. 강해야 산다. 다만 강하지 못하면 유해져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약하다면 저항 일랑 말고 복종해라. 다만 모두가 일어서면 따로 앉아있지는 말아라. 시국이 늘 어수선하니 먹을 것을 잘 챙겨라. 나누지 말고 혼자 가져라. 나눌 여유가 있어도 자기 것은 따로 챙겨놓고 나눠라. 먼저 차지해야 임자다. 노변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거든 무턱대고 일단 끼어 서 라. 줄을 잘 서면 더 좋은 대접을 받고 유리하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남아야 한다. 꼬리 말고 머리가 될 것이고 꼬리가 되었을 때, 머리처럼은 살지 마라. 절대 나처럼은 살지 마라."

우울한 단상이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삶을 恨이라고 하는구나 그랬다. 당하고만 살았던 열등한 민중의 삶이 나의 머리 속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고 보니 가해세력들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출발은 피해 의식이었다. 남을 염려하기보다는 나의 관심사를 채우고 독식하는 이기적 속성들! 친일 했던 사람이 여전히 득세하여 대를 물리고 광주항쟁 무력진압의 고등배후가 여전히 RVIP 대접을 받으며 건재한 나라, 남대문이 불에 타고 용산에서는 철거민들이 화마에 죽어가고, 대통령의 자살.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도끼를 들고 문짝을 뽀개며 싸우고, 순직한 군인들의 영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해댄다. 가해세력이 있으니 약자들은 집단의 힘으로 뭉친다. 월드컵의 열기에 붉은 악마로 물결치며 오락거리를 찾고 분노한 사건이 터지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밝히고 깃발을 날리며 약자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하루아침에 스타를 만들고 다음 날 스타를 죽인다. 카드섹션처럼 간판과 도로가 바뀌고, 마천루가 치솟는다. 수려한 명승지는 네온으로 빛나는 모텔과 먹거리집들로 일신 우일신 채워진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봐도 붉은 황토는 바람 잘 날 없다. 바쁘다. 한마디로는 절대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상기된 비논리적 표류, 그것이 내가 본 한국이었고 내가 포함된 한국인이었다. 아닌 나라가 여튼 있겠는가만 여튼 여튼!

단세포 동물처럼 대학로에 묻혀 살던 나에게 한국은 조울증 환자 같았다. 그렇다. 대학 나온 내가 문화지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속도였다. 한국사회는 너무 급하게 달라지면서 몸살 중이 맞다. 친구는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어지럽다고 말했다. 무릎을 쳤다. 감정의 기복 또한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인어도시에 담아낼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학습하고 느꼈던 한국을 어떻게 표현하고 담을 것인가다. 나는 두산아트센터 제작팀과 논의하면서 호스피스를 인터뷰하자고 하였다. 질곡과 파란의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죽음을 치다 보면 그 안에 답이 있겠다 싶었다. 치유와 구원이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를 해보니 예상과 달리 그들의 삶은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의 삶과 인생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 단지 살고 싶어하는 열망과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연약한 개인의 고민만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 연들을 한국인의 경향과 삶으로 규정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곤란한 상황에 빠진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 인간의 근원을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 다 보니 한국인의 죽음을 말한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죽음과 같은 맥락이라 할지라도 분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유레카' 분단된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삶이 사하라사막에서 자라 병들고 죽은 누구의 삶과는 다를 것 아닌가. 그러니 생각이 정리되면서 용기가 생겼다. 결국 그것이 한국사람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거대한 담론을 버리고 사소한 진실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해답이 있을 수 있었다. 해서 인어도시는 단지 몇몇 한국인의 평범한 죽음을 부끄럽지만 떳떳하게 다루게 되었다. 그 안에는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예리한 시선도 고상한 정의도 없다. 아니 존재하는 것이 가당하지 않다. 다만 몇 사람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한국에서 나고 살았던 사람들이며 그들 삶의 종말은 어떤 식으로든 면면히 우리의 내면 속에 흐르는 피해의 식과 방어적 속성이 거울에 비치듯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라는 것은 그들이 죽음의 과정을 통해 평화와 구원을 얻는 것이다.

물론 인어도시에서 그런 치유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거니와 또 그렇게 준수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절실하게 책임감을 느낀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나의 미래는 현재로부터 말미암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조와 부모의 유전자가 나의 혈류를 관통하는 한, 나는 한국인이 분명하고, 그 안에 치유가 필요한 그 어떤 피해의 식들을 끌어안은 채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들을 언젠가는 털어내어 온전한 한국인이 되기를 바란다. 미처 다 털지 못하더라도 그 피해의식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라도 가지고 싶은 심정이다. 바쁘고 급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한국인들이 도시에 서 평안을 얻기 바라고 그것을 연극어법으로 표현하는데 내가 실수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한국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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