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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열네 살 소년 안데르센은 고향 오덴세 시장의 추천서를 받아 배우의 꿈을 안고 코펜하겐의 극장 감독을 찾아온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볼품없는 소년은 배우를 하기엔 못 생겼고, 작가가 되기엔 문법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독학자일 뿐이다. 극장 감독에게 소년은 자신이 쓴 일곱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 , , , , 으로 이루어진 7편의 에피소드가 14살 소년의 동상극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 일곱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결핍된 자아가 투영된 안데르센의 분신들이다. 세상에서 소외당 한 결핍된 자일수록 강렬한 열망과 불멸의 영혼을 꿈꾼다는 소년의 이야기는 닫혀 있던 극장감독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는 14살 소년에게 문법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소년의 후견인이 되어 주기로 한다. 그는 안데르센을 발..

외국희곡 2024.01.31

이민선 'EGOEGG'

내 몸은 누구의 것인가. 이 이야기는 2021년 10월 자궁내막종 복강경 수술을 받은 작가의 기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생리’로 출발해 ‘여성의 자아는 난소에서 오는가?’라는 풍자에서 ‘주체’로 나아가면서 여성성의 아이러니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나 그리고 어쩌면 나였을 당신들의 목소리. 그리하여 여성이 살아가기 참으로 기이한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극이다. ‘나’는 말한다. 이미지가 아닌 여성의 신체 자체를. 철저한 개인으로, 죄어오는 신체를 갖고, 그와 괴리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의심하고, 엄마라는 자리에 양가적으로 반응하며. 새삼스러울 것 없는 생리와 출산을 하는 여성 신체의 지난함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음에 대해 말한다. 어찌할 수 없는 난소의 힘을, 임신 가능한 몸의 유지를 권고하는 의사의 ..

한국희곡 2024.01.31

이익훈 '자전거를 타는 소년과 이제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들'

나는, 알고 보니, 이제야,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 걸 조금 아는 것 같습니다. 소년은 어느새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었다. 아무것도 안 된 채 중년이 된 소년은 한겨울 깊은 밤 홀로 강 얼음 위로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목구멍에 바람이 들어와 숨을 못 쉴 때까지. 시인이 꿈이었던 소년, 시인은 결국 되지 못하고, 중년이 되어 연극을 하게 된다. 소문이 어떻게 났지? 사람들이 어떤 연극이냐고 물어보면, 소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연극이라고 말한다. 제목이 긴 은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시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지문과 대사들이 인상적이다. 자전거 타는 소년은 시 쓰기를 멈춘 대신, 자신과 이제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연극을 쓴다. 시를 ..

한국희곡 2024.01.30

주은길 '등산하는 아이들'

모든 걸 불태우면 깨끗이 사라질까. 2008년 겨울. 중학생 세진은 아빠에게 선물 받은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등교한다. 친구들의 우려대로 세진은 같은 반 일진 태웅에게 옷을 빼앗기고 만다. 세진과 친구들은 놀이터에 모여 패딩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작전을 꾸미지만, 화가 잔뜩 난 채 놀이터로 달려온 태웅은 세진과의 말다툼 속에 화를 이기지 못하고 칼을 휘두르고 만다. 물질적 욕망이 계급과 계층 간의 간극을 어떻게 심화 시키는지를 그려내며, 폭력으로 점철된 세계 안에서 비극적 결말에 이르고 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희곡에서 작가가 그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힘이 느껴졌다. 다만 작품의 일부 폭력적 요소들이 그 주제의식과 맥락을 함께한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희곡은 ..

한국희곡 2024.01.30

박상숙 '황야'(부제: 학익동 278)

연극 ‘황야’는 재판을 기다리는 5명의 미결수가 펼치는 세상 이야기다. 사방이 막혀 세상과 단절돼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열려 있지만 갇혀 있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선듯 우울해 보일 것 같지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안에서 여행을 떠나는 미결수들은 관객들에게 재미와 해학을 던져준다. 대사없이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마임 배우들이 ‘연극’ 무대를 만들어 다소 몸짓이 과장돼 보이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가의 의도보다는 배우들의 자유스런 표현에 중심을 둬, 이런 특징이 더더욱 두드러진다. 연출 최 대표는 “남구 학익동은 대학과 공장, 주택, 그리고 법을 다루는 법원과 검찰, 교도소,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창녀촌까지 공존했던 곳이다” ‘황야’(학익동 278)’는 극단 마임의 최..

한국희곡 2024.01.29

세르지 벨벨 '죽음 혹은 아님'

죽음과 죽지 않음. 삶과 살지 않음. 갑작스럽고, 폭력적이고, 비극적이고, 반항적인 죽음. 텅 빈 인생, 그저 그런 인생, 파렴치한 인생. 계속하고, 이어 가고, 숨 쉬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더 연장하고….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믿음, 사랑과 증오의 관계, 라이벌 의식, 과도한 사랑, 분노, 알지 못함, 사랑하지 못함, 할 수 없음, 습관적인 삶, 고독, 피곤, 두려움, 권력…. 단하나의 인생인데, 너무나 많은 감정이 있다. 은 우리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 준다. 영웅도 없고 비극적인 위대함도 없다. 그렇다고 핑크빛 해피엔드도 없다. 단지 날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드라마이며,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혹은 한숨 돌리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남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다..

외국희곡 2024.01.29

조한빈 '계단'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이제 막 어른이 된 수현과 시현은 ‘저기’에 가기 위해 기대를 품으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수현과 시현의 차례가 오지만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밀려나고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각 층을 지나며 자신들이 몇 층까지 왔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다. 그렇게 계속 계단을 이용하던 수현과 시현은 우연히 위치를 알게 되는데…. 1층이다. 은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민, 문제의식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희곡이 갖고 있는 특유의 리듬감과 속도감이 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다만 작품에서 나열되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다소 동어 반복적이고, 인물들의 극적 변화 또한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희곡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명료하였으나 익숙하였고, 희곡이..

한국희곡 2024.01.29

윤소정 '카운팅'

"이 세상을 지탱하는 건, 참나무 같은 사람들이야." 산불이 났다며 집으로 찾아온 은순, 자다 일어난 종배와 화영은 깜짝 놀란다. 다급한 와중에 미처 기르던 개를 챙기지 못했다는 은순의 말에 온 개를 풀어주러 가겠다고 나서는 종배, 화영과 은순은 그런 종배를 말리느라 애를 쓴다. 그 무렵, 동네의 방앗간에 쥐 죽은 듯이 살던 사진사는 몇몇 마을 사람들의 사진을 구하느라 불구덩이를 헤치고 다녀왔고, 귀농인 부부 강희와 남국은 반려견 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대피소가 없어, 동네를 정처 없이 떠돈다. 2023 봄 작가, 겨울 무대 윤소정 작, 하동기 연출의 은 재난 상황 속에서 '카운팅' 되지 못한 존재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산불'이라는 재난 상황 아래서 인간이 우선해야 할 가치..

한국희곡 2024.01.28

김상열 '마당놀이 황진이'

1996년 MBC의 마당놀이 연극 18번째의 작품으로 공연됐다.. 황진이의 상여행렬이 지나간다. 속세의 인습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혼이 된 황진이는 매우 기뻐한다. 하지만 염라대왕의 재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진이는 뭇 남성들을 농락했다는 죄로 재판을 받으며 그녀의 일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황진이 때문에 가산을 탕진했다는 지족선사, 과다한 정력낭비로 불구자가 된 화담 서경덕, 계약 결혼을 했던 선전관 이사종 등이 등장하여 황진이의 과거를 이야기하는데.... 작가의 변 - 김상열 황진이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와 상관없이 철저하게 자유인으로 당대를 풍미하며 살았다. 황진이는 봉건사회와 유교적 통념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살았기에 송도의 일개 기생이었지만 그녀의 존재가 역사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희곡 2024.01.28

하종오 '시극 어미와 참꽃 '

1988년에 공연된 이 시극은 광주 민주화운동에 외아들을 잃은 한 어미의 애절한 절규이다. 아직 풀리지 못한 응어리, 가슴속에 차 있는 답답함을 어떤 방법으로도 풀 실마리를 찾고 싶다는 갈망이 어미의 입에서 구구절절 가슴을 찢는 애절한 시구로 읊어진다. 이 작품에서의 "참꽃"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간략히 언급하면 참꽃은 본디 먹을 수 없는 개 꽃 – 철쭉꽃과 대비되는 말로 진달래꽃의 호남지방 사투리인데, 이 작품에서는 묘지 가득한 꽃을 가리키면서부터 어미의 한과 아들의 죽음 전체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 어미의 정성을 딛고 참꽃이 활짝 피기를 바란다. 어머니 역을 맡은 배역만 무대에 등장하며 생전, 사후의 아들은 소리로 나온다. 그리고 여러 소리(진압군과 저항시민 함성, 방송), 그리고 총소..

한국희곡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