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전반,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 이 도시의 남북을 가르며 흐르는 청계천에도 살얼음이 얼고, 그런 탓에 개천가 빨래터에 아낙들도 한산하며, 전차가 오가는 광교 아래엔 거지 깍쟁이들이 목을 잔뜩 움츠린 채 허연 눈동자만을 껌뻑이고 앉은 어느 겨울날, 조선 문단의 샛별소설가 구보 씨는 늘 그렇듯 해가 중천에 이르고서야 광교 옆 사옥정 7번지 공애당약국 2층의 자기 방에서 잠을 깬다. 벗어둔 안경을 집어쓰고 앉은뱅이책상 위의 어지러운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구보씨는 이내 펜을 들어 새로운 소설 작품의 창작에 골몰한다. 언제나처럼 오후가 되면 우리의 소설가 구보 씨는 한권의 창작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또 모자도 쓰지 않은 맨머리 바람에 멋진 단장을 짚으며 집을 나설 것이다. 우리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