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핀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누이 린다는 꿈에서 늑대를 본 후 거의 파산지경에 이른 그녀의 온천이 곧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거라 믿고 있다. 양로원에 기거하는 이들 남매의 아버지 에르빈은 날씨나 별 같은 것을 두고 한 번이라도 자식들과 평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슈퍼마켓 판매원 모니카는 사장으로부터 승진을 약속받고, 네덜란드에 있는 지점을 운영하게 될 날을 꿈꾼다. 경찰관인 남편 토마스는 네덜란드로 동행하겠다며 이런 그녀의 기대를 부추긴다. 슈미트부부는 짐승인지 모를 뭔가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미라는 아이를 원치 않지만, 아이의 아버지 요세프는 무조건 낳아야한다고 주장한다. 가비와 라이너부부는 아파트를 보러 다니면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 할 형편임에도 마치 집을 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노년의 여가수 이라는 남편이 산책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해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 믿으며 남편과 묵었던 호텔방에 43년 째 머물고 있다.
<도둑들>은 독일 극작가 데아 로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0년 1월 15일 안드레아스 크리겐부르크(Andreas Kriegenburg) 연출로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에서 초연되었다. 원래 무대미술가 출신인 크리겐부르크는 무대 위에 커다란 바퀴를 설치해서 매 장면 물레방아처럼 돌아가게 만들었다. 배우들은 때로는 돌아가는 바퀴 위로 등장하거나 때로는 그네를 타고 위에서 내려오거나 하면서 말 그대로 “이야기 바퀴”를 구현해냈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스윙 재즈가 흘러 낙수처럼 경쾌한 임펙트를 준 이 공연 덕분에 데아 로어는 도이체스 테아터의 간판스타가 되었다. 이 공연에 대한 리뷰에서 평론가들은 비극 작가 데아 로어 속에 숨어있던 코미디의 대가를 발견했다고도 했다. 그녀의 희곡들이 주로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을 비롯한 아웃사이더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회색 톤의 비극성을 보여준데 반해 이 희곡에서 작가는 경쾌한 터치로 옮겨가 그야말로 ‘웃기지만 슬픈’ 대중적 작품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배경은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 근교, 수풀이 우거진 주택가다. 주인공은 누구라고 특정하기 어렵다.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도시 근교에 살고 있는 독일의 보통사람들이 각 장면에 둘 셋 짝을 지어 우리 옆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삶의 편린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토마손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핀 토마손, 린다 토마손 남매다. 그들의 아버지 에르빈 토마손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맡겨진 상태다. 그리고 토마스 토마손과 모니카 토마손 부부가 나오는데 이들은 “토마손 남매와 아무런 친척 관계가 아니다”라고 희곡 맨 앞에 나오는 등장인물 소개부분에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너도나도 ‘토마손’인지라 따로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 자칫 헷갈리기 쉽다. 사실 토마손이란 성은 전형적인 독일가문도 아니고 독일에서 흔한 성씨도 아니다. 오히려 독일인에게는 일본 같은 아시아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성씨다. 작가는 왜 하필 이렇게 인물들을 복수의 토마손 가문으로 구성해놓았을까. 일본 어느 철학자에 따르면 그 이름은 오래전에 특정 대상을 지칭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점점 잊혀서 이제 그 이름은 뜻도 없고 아무 대상도 지시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아무개’ 정도가 될 것이다. 핀 토마손은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에 속하지만 극이 끝나기 전에 일찌감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반적인 연극 문법대로라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 ‘아무개’다.
<도둑들>은 성격과 환경이 매우 상이한,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둘러싼 이야기다. 12명의 주인공들이 교차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37장에 걸쳐 파편적으로 진행된다. 실직상태인 전직 보험회사 직원 핀과 그의 누이 린다, 이들 남매의 아버지 에르빈은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 대형 마트 지점장 모니카와 경찰공무원인 남편 토마스, 17세인 미성년 임산부 미라와 아버지뻘 되는 그녀의 연인 요제프, 그리고 슈미트 부부, 전직 오페라가수 이라, 연인관계인 가비와 라이너.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연결 고리가 서서히 드러난다. 플롯은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장편으로 되어있다. 각 장면은 따로 떼어 읽어도 상관없지만 패치워크처럼 얼키설키 엮인 이들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일상의 편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매우 달라 보이는 등장인물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헛된 욕망, 헛된 바람 때문에 겪어야하는 일종의 희망고문이다. 슈퍼마켓 지점장인 모니카 토마손은 경찰인 남편 토마스와 사이에 아이를 하나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러던 중 해외파견 직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는 직장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되면서 결국 가정은 파탄 나고 직장도 잃는다. 이라는 무려 43년 동안이나 신혼여행 도중 말없이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이라는 그가 마치 엊그제 사라진 것처럼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싱글로 외롭게 살아가는 린다 토마손은 자신이 늑대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언제 실직할지 모르면서 쇠락한 온천에 기상천외한 야생공원을 만들어 대박을 내겠다며 늑대에 한없는 기대를 건다. 그녀는 퇴근 후 텅 빈 집에 돌아와 개인 방송이라도 하는 듯 연기를 한다. “있지도 않은” 남편과 “있지도 않은” 아이 앞에서 자기가 본 늑대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었는지 호들갑을 떨며 관객 없는 연극을 통해 외로움을 달랜다. 한편 그녀가 가끔 양로원으로 찾아가는 아버지 에르빈 역시 외로움에 지쳐 투덜댄다. 그런 가운데 그의 관심은 아들 핀에게 쏠려 있다. 오랫동안 소식을 끊어버린 아들 핀을 걱정하며 혹시 언제 찾아올까 기다리고 걱정한다. 가비는 그림 같은 멋진 아파트에서 애인 라이너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게 꿈이지만, 실상은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고 자신을 목 졸라 죽이려 했던 남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질질 끌려 다니는 신세일 뿐이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상류층인 의사 게르하르트 슈미트와 그의 아내 이다 슈미트는 겉으론 남부럽지 않은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행복하지 않다. 그들은 누군가 정체 모를 짐승 같은 존재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늘 불안에 떤다. 한편 미라는 정자기증으로 자신을 태어나게 한 아버지를 궁금해 한다. 의사 슈미트가 아버지임이 밝혀지고 슈미트 부부가 숨기고 싶어 하던 부끄러운 과거도 들통 난다. 미라의 연인 요제프는 짐승 취급을 받아 가며 미라의 친부를 찾아내지만 진실을 말한 대가는 개죽음뿐이다. 슈미트 부부는 자신들을 지켜보던 짐승이 요제프였음을 알게 되고 그를 죽여 또다시 진실을 은폐한다. 꿈에서 깨어나 유일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부르짖는 “핀”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등장한다. 한때 보험설계사였던 핀은 실직했고, 더 이상 살아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개인의 고유 가치, 존재 가치를 잃은 현대인의 상실감은 “토마손”이라는 이름에서 비유적으로 암시된다. 우리가 직시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현실 - 존재의 진실은 사람이 아닌 신의 영역에 속한다. 삶을 제대로 깨닫는 순간, 인간을 욕망에서 해방시키는 길은 죽음으로 통한다. 진실을 밝힌 요제프는 살해당하고, 진실을 깨달은 핀은 자살한다. 이 작품은 죽음을 맞는 두 인물을 통해 이를 알레고리적으로 그려낸다.
생명은 살아있는 한 욕망한다. 그것이 허상일지언정, 거짓일지언정, 희망과 소망은 필요하다. 보통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도둑들>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깔려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대를 이어온 그 보통 사람, 바로 ‘나’의 이야기다.
데아 로어의 드라마투르기는 텍스트성과 서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떤 퍼포먼스보다 수행성의 미학에 기초하고 있다. 한스티스 레만(Hans-Thies Lehmann)은 포스트드라마 연극이 현실 재현의 한계를 의식하고 퍼포먼스적 수행성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고 지적한다. 로어의 작품에서도 포스트드라마 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탈 텍스트 적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드라마투르기는 수행성의 미학에 기반 하면서도 퍼포먼스만큼이나 텍스트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론 과는 차별화된다. 텍스트와 내러티브가 강조된 이 새로운 드라마 유형을 우리는 ‘포스트 서사극’이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다. 한 가지만을 지시하지 않는 그녀의 다층적 텍스트는 처음 읽는 순간에는 약간 혼란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무대 상황이나 배우들의 동작, 표정, 제스처 등이 지문으로 처리되어 있지 않고 마치 소설에서처럼 해설자가 지시한다. 그렇다고 기존 서사극처럼 해설자 역을 맡은 배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배우는 한 인물을 연기하고 동시에 그의 상황과 행동을 해설하는 해설자로서 무대에 현존한다. 기존의 연극 독법으로 본다면 낭독 공연용이나 레제드라마로 여겨질 수도 있고, 마치 대사가 많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브레히트의 서시극을 현대적으로 혁신한 포스트서사극 작품으로는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독일 작가 시멜페니히의 <황금용>을 들 수 있다. 시멜페니히와 마찬가지로 데아 로어 또한 포스트드라마 적 서사구조가 지닌 메타연극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무대의 배우가 연기하며 대사를 할 땐 묘한 이중적 상황이 연출된다. 대화상대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데아 로어가 희곡을 이렇게 다층적인 실연을 요구하는 서사적 구조로 엮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브레히트는 <연극의 새로운 기법>에서 생소 화 효과를 유발하기 위한 연기법으로 3인칭 화, 과거 화, 상대화의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여기서 상대화란 배우가 과거에 있었던 대화나 사건을 보고 형식으로 직접 실연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은“…하고 묻습니다.” 식의 지문이나 멘트를 다는 형식이다. 로어의 텍스트는 생소화 효과를 유발하는 이 세 가지 연기방식을 전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브레히트가 제시한 드라마의 상대화를 구현한다.
페터 스촌디(Peter Szondi)가 말했듯이 현대 드라마에 위기가 도래하게 된 것은 “드라마는 절대적"이라는 연극의 기본이 위협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브레히트가 제시한 서사극은 이런 드라마의 절대성을 뒤집어 만든 ‘상대성의 드라마;였다. 서시극에서는 연극의 모든 요소를 분리해 독자적인 기능을 갖도록, 다시 말해 상대화되도록 구성한다. 서사극에 투입되는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덧칠용이 아니다. 반대로 노래(Song)를 부르는 배우는 자기가 연기하고 있는 인물의 입장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발시켜야 한다. 음악, 무대미술, 노래, 동작이나 게스투스 그리고 배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의 분리를 통한 드라마의 상대화가 그가 추구했던 이상적 형태의 서시극이었다. 드라마의 상대화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여러 겹 중첩되는 ‘연극 속의 연극 속의 연극’이라는 포스트모던 적 메타 연극의 상황을 유발한다.
로어의 포스트 서사극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하는 핀이나, 43년째 떠난 남편을 기다리느라 자신의 삶을 도둑질해 버린 이라 앞의 비극적 상황마저도 웃지 못 할 코믹 상황으로 그려 낸다. 마찬가지로 23장에서 극중극의 메타연극 적 상황이 더해지면서 코믹한 효과가 유발된다. 가비 노보트니는 경찰관 토마스 토마손을 찾아가 자신이 남자 친구 라이너 마하체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고발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연해 보이고, 토마스에게도 라이너를 연기해 보라고 하는데, 이를 보는 관객은 가비의 절망적인 상황을 애처로워하면서도 그녀의 어리석음이 빚어내는 코미디를 보며 웃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코믹 효과는 코메디아 델 라르테나 민중극의 전통에서도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상황을 다의적으로 만들어 독자나 관객이 각자의 버전으로 채워나가도록 한다는 데 미학적 핵심이 있다. 독일 평단도 데아 로어의 <도둑들>이 빚어내는 코믹 효과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연극평론가 페터 폰 베커(Peter von Becker)는 다음과 같이 그녀의 서사적 기법을 비극적인 내용조차 코믹하고 경쾌하게 그려내는 장치로 파악했다. 데아 로어가 뿌려 놓은 서사적 -간접화법의 대사로 된 자기 역할에 해당하는 연출 지문을 배우들은 즐겁게 그리고 슬픈 경우에 조차 경쾌하게 연기한다. 장난감차, 커피 잔, 혹은 머리를 돌리라는 지문을 말하고 나면 바로 목이 돌아가고 마치 브레히트의 광대극에서처럼 손에는 어느새 소품이 들려 있다...
서시극적 구조는 관객이 인물 속에 빠져들어 감정 이입되는 것을 막고, 인물의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게 한다. 아울러 관객은 배우의 직접적 대화상대가 되어 배우가 지문내용을 미리 예고한 뒤, 과연 그 연기를 어떻게 실연해 보이는지 관찰하게 된다. 여기서 지문과 실연 사이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코믹 효과는 증폭된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실연해 보이는 메타치원의 연극적 상황은 브레히트가 강조했던 연기의 예술성을 고조시킨다. 서사극은 오락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했던 브레히트는 서사극의 예술성을 강조했다. 브레히트에게 서사극은 예술가의 숙련된 연기, 환상, 유머, 공감 없이는 생각할 수 없으며, 실현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로어의 서사극은 물론 브레히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러 개의 파편적 에피소드, 영화의 컷과 편집 기법을 닮은 입체적 구성은 포스트드라마의 특성을 강화한다. 반복성과 가속성,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발한 플롯, 그리고 서사적 해설은 기존 형태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희곡을 맛보게 한다. 포스트드라마 이후 유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고 있는 포스트 서시극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사회 비판적 관점과 함께 우리의 삶에 대해 던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람들이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만큼 미래에 대한 꿈도 허황되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기에 인생을 낭비한다. 이라 다비도프의 고백처럼 “그들은 자기 인생을 도둑질한다.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마치 그게 남의 것인 양’(27장), 인생을 도둑질한다.
<도둑들>은 2014년 6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LG아트센터에서 도이체스 테아터의 내한 공연을 통해 우리 한국애서 초연되었다.
독일 창작극의 산실로 정평이 나 있는 뮐하이머연극제와 베를린연극제에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있는 독일어권 대표 극작가다. 하이너 뮐러, 엘프리데 옐리네크 이후 독일어권 연극계에서는 그동안 내로라할 만한 작가가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벼운 터치의 신세대 작가로 세대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꾼”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황금용>으로 주목받은 롤란트 시멜페니히와 더불어 그녀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현존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현대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제의 보편성과 사회 비판 의식이 그녀 작품의 특징이다. 그리고 지극히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와 유머, 아픈 가운데 서로를 보듬는 삶에 대한 잔잔한 감동이 있다. 그녀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트라운슈타인(Traunstein)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뮌헨에서 철학과 독문학을 전공한 뒤 베를린 예술대학 시절 하이너 뮐러에게서 극작 훈련을 받았다. 1991년에 함부르크 에른스트 도이치 테아터(Ernst Deutsch Theater)에서 첫 작품인 <올가의 공간(Olgas Raum)>과 1992년 베를린에서 <문신(Tatowierung)>이 공연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2003년 함부르크 탈리아 극장(Thalia Theater)에서 <무죄(Unschuld)>를 무대에 올리면서 최고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때부터 연출가 안드레아스 크리겐부르크(Andreas Kriegenburg)와 호흡을 맞추면서 그녀는 열 편 넘는 극작품을 발표했다. 함부르크의 탈리아극장과 베를린 도이체스테아터 극장에서 공동 작업으로 <최후의 불(Das letzte Feuer)>(2008), <도둑들(Diebe)>(2010), <흑해에서(Am schwarzen Meer)>(2012) 등을 연거푸 내놓았다. 2012년에는 첫 소설 <부가티의 출현(Bugatti taucht auf)>을 발표해 탐정 소설에서도 빛나는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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