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루스 울프 '크리스티나 여왕'

clint 2024. 1. 22. 09:30
The Abdication(퇴위)가 원제이다

 

 

 

 

크리스티나는 17세기 스웨덴의 여왕이었는데 왕위를 버리고 온갖 풍문을 뿌리며

유럽대륙을 떠들다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의 바티칸에 도착한다.

바티칸에서 그녀는 추기경 아쏠리노를 만나게 되는데……

여왕 퇴임 후에 풍문이 워낙 안 좋았던 터라 교황청에서는 아쏠리노추기경을 통해

그녀의 자격심사를 받게 하고 거기에서 그녀의 과거의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다.

추기경은 왜 여왕직을 버렸는지와 가톨릭 개종을 했는지 집요하게 추궁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아쏠리노 추기경과의 사랑이 싹트게 된다.

여왕은 외롭고 사랑에 굶주렸고 또한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고

성녀와도 같은 생각과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고 그런 남자를 찾아서 로마에 온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 여왕시절의 장면이 오버랩으로 묘사되는데

여왕역할은 2명의 여인이 각각 여성적이고 남성적인 성격으로 등장한다.

 

1981년 10월 문예대극장, 극단 산하 초연 작품(임준빈 연출)

 

 

 

국내초연 시, 별로 흥행이 안된 것은 아마도 추기경과 여왕의 사랑이라는 가소 격에 안 맞는 것과 문화의 이질감 등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루스 월프가 미국의 다른 극작가들과 판이하다는 것은 그녀를 논하는 비평가들의 논리에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루스 월프의 작품을 말할 때 흔히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작품속에 흐르고있는 중요한 주제들은 「사랑」이 매우 큰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월프의 작품 세계는 운명적이고 항거 할 수 없는 사랑의 갈등으로 응축되어 있다는 것 보다는, 쇠약되어가는 사랑의 사상을 통해 독특한 個性을 지닌 낭만적인 리얼리즘의 차원으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월프는 처녀작부터 여러 작품이 문제작으로 주목을 끌어왔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과 종교와의 면에서 문제가 된 代表作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크리스티나 女王>이다. 이 작품이 영국의 바드에서 초연되었을 때 폭발적인 인기와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켰다. 루스 월프 스스로가 "크리스티나 女王은 내가 쓴 작품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한 女人이 되기 위해 갈등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뼈아프게 겪은 여인이 바로 크리스티나이다" 라고 밝혔듯이 사랑의 참된 뜻과 神에 접근하는 종교적 의미와의 갈등을 제시한 主題를, 보다 극적인 차원에서 밀도 짙게 표현한 <크리스티나 女王>은 문학적 품성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오고 있다. 즉 예술적인 感度가 강한 작품이라는 것이 정평이기도 하다.

 

 

 


2幕으로 극적 구조를 튼튼히 쌓아올린 이 작품은 우선 구성 및 스타일면에서 매우 애쓴 흔적 이 보인다. 이 희곡은 두 개의 커다란 「고백」이 즉 크리스티나女王의 女人으로서의 고백과 사제인 아쏠리노 추기경의 으로서의 고백이 극적 전개의 리듬을 탄력있게 구축하여 클라이맥스를 향해 밀고 나아간다. 그리고 사랑과 신과의 관계를 폭넓게 또 깊고 날카롭게 추구함에 있어 回想을 이용한 시간의 역전이라는 手法밑에 크리스티나 女王의 분신格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녀의 심리적 갈등의 상징적 묘사를 극진행 사이사이에 끊임없이 삽입시켜 미묘한 극적 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루스 월프는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기형아인 난쟁이를 등장시켜 오락으로서의 연극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흥미 본위에 치중하지는 않았다. 종교적인 분위기의 중후함과 잘 조화를 이루게 하여 통속적으로 기울지 않은 점은 바로 그녀의 탁월한 기법을 여실히 실증해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이 작품의 큰 문제점은 역시 대담하고 진지한 테마에 있다고 본다. 크리스티나는 여왕이다. 권력과 영광을 손아귀에 쥔 여왕이다. 그러한 한 女人으로서 자의식의 눈을 뜨게되자, 자기의 인생을 지옥으로 느낀다. 그 까닭은 사랑을 할 수 없으므로 받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크리스티나는 "오 제발, 날 자유롭게 해줘! 날 해방시켜줘!" "날 여왕이 안되게 해줘!" 하고 고독과 우울과 굴레가 씌워진 삶의 공간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드디어 그녀는 권력과 영광의 상징인 왕관을 벗어버린다. 왕위를 스스로 물러난다. 인간의 열정이 사라질 때에는 신도 죽으며, 신의 진실은 인간의 정열속에 있다고 보는 그녀는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바치겠다고 서약한 사랑하는 사제이며, 카톨릭 교회의 규율과 교리에 복종하는 아쏠리노 추기경 앞에서 이렇게 부르짖는다. "난 당신의 하나님을 증오해요. 그분은 사기꾼에요! 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왜 포기했는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내가 왜 여기 왔는지도. 사랑때문이였죠. 그런데 무슨 하나님이 그렇습니까? 우린 그분의 장난감인가요?"  
아쏠리노의 사랑이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구도적인 사랑이라면 크리스티나의 사랑은 인간에의 신앙이 아니겠는가. 사랑이야말로 진리의 미학이며 그것을 체득할 때 비로소 생명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삶을 실감하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그녀에 있어서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정신적인 구원이며 생의 환희이기도 했다. 어쨌든 크리스티나야말로 인생 의 본질을 추구하는 구도자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커다란 박진력을 갖고 우리 앞에 다가든다.

 

 

 

작가 소개 (Ruth Wolff, 1932~)
현재 뉴욕에서 건축가의 아내로서 착실한 주부생활을 해나가면서 눈부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여류 극작가 루스 울프는 오늘날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극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루스 울프는 역사에서 즐거이 소재를 끄집어 온다. 희곡<아퀸텐 엘레노>를 비롯하여 소포클레스의<안티고네〉를 현대적인 입장에서 조명을 가한<아테네의 함락〉. 프랑스의 낭만파 여류작가 조지 센드와 쇼팽과의 뜨거운 연애사건을 다룬<조지 와 프레데릭>그리고<中國의 皇帝>,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퇴위〉 일명<크리스티나>등은 주옥같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오닐 디어터 센터에서 갈채를 받은<Folly Cove>와<사과를 가진 조용한 인생〉, 그리고 200주년 미국 독립기념 행사로 케네디센터에서 막 올린 〈에덴동산이여 다시 한 번〉 으로 그녀는 극작가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다져가고 있는 문제의 극작가이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작가 자신도 "〈크리스티나 여왕>은 내가 쓴 작품 중에서 내 자신 이상으로 사랑하는 작품이며 영원한 인간적인 과제를 다루었다" 고 말하고 있다.
사랑과 종교와의 아프고 뜨거운 갈등을 날카롭고 연민적인 시선 밑에 파헤친<크리스티나 여왕>이 영국의 극장에서 Bristol Old Vic에 의해 초연되자 극평 계는 물론이거니와 관객들은 열광적인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작가 자신이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되었고 리브 울만과 피터 핀치가 주연을 맡아 감동을 더욱 소용돌이치게 했다.
사랑의 참된 뜻과 신에 접근하는 종교성의 의미를 과감하게 제시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녀의 탁월한 희곡적 기교와 재미에 대한 격조 높은 재치로 말미암아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1626년 12월 8일에 스톡홀름의 왕궁에서 구스타프 2세(Gustav II Adolf)와 왕비인 Maria Eleonora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크리스티나가 태어나기 3년 전에 크리스티나 아우구스타 공주가 태어났는데 돌이 되기 전에 그만 죽어버립니다. 1625년에 왕비는 남자 아이를 낳았는데 그만 사산을 하고 맙니다. 크리스티나가 태어날 때 왕비는 남자아이이길 바랬다고(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역사에 기록되어 있군요. 하지만 왕인 구스타프 2세는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고 크리스티나가 남자와 같이 교육받기를 원했습니다. (크리스티나 또한 남자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고 사냥, 승마 등 남자들이 받는 교육을 즐겨 받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때는 30년 전쟁 때였는데, 전장으로 나가기 전 왕은 왕비에게 딸에 대한 교육이나 국정에 간섭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데, 왕이 전장으로 나간 후 얼마 후에 왕비도 그를 따라가게 되고 크리스티나는 숙모인 카타리나의 손에 키워지게 됩니다. 1632년 Lützen의 전투에서 왕이 전사하고, 스웨덴으로 돌아온 왕비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왕의 심장을 상자 안에 넣어 보관하는가 하면, 장례식을 일 년 동안이나 미룰 정도로 큰 슬픔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결국 사람들은 왕비가 공주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라는 판단 하에 다시 숙모의 손에 크리스티나를 넘기고 크리스티나는 사촌들과 함께 자라게 됩니다. 구스타프 2세가 죽었을 때 크리스티나는 겨우 여섯 살이었고(공식적으로는 스웨덴의 여왕) 성년이(18세) 되기 전까지 구스타프 2세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Axel Oxenstierna가 국사를 돌보는데, 크리스티나는 14세가 되던 때부터 그를 따라 다니면서 국정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1644년에 성인이 된 크리스티나는 직접 정치를 하게 되었는데, 즉위식은 1650년에야 하게 됩니다. 국가의 경제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크리스티나는 연극이나 발레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아 유럽에서 유명한 학자, 예술가, 작가 등을 끊임없이 초빙하고 예술 행사와 축제를 벌입니다. 크리스티나 재위 시 국가(정부)의 지출이 그 이전의 세 배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용들을 충당하기 위해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토지 중 많은 부분을 팔고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신교 진영에서 30년 전쟁을 치루었던 스웨덴의 여왕이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이때에 초청되었던 카톨릭 성직자(신부)들과 학자들로부터의 영향 때문입니다. Macedo라고 하는 포르투갈의 신부가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입니다. 여왕은 Macedo에게 몰래 (스웨덴에서는 카톨릭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편지는 Macedo에게 가는 대신에 교황에게 전달이 됩니다. 교황은 변장한 신부 둘을 스웨덴으로 보내고 이들은 크리스티나 여왕과 몰래 만나 카톨릭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크리스티나는 함께 성장한 사촌인 Karl Gustav와 결혼할 것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바뀌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왕위가 이어져야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크리스티나는 Karl Gustav를 후계자로 추천한 후,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국은 1650년에 그를 후계자로 결정하고 맙니다. 1654년에 크리스티나는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이때까지 그녀는 자기가 개종을 하기 위해 물러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때문에 왕위에서 물려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관심 분야가 같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을 떠난 크리스티나는 브뤼셀로 옮겨 그곳에서 일 년 동안 머무르고 그곳에서 공식적으로 개종한 후에 로마로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1689년 로마에서 일생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