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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뺑쥐 '아르쉬트룩 대왕'

clint 2025. 1. 10. 12:29

 

 

여기, 한 나라의 대왕과 신하 바가가 연극놀이를 하고 있다.
처음에 바가는 이웃나라 특사로 분장하고 나타난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총사의 복장이다.
두 번째로 그는 천박한 미소를 머금은 귀족 부인으로써 등장한다.
대왕의 친척 에스뗄 이모님이다.
세 번째로 바가는 판사의 복장을 한 채, 신으로 등장한다.
바가가 무엇으로 등장하고 나와도 대왕은 금세 싫증을 내며 지겨워한다.
바가 역시 여러 해 동안 반복된 연극놀이와 보필에 지쳤다.
둘은 무언가를 바꿔보기로 한다.
"그럼 진정으로 바꾸는 건 뭐지? "  "..여행?"
둘은 당장 다음 날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왕은 다음 날 마주할 새로운 풍경에 쉽사리 잠 들지 못하는데....
그때 못보던 인물이 나타난다. 죽음의 사자이다.
그걸 본 대왕은 난생처음 섬칫함을 느끼고...

 

 

 

로베르 뺑쥐는 불란서의 극작가, 화가로 우리에게는 처음 소개된다. 화가로 출발한 그는 50년대 문필가로 등장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풍자적이며 풍부한 상상력이 변덕스럽게 펼쳐진다.

아루쉬투룩 대왕은 62년 작품으로 샤무엘 베켓트의 게임에 종말과 아주 흡사하다. 대왕과 그의 신하 바가가 꾸며내는 무의미한 그러나 그들에겐 심각하고 절실한 놀이들은 관객들에게 반항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변덕스런 얘기들은 실은 풍부한 상상력이 아니고는 생각해 내기도 어렵고 이해해 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며 그의 표현술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맨 마지막 죽음의 사자의 등장은 이 우스꽝스러운 대왕에게서 심각한 죽음과 충격 허무감을 느끼게 하며 진지한 우스꽝스러운 그 속에 우리 인간들의 의미없고 쓸데없는 모든 노력들이 허물어져 들어가며 세상은 어차피 무의미하고 허무한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뺑쥐의 모든 작품들은 예외없이 일체가 단절된 상황속에서 모노토너스하게 되풀이되는 우주안에서 고립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소용없는 편지(1960)>는 어렸을때 집을 뛰쳐나간 아들의 편지를 헛되이 기다리는 한 노인을 그리고 있다. 이 기다림이라는 주제는 이 계열의 작가들에게서 가장 즐겨 사용되는 주제중의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르쉬트룩 대왕>에서도 주인공인 아르쉬트룩 왕은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기다린다. 뺑쥐는 이 작품에서 그의 주인공을 모든 인간중에서 가장 커다란 행동의 자유를 누리는 제왕으로 설정해 놓고 그가 실상 아무런 의미없는 행동을 해보일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조건을 아이러니컬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르쉬트룩 대왕은 베케트의 건달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이 하는 행동이란 기껏해야 장화속의 돌을 털어낸다 거나 하품하는 따위의 것이라면 아르쉬트룩 대왕은 그의 대신인 바가와 함께 하찮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역자의 글 - -김의경

아르쉬투룩 大王에 나오는 두 人物은 줄곧 게임을 한다. 이들은 군신관계이다. 이들은 할 일이 그렇게 없다. 그래서 가짜 인생들이라고 곧 느껴진다. 이들의 對話는 거의 무의미하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들도 모르고 우리도 모른다. 따라서 이들의 대화에 行爲들은 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들에게 존재론적 회의론에 빠져들게 한다. 그들의 행동이 그러나 너무도 절실하고 심각한지라 그 천진난만한 어린이들과 같은 놀이가 관객들을 묘하게 이끌어간다. 사뮤엘 베케트의 게임의 종말에서처럼 哲學的인 대사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사들이 풍기는 우주론 (또는 존재론) 추구는 마지막 죽음의 사자 등장과 함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 우수꽝스러운 大王의 죽음은 우리에게 갑작스런 충격을 던져주며 거기서 오는 기묘한 허무감은 수천 단어로 이루어진 철학책보다 월등하다. 우리 인간들의 의미 없고 쓸모없는, 또는 불가역한 운명의 한갖된 노력들이 허물어져 버릴 때 이 세상의 허망함, 또는 그 위선적인 허구성이 최루탄을 쏜 방사선 실습 교정에서처럼 우리에게 자극을 준다. 

 

 

로베르 뺑쥐(Robert Pinget)

 

로베르 뺑쥐는 스위스 태생의 전위 프랑스 작가로, 1919년 출생하여 1997년 프랑스 투르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키가 크고 말쑥한 차림이었으며, 생전 14편의 소설과 11편의 희곡과 여러 편의 데셍, 메모를 출판하였다. 뺑쥐는 첫 단편소설집을 출간하고 4년 후인 1955년 'Mabu ou le Materiau'가 재인쇄되면서 주목받기 시 작했다. 1959년에 그는 첫번째 희곡을 썼고, 그 후 15년 동안 그는 평균적으로 1년에 한 편의 신작을 썼다. 그의 희곡 <손잡이>는 그의 친구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가 번역하여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제 작되기도 했다. 그는 dialogue (다이얼로그, 대화)의 대가로 여겨졌으며, 소설과 연극 모두에서 이 재능을 잘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