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과 송연은 4년차 부부이다. 둘 다 연극배우이지만,
지금은 정안만 배우이고, 송연은 연기 학원 선생이다.
돈은 주로 송연이 번다. 둘은 어제 서울 외곽 임대아파트로 이사왔다.
물건이 너저분하고, 앞에서는 시끄러운 기차소리가 들린다.
정안은 아침에 연극연습을 하고 있다. 텍스트도 모호하고,
연출의 특별한 지시도 없는, 아마 돈도 별로 안될 실험적인 극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1인극. 맹인 역이다.
극의 내용인 즉슨, 예전에 자신의 동생을 죽인 한 남자가
지금은 눈이 멀었고, 엄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상자가 되어있다.
남자가 상자에 대고 독백을 하는 1인극이다.
상자이자 어머니와의 대화도 있는데 녹음된 소리가 들릴 거란다,
그때 상자에서는 붉은 빛이 나온다고 지시되어있다.
정안과 송연은 비루한 연극인의 삶, 그런 대화, 그런 대사연습을 한다.
그리고 송연은 장님연기를 위해 정안에게 곧 올 케이블기사를 상대로
장님 연기를 제안한다. 망설이지만 받아들인다.
잠시 후, 케이블 기사가 방문한다. 케이블 설치를 한다.
어린 아들한테 핸드폰이 온다. 그 아들 이름이 정안이다. 우연인가.
케이블 기사는 마치 정안이 연습하는 극의 주인공처럼 실제
그런 일들을 겪고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물을 정안은 장님연기를
하느라 끝까지 보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남자의 독백을 실제 자신이 겪고 있는 얘기를
상자와 대화한다. 그때 상자에는 붉은빛이 나온다.
정안은 배우로써 그 인물이 되길 원하지만 끝까지 이 사람을 보지 못한다.
연극 내의 연극. 극중극에는 “상자가 되어버린 어머니와 시각장애인 아들”의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혼란스럽다. 극중극과 리얼극에서의 인물들이 교묘하게 비껴가며 맞아떨어지는 듯도 한다. 빛이 발광하는 상자에선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오고,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아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대본을 두고 실제 연극의 주인공 부부는 처음 읽고 당황했단다. ‘뭐 이런 연극이 다 있지?’ 하는 표정과 대사로 연극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케이블 설치기사가 오면서 상황이 묘하게 흐른다. 케이블 설치기사는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부부가 연극 소품으로 남긴 상자에 대고 “어머니!” 하며 울분하다. 이런 왜곡과 아이러니는 비유를 통해 현실을 지적한다. 우리들의 눈동자가 하는 일은 고작 내 앞에 놓인 현실을 자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의 눈동자를 비롯한 오감은 너무나 주관적인 감각이기에 나의 현실 범위에서 움직인다. 그렇기에 나의 가치관에 벗어난 현실은 곧 가상세계로 변모한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브라운관 너머의 세계처럼 나와는 관계없는 삶이라 치부한다. 그렇게 사람이란 늘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제 생각과 가치관이 보편의 동의를 얻고 주류에 편승하여 있기에 그것의 오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보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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