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한열 '일타홍'

clint 2024. 9. 19. 20:02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의 입신양명에 일생을 바친 기생 일타홍,

바로 연극 <일타홍>은 그녀의 일생을 다룬 ‘풍류극’이다.

금산의 가난한 집 태생 일타홍의 부모는 보시를 온 스님이

"아이의 관상을 보니 매우 총명은 하나 이곳 풍수와는 맞지 않는 관상 일세.

이곳에서 살면 단명하네"라고 하자 고심끝에 한양에서 내려온 방물장수에게

노잣돈을 주어 한양으로 보낸다. 소리꾼이었던 아버지와 가무를 하던 어머니에게

배운 노래와 춤에 시조까지 창작할 줄 아는 재능에 한양의 독보적인 기생이 된다.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무위도식하며 기방을 들락거리던 총각 심희수를 만난다. 

관상을 볼 줄 알았던 일타홍은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될 것임을 알아챈다. 

집을 찾은 일타홍은 어머니를 만나 기생임을 말하고 기방에서 나와 뒷바라지할 것을 

자청한다. 아들의 방탕함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는 ‘동거’를 허락한다. 

일타홍은 심희수에게 책을 읽고 자신의 과거시험에 합격해야 잠자리를 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낸다. 몸이 단 심희수는 열심히 공부하여 별시에 합격하여 등과한다. . 

일타홍은 기생 신분이었던 자신이 ‘정실’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심희수의 출세에 

지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직접 수소문한 신부감을 어머니에게 천거하여 혼사를 

성사시킨다. 혼례가 치뤄질 때 일타홍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바로 심희수의 곁을

떠나서 고향 금산으로 돌아간다. 

 

 

 

세월은 흘러 10년 후, 승승장구하던 심희수는 서얼제도 문제를  제기했다가 

선조의 눈밖에 나서 금산군수로 좌천된다. 그러나 이것도 일타홍을 사랑하는 

심희수의 계락인 듯하다. 금산에 내려온 심희수는 바로 일타홍을 찾는다. 

허나 일타홍은 "사내대장부가 일개 여인의 치마폭에 빠져 출세를 마다하느냐"며 

심희수를 만나주지 않고 오히려 돌아가라고 강하게 질타한다. 그래도 계속

만나길 원하는 심희수는 기생 금홍을 시켜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전하고

일타홍은 금홍에게 다음 날 아침에 오라고 전하라 한다.

그녀는 약을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심희수의 품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한다.

그때가 38세로, 심희수를 만난 후 20년이다.
극의 처음과 마지막은 상여꾼들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심희수(沈喜壽, 1548년~1622년)는 조선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자는 백구(伯懼), 호는 일송(一松) 또는 수뢰루인(水雷累人),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냈다. 노수신(盧守愼)의 문인이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되었다. 조선 중기의 명기 일타홍(一朶紅)과의 일화로 유명하다. - 이건 위키백과에 나오는 사실이다.

 

 

작가가 풀어낸 구체적인 일타홍
조선의 12대 왕 인종이 즉위한 지 여덟 달 만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하자 조정은 외적의 권력다툼으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조선의 11대왕 중종의 둘째 부인 장경왕후의 오라버니 윤입이 이끌던 대원과 중종의 셋째 부인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이 이끌던 소윤 간의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결국은 윤입의 대윤이 윤원형의 소윤에 의해 몰락하면서 조정에 대숙청 사건이 일어나던 때에 수천 년 전부터 강과 산이 비단처럼 펼쳐진 곳이라고 해서 비단고을이라고 불리던 금산의 진악산 아래 에서 취련(일타홍)이 태어났다. 일타홍의 본명은 취린이며 1546년(명종1년)에 태어나 1585년(선조 18년) 39세에 금산의 고향 집에서 사망했다. 소리꾼이었던 아버지 금산이씨 이배와 가무를 하던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취련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다니며 가무를 익혔다. 한두 번 들으면 금방 따라할 정도로 총명하였고 어른 못지않게 창을 잘하여 사람들은 취련을 소리꾼 신동이라 불렀다. 취련의 나이 9살이 되던 해에 어느 노스님이 집에 보시하러 왔다가 취련의 관상을 보고는 아이가 이곳에 있으면 단명한다고 했다.
「아이의 관상을 보니 매우 총명은 하나 이곳 풍수와는 맞지 않는 관상 일세. 이곳에서 살면 단명 수가 있네」
노스님의 말을 듣고 놀란 취련의 부모는 사흘 낮 밤을 슬픔으로 지새우며 아비 이배는 나무에 부처상을 조각했고 어미 김씨는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사흘 낮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 취련의 부모는 결국 마침내 한양에서 내려온 방물장수에게 노잣돈을 주면서 한양에 올라갈 때 취련을 함께 데려가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는 한양을 가려면 제원의 금강을 건너서 양산과 옥천을 거쳐서 한양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취련의 부모는 나룻배를 타고서 금강을 건너며 어린 딸을 마지막으로 배웅했다.
「아부지 지는 오래 살지 않아도 될께 여그서 아부지 엄니와 살믄 안되나여?」
「자식이 일찍 죽길 바라는 부모는 시상에 읎다. 부모보다 시상을 일찍 떠나는 건 불효중에 최고로 나쁜 불효인겨」
이배는 손수 깎아서 만든 나무부처를 딸에게 주었고, 어미 김씨도 손수 만든 복주머니를 딸에게 주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나무를 깎아서 만든 부처여. 너를 지켜줄 것이니께 잊어버리믄 안다. 늘 잘 간직허구 있어야 혀」
「이건 복주머니다. 잊어버리지 않게 나무부처를 복주머니에다가 꼭 넣어 다녀야혀」
아버지가 손수 젖는 나룻배를 타고서 금강을 건너고 어린 취련은 부모님과 눈물의 이별을 했다. 취련을 데리고 한양에 올라온 방물장수는 돈을 벌 술책을 부렸다. 부 모의 재능을 물려받아 가무도 잘하고 얼굴까지 곱게 생긴 취련을 기생집 행수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기생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뒤 취련은 <일타훙>이라는 필명으로 기생이 되었다. 가무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글솜씨 또한 뛰어나 기생집을 찾던 대간들이 이구동성 말하기를 가곡(歌曲)은 떨어지는 꽃잎처럼 애간장을 녹이고 춤 추는 자태는 붉은 노을 구름처럼 웅장하다고 하여 <일타홍>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일타홍의 뛰어난 예술의 기술은 한양에 퍼져 모르는 선비들이 없었다. 인기를 독차지하며 관기가 되었고 관기로 지내는 동안 여러 대신들의 연회에 불려 다니며 술시중을 도맡았다. 1565년 즈음에 대간들의 술시중을 하던 중 영의정 이준경 대감을 알게 되었다. 이준경 대감은 자신의 술시중을 담당하던 일타홍을 의외로 주색의 대상이 아닌 딸처럼 아껴주었다. 다른 기생과는 다른 심성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윤원형을 몰아내고 영의정에 오른 이준경은 자택에서 대간들을 불러놓고 연회를 즐기는데 연회의 공연은 일타홍과 그녀의 동료들이 맡아서 했다. 그때 일타훙은 언젠가 저잣거리에서 부랑자 같은 모습으로 싸움 질하던 심희수를 이준경 대감의 연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일타홍은 연회에서 심희수가 부랑자가 아니라 이준경 대감의 종질의 아들이요 왕비의 6촌아우라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부처를 손에 쥐고 염원하며 그에게 욕망을 품었다. 그리고 자신을 유혹한 심희수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다. 일타홍과 하룻밤 사랑을 나눈 심희수는 일타홍에게 푹 빠져들며 함께 살림을 차리고 살자고 일방적으로 제안했다. 일타홍은 심희수의 제안을 기뻐하며 수용하고 기생 일을 그만둔 뒤 심희수의 집으로 들어가서 엄격한 심희수 모친을 설득하여 승낙까지 받아내고 사실혼 관계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영의정 이준경은 심희수 모친 이의인의 종숙부였다.
 욕망으로 시작된 일타홍의 사랑은 심희수와 함께 살면서 자신을 대하는 그의 마음에서 진실함을 느끼고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반성했다. 그리고 난 뒤 심희수를 대하는 태도가 진정한 사랑으로 변하여 그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후원하며 언젠가는 정실부인 배필이 되는 희망을 품었다. 일타홍은 기생으로 모아 놓았던 자금을 심희수 집안을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 유배에서 풀려난 이모부 노수신 대감에게 학문을 익히는데 모두 써가며 심희수가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후원했고 결국 심희수는 1570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심희수는 일타홍의 후원으로 성균관에 입학했으나 한시도 일타홍의 품을 잊을 수 없어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이에 화가 난 일타홍은 심희수에게 학문을 익히는 일을 게을리하면 집을 떠나겠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말을 따랐고 결국 1572년 문과에 급제했다.
 일타홍은 심희수가 과거에 급제하고 받아 온 홍패(紅)를 보며 감동 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편치 못했고 갈등만 더욱 커졌다. 정실부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그랬고, 자식을 낳아도 적자가 아닌 서자가 된다는 것 또한 일타홍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동안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가질 기회도 많았었지만, 일타홍은 결국 아이를 갖지 못했다. 수년 동안 심희수를 사랑하며 사실혼 관계로 살아왔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았으니 사랑하는 심희수를 위한 일타홍의 갈등과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타홍은 결국 결심을 굳게 한 뒤 노수신 대감의 아우인 노극신 대감에게 심희수 보다 5살이나 연상인 시집 못 간 「노숙행」이라는 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서 중매를 주선하여 노극신의 딸 숙행을 심희수의 정실부인으로 맺어 주었다. 심희수와 노숙행을 짝으로 맺어준 뒤 일타홍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곧바로 심희수의 곁을 떠나서 고향 금산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일타홍은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중 어머니와 사별하고 홀로 외롭게 살았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38세가 되었을 때 그해 가을 심희수가 금산군수로 부임해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희수는 율곡 이이가 서얼 출신인 선조를 위해서 서얼도 벼슬에 오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것에 대하여 처음엔 율곡 이이의 뜻을 지지했다가 이이가 사망한 뒤 서얼제도 개정을 반대하는 사가독서 동료인 허봉을 지지하면서 선조의 눈 밖에 나고 변방으로 체직을 당했는데, 이모부인 노수신과 영의정 박순의 도움을 받고 원하던 금산군수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해 3월엔 홀어머니 이의인도 사망했다. 심희수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가을에 금산군수로 부임했다.
 금산군수로 부임해 온 심희수는 금산에 살고 있던 일타홍을 수소문하여 찾아냈으나 그녀는 심희수를 만나주지 않았다. 여러 가지 수단을 부리며 만나려고 했지만, 일타홍은 심희수를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 사랑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찾아왔으니 만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타홍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심희수를 만나주지 않는 이유는 심희수가 자신 때문에 시골 군수로 내려온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사내대장부가 일개 여인의 치마폭에 빠져서 출세를 마다하느냐"며 심희수를 만나주지 않고 오히려 돌아가라고 강력하게 질타하였다. 그러나 심희수는 포기하지 않고 일타홍의 동료였던 금홍을 알게 되고 금홍을 시켜서 일타홍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자 금홍은 일타홍을 찾아가 회유하였다. 일타홍은 심희수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그녀는 사랑하는 임을 위해서 결국 결심을 굳게 했다. 심희수가 자신을 포기하고 정신 차리고 깨어 근신하며 대궐로 돌아가서 출세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임을 위해서 자결을 선택한 것이다. 일타홍은 사랑하는 임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운명을 바꾸어버릴 정도로 심희수를 사랑했었다. 처음엔 욕망으로 시작했으나 후엔 깨달으며 진실한 사랑을 했고 그 진실한 사랑은 희생정신으로 임을 위해 살았으며 그리고 사랑하는 임을 위해서 그 겉자리를 내어주고 그리움 속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12년 만에 그토록 사랑하는 임과 재회했지만 결국 일타홍은 사랑하는 임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해서 운명을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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