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되자 노혁명가로 알려진 이성일은 감옥에서 풀려나와 격동하는 정계에 뛰어들어
정권쟁취에 몰두한다. 20여 년간 그가 만주땅과 감옥에서 전전할 때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그의 처 고은경은 박덕과 부정의 관계를 맺어 원규를 낳는다.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시작된 관계였으나 이제는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한편 아들 원규는 이성일을 자기 아버지로만 안다. 성일의 딸 희원은 그 관계를 알고
성일이 돌아오는 날 엄마을 비난하며 그 관계를 끊을 것을 청한다.
성일은 비서 이용균의 도움으로 정계에서 패권을 쥐고자 애쓰지만, 그의 졸열한 전술과
현실을 무시한 고집으로 그의 당은 물론 우익단체의 단결마저 해치고 만다.
성일은 무작정하고 처인 은경의 땅을 팔아치운다. 마침내 反對당에선 박덕이 중심이 되어
성일을 암살하고자 한다. 은경도 이 사실을 안다. 간신히 성일은 생명은 간신히 건졌지만
중상을 입어 폐인이 된다. 암살음모가 탄로나자 은경은 자살한다.
아들 원규는 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희원은 끝내 성일을 도와 집에 남는다.
6・25가 터진다. 서울이 점령되는 날, 성일은 음독자살한다. 이어 적의 전차를 부수고
피투성이가 된 원규는 싫어하던 아버지를 찾아와선 총을 든 채 죽고 만다.
전세가 역전되어 북이 사라지자 피난갔던 희원이 돌아온다.
외로움과 불안에 앞길이 캄캄하여 가족들의 무덤 앞에서 울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우선 생존을 위해서라도 움직여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이 아니라 원규가 낳은 애미없는 어린애도 길러야한다.
희원은 어린애를 안고 5월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살아나갈 것을 맹세한다.
작품 <욕망>(1964)은 이근삼 작가 195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영어로 쓴 극인데, 이를 다시 우리말로 고쳐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였다. 늙어가는 노 혁명가와 그의 일가의 비극을 그려 보았는데, 본래 희랍 비극작가 에스킬로스 3부작을 한국 땅에 옮겨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관객을 생각한 나머지 애당초의 생각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근삼 전집에 나와있는 작품 욕망을 읽어보면 (공연대본이 아닌 원본이 수록됨) 그 작품의 등장인물, 스토리 구성, 결말 등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 또는 유진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와 거의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시 한국에 돌아와 처음 장막을 써낸 이근삼 작가의 문학성(고전을 재구성한)을 지키기가... 특히나 관객 입장을 생각하는 연출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근삼 작가의 거의 유일한 비극이다.
격동기인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노(老) 혁명가 집안의 수난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욕망>은 현실에 대한 냉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근삼의 작가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계급에 대한 작가의 혐오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 의식이 아무리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더라도 이 작품의 구성 원리는 ‘혐오스러운 세계=남성적 지배질서’라는 공식이 깔려있어서 다분히 남성적인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다. 한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속한 가정의 자그마한 역사를 파헤친 작품으로 온갖 소용돌이 속에서도 줄기차게 이어가는 생명과 생명들.... 저마다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살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조국해방을 가져온 한 가정의 비극을 연대기 적으로 엮는 가운데 친일파와 불의의 관계를 맺은 한 여인의 세속적인 욕망과 그 욕망 뒤에 오는 멸망을 부각시키고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속된 인간들의 속죄를 그녀의 딸로 하여금 떠맏게 하고 있다. 여기서 딸 희원은 새로운 삶을 위한 귀한 생명력을 상장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작가의 의도도 그 언저리에 있다고 보겠다. 해설역으로 등장하는 코러스는 오랜 시일에 걸친 사건을 설명하면서 자칫 소극으로 빠질 우려를 경계하며 비극적인 관조를 통해 인간을 투시하는 역할로 활용된다. 그리고 보면 이 작품은 이근삼의 여러 작품들 중 첫번째 비극 작품이라 하겠다.
작가의 변 - 이근삼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 외국에서 태극기를 보면 눈물이 글썽해진다. 이 작품도 내가 5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영어로 쓴 것이다. 그 작품을 다시 우리말로 옮겨 고쳐 내놓았다. 처음에 미국서 공연된 나의 첫 작품 <영원한 실마리>, 그리고 <다리 밑>이 한국전쟁의 비극과 피난 생활 등 참상을 미국인에게 보이고 싶어 쓴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귀국할 무렵에는 좀 더 간이 커져 이왕이면 한국의 歷史랄까, 운명 같은 좀 더 큰 문제를 갖고 이것을 외국 무대에 전개시켜 보고자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틈틈히 쓴 것이 이「욕망」이다. 내가 외국에서 할 수 있는 애국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여성숭배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운명을 우리 여성 속에서 발견한다.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생명을 이어나가는 우리 여성의 일생은 흡사 이웃 나라의 모진 침략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생을 이어 오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같다. 내 생각은 이 극을 쓰면서도 늘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옛날 그리스 비극작가 그린 인물을 한국땅에 끌어오고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싶었다. 이 극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자기 나름의 변명을 갖고 최선을 위해 몸부림친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악착같은 욕망이 서로 부딪혀 갈등하고 반목하는 상태에 있다. 우리의 역사, 우리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갈가리 찢어진 욕망의 총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이 쓴 미숙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 수고해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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