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송인현 '뮤지컬 어디메와'

clint 2024. 9. 17. 12:51

 

 

 

심학규는 뺑덕이를 앞세우고 황성을 찾아나선다. 
그렇지만 뺑덕이 역시 맹인이다. 맹인이 맹인을 끌고 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뺑덕이는 황봉사를 데리고 가는데 황봉사는 뺑덕이와 
배가 맞은 자로 심학규의 재산을 노리고 개흉내를 내며 따라나서는 것. 
심학규는 황성에 가서 눈을 뜨고 한자리 하겠다고 생각하나 
뺑덕은 아무데서나 자리잡고 육신의 안녕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이들은 반대편에서 황성을 찾아가는 맹인들을 만난다. 
양쪽 맹인들은 자기들이 온 방향은 절대 황성이 아니라는 것만 알뿐 
어디가 황성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 자기들이 맞게 황성을 
찾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한 심학규는 황봉사가 방향을 잘못 틀어 자기가 온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맹인들은 자신들이 바로 찾았다며 노래를 부르며 
길을 간다. 먼저 가던 심은 뒤따라오는 맹인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황성에 도착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자 갑자기 황봉사가 달려들어 
돈을 뺏으려 한다. 심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맹인들에 의해 황이 잡히고 
드디어 황성 관가로 끌고 가기로 한다.
이때 뺑덕은 심에게 도둑을 잡은 공을 혼자 세우려면 맹인들을 따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심은 공을 혼자 세우려는 욕심에 황을 끌고 달리다가 오히려 
황과 뺑덕에게 돈을 뺏기고 만다. 결국 뺑덕도 황봉사에게 돈을 뺏긴다.
심학규는 돈을 찾으려고 노력하나 지쳐서 잠을 청하게 되는데 
꿈속에서 청이를 만난다. 
심학규는  진정으로 청이를 보고 싶다 하자 청이를 본다.

 


고전은 항상 새롭게 태어난다. 아니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시대의 감각과 정신 그리고 작가 및 연극이라는 구체적 표현의 
참여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의 고전 가운데 "심청전"은 효를 강조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敎訓을 주고 있으나, 이 작픔에서는 심학규의 內面에 중점을 두어 
눈을 뜬다는 것이 육신의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각성했다는 의미로 풀었다.
다시말해서 깨달음은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성서적 해석을 대입하여 자신의 욕망을 버리면 진정한 의미의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고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청이는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버렸으므로 구원(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함)되었다는 말이 된다.
이 공연의 의도는 종전의 孝의 개념을 벗어나 각박한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탐욕스럽고 이기심과 교만함으로 세상을 얼마나 그르치고 있나를 보여준다. 

우화적 기법으로 심학규를 현세로 불러내어 현사회를 풍자함으로 자칫 

고루하게 전개될 수 있는 이야기를, 뮤지컬 형식을 빌어 빠른 극템포로 전개한다. 

여기에 우리 음악의 자긍심이기도 한 "사물"을 현대감각에 맞도록 응용하였고 

안무는 이 음악에 맞추어 재즈댄싱으로 표현하여 공연했다.


작가의 글 - 송인현
황성은 어디메와(어디일까)
나는 "연기하며 글쓰는 탈꾼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 가지를 어느 것 하나 더하고 덜하고 없이 사랑하고 그러면서 내겐 이 세 가지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겐 전통 자체를 전승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꿈틀거림이 있다. 물론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진정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몫은 몸으로 체득한 것을 새롭게 풀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하나로 심청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내겐 심학규가 눈을 뜬 사건은 의미가 있었지만, 그것이 심청의 "효" 때문이라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물론 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효는 정상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강조한 느낌이 들어서 이것을 새롭게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성경에서 소경 비유를 읽으면서 나도 소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바로 심학규가 아닌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렇다면 황성은 어디일까? 과연 황성은 있는 것일까? 여러가지 의심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래서 반대편에서 오는 맹인들도 등장시켜 황성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게 하여보았다.
 이제 바라는 것은 관객들이 정말로 재미있게 연극을 보고, 나가면서 자기의 황성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소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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