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류수현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clint 2024. 8. 30. 08:19

 

 

여름, 버스정류장

야채 좌판을 펼쳐놓고 앉아있는 분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은실

아버지가 만든 부채를 들고 있는 은실.

그 부채를 보며 기억 속에 묻어 둔 부채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사람.

은실의 아버지는 부채를 직접 만들어 파는 부채 장수였다.

부채와 함께 만물 봇짐을 메고 전국 장터를 돌아다니던 장돌뱅이였다.

은실과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운명처럼 기다리며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는 20년 전에, 엄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은실의 아버지 화평은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특하고 공부 잘하는 화평이 높은 벼슬길에 오르길 바랐다.

하지만 시대는 일제강점기, 화평의 징용통지서로 모든 게 엉망이 된다.

부모님은 아들 화평의 징용만은 피하기 위해 만주로 보내지만,

화평을 빼돌린 죄로 일본 놈 앞잡이 요시오에게 죽음을 당한다.

 

 

 

해방이 되고 집으로 돌아 온 화평

부모님의 원수 요시오를 찾아서 전국을 떠도는 장돌뱅이가 된다.

분례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큰 고통을 겪는다.

해방이 되고 조선으로 돌아온 분례.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끌려간 과거 때문에 고향에 정착하지 못한다.

결국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장돌뱅이가 된다.

어느 장터. 수를 놓아 파는 분례, 부채를 만들어 팔던 화평.

비슷한 사연을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부부의 연을 맺는다.

분례가 목련을 닮았다며 만든 부채마다 목련과 나비를 그려 넣었던 화평.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함께 한지 3년이 되던 어느 날 장터에서 갑자기 화평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분례는 다른 사람들처럼 화평도 위안부였던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오랜 세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는 분례.

화평은 사라졌던 그 시간동안 어둡고 외로운 수감생활을 했다

부모님의 원수였던 요시오를 살해한 죄다.

 

 

 

은실이 버스정류장을 찾은 그날이 은실 아버지 화평의 기일이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은실은 분례 곁을 떠난다.

은실이 떠난 자리에 은실이 두고 간 은실 아버지의 부채가 놓여있다.

 분례는 조용히 부채를 펼친다.

부채에는 목련과 함께 날아오르는 나비가 그려져 있다.

분례는 화평을 기리며 나비가 훨훨 날아오르듯 춤을 춘다.

진혼굿처럼 아프고 쓸쓸하다.​​

 

 

 

부채쟁이 천한 부모 만난 것도 모자라서 왜놈들 전쟁터에 죄 없는 내 새끼가 왜 잡혀가는지 모르겠소. 징용에 잡혀 가서 살아서 돌아온 놈 하나도 없다는디. 두 눈을 뻔히 뜨고 어찌 내 아들을 죽음터로 보낸단 말이요. 화평이 아부지 어찌 좀 해봐요,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시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평생 죄인 같이 살고 있구만. 이런 나한테 사과하는 놈도 보상해주는 놈도 없으니 원통하고 분해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소.”

 

 

류수현 작가의 말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가장 불행한 역사, 일제 강점기. 가족의 보편적 가치를 말살당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마저 빼앗기며 살아야 했던 암울한 시대. 그 시대의 최대 피해자는 그저 그때를 살아온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일제의 핍박 속에서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두려움과 상처를 안은 채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가 되어야 했다. 그들의 아픈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우리는 위로와 더불어 상처를 치유해줄 의무가 있다. 어떤 것으로도 보상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 중의 하나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