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지영 ​ '하거도'

clint 2024. 7. 21. 15:22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반이나 떨어진 섬 하거도.
섬 하거도는 정부 주도하에 공업도시로 개발되어 모두를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유토피아가 된 섬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삼백여 구의 시신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그 원인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1964년, 하거도에 발전소 하나가 세워졌지만 그곳은 범죄자들을 가둬 
강제로 노역을 시켜 그 이익을 취하는 사실상 거대한 수용소였던 것이다. 
발전소의 이익이 늘자 일부 관리들은 수감자들을 범죄자에서 일반시민으로 
늘려가며 강제 노역에 참여시키고 조직은 이를 숨기기 위해 더욱 잔인한 
수감방식을 모색하는데....

 



50여년 전과 현재를 오가며 섬에 대한 진실과 남주인공 하거도의 환상이 뒤섞인다. 그런 시공간의 전이는 현실과 비현실의 이동으로 극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름답고 눈부신 하거도의 모습. 이를 둘러싸고 있는 과거의 흔적. 주인공 하거도가 살고 있는 수용소, 그의 환상인 재판 이렇게 작품은 크게 4개의 이야기로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룬다.
이 연극 안에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나만 아니면 되는 소시민, 나만 살면 되는 군인, 나만 부자가 되면 되는 정치인, 나만 쾌락을 추구하면 되는 수용소장, 나만 즐거우면 되는 지나가는 커플의 남자, 내 세상만 분홍색이면 되는 유치원 교사... 이곳에는 이기심만이 가득한데, 그 사이에서 하거도라는 인물은 어떻게 이렇게 고고하도록 순수함을 유지했을까? 숫자로 불리는 그의 친구 말에 따르면 하거도는 담장 밖의 생활을 겪어봤기에, 담장 밖의 생활의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에 다른 눈빛을 가졌다고 하지만, 하거도는 그저 상징적인 인물일 뿐이고 하거도 역시 존재할 수 없는 섬의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시간순서를 따라 나열해도 따라가기 벅찰 내용을 처음부터 하거도라는 이미 죽은 인간의 내면 속에서 벌어지는 재판정으로 설정하고 하거도의 기억 속 인물들 가운데 한 명씩 나와서 재판관과 변호사, 검사, 배심원들이 자리를 잡는데, 사실 배심원들은 구경하다 추임새를 넣고 정보를 던져주면서 구경하는 일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  

 


<하거도>의 주인공은 하거도라는 이름의 섬과, 그 섬에서 태어나 거도라고 불리는 인물 하거도다. 섬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이 섬은 목포에서 여섯 시간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있고 무인도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섬의 주민들이 모두 소거되기 전에는 육십가구에 백 명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박정희 시대에 이 섬의 주민들을 모두 내보내고 발전소라는 건물을 지어 그곳에 사회불만세력을 잡아 넣고 강제노역을 통해 누군가는 큰 돈을 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방석집도 문을 열고 세상이 바뀌면서 하거도에는 리조트도 생기고 학교도 생기도 세상 좋은 환상의 섬이 되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굶어죽은 듯 비쩍 마른 시체들이 한 두 구도 아니고 이백구가 넘게 떠내려 오면서 스캔들의 섬으로 등극한다.
섬은 말이 없으니 인물 하거도 이야기를 하자면, 주인공 하거도는 이유도 모르고 군인에게 잡혀간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택시 운전사 하나 잘못 만나 하거도로 납치당한 만삭의 벙어리 여인이다. 섬에서 기다리는 것은 포주 모자. 그들은 어렵게 낳은 아이를 인질로 하거도의 어머니에게 몸을 팔게 한다. 어머니는 어느날 섬에 관광 온 부부에게 자신의 아이 하거도를 맡기며 지옥같은 섬에서 내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그 부부는 하거도가 일곱살이 되자 시험관 아이가 생겨 친모처럼 벙어리인 하거도를 하거도로 돌려보낸다. 하거도는 결국 수용소로 보내져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자칫 죽을 뻔했던 위기에서 구해준 동년배의 소년을 친구라 여기며 의지한다.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리는 그 친구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담 밖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담 밖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도 못하면서 몸짓과 그림으로 보여주려 하는 하거도지만 결국 그 안의 모든 인원이 아사할 위기에 놓이자 수용소에서 얻은 아들과 친구 둘 중의 하나와 탈출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 아들은 옥수수죽 한 그릇 더 먹자고 친모를 고발하고 하거도와 탈출하기 위해 하거도의 친구를 주린 제소자들에게 내주고, 그 모습을 본 하거도는 인간의 존엄성이 다 말라버린 모습에 아들을 죽이고는 담장 밖이나 안이나 똑같다며 불을 질러 천 명 넘는 제소자들과 세상을 떠난다.

 

 

 

이 발전소가 불법 수용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큰 곤경에 처했을 도지사와 간수장, 그들과 엮인 사람들은 자체 화제에 모두 기뻐하는데,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죽은 하거도의 뇌내재판이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거도의 머릿속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하거도는 죽어서도 자기 머릿속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하거도 한 명의 인생을 보자면 그보다 더 우울하고 불행한 인생도 없을 듯 하다. 그의 어머니는 1980년에 하거도에 잡혀왔고 아버지는 어머니도 관객도 모르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하거도의 수용소란 대체 어떤 곳일까? 도지사나 수용소장의 말에 따르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사형시키는 대신 나라에 충성할 기회를 준 곳이다. 이 안에는 분명히 남 녀 수용시설이 엄격하게 갈리지만 개중 모범수에 한 해 일 년에 몇 번 성욕을 풀 수 있게 해주는 희안한 포상제도로 인해 줄어들 줄 알았던 수용소 인원은 점점 늘어나 몇천에 달하게 된다. 하거도의 친구 역시 이 포상제도로 수용소 안에서 태어나 한 번도 단 맛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단맛을 표현하는 하거도는 눈처럼 녹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단맛을 안다. 그들의 식사가 옥수수니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사연이 또렷하기 보다는 흐릿하고, 감정마저도 그러하다. 하거도는 포상으로 주어진 관계로 아들을 얻지만 아이 엄마는 그저 모성으로 그려질 뿐이다. 하거도의 친모가 그렇게 그려졌듯이. 이 작품 속의 여성들은 엄마, 아니면 창녀일 뿐이다. 즉, 모든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다루어진다. 같은 선상에서 수용소장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하거도의 친구의 설정 역시 그 의도가 모호하게 그저 에피소드의 하나로 사용될 뿐이다. 친구는 그 덕분에 좀 더 편한 생활도 좀 더 맛있는 것을 얻어먹지만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질시의 대상이자 가장 도덕적이지 않은 인물이 된다. 도대체 이 수감시설 안의 ‘도덕’의 기준은 뭘까? 이 연극 안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내용은 모두 죽은 하거도의 내뇌재판일 뿐이라는 것 하나지만 실제로 뇌 속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여성 캐릭터는 짜증내고 화를 내고 뒹굴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결국 이 재판은 결론조차 내지 못한다.   거대한 사건에 묻힌 비밀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 한 개인의 비극이 드러나는 방식인데 그 과정에서 미스테리에 대한 반전도, 지금 현실에 대한 풍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난다. 결국 역사도, 개인의 불행도, 현실풍자도 모두 그저 같은 양념으로 버무린 80첩 반상의 반찬들처럼 맛의 분별력도 없이 늘어놓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무언가 굉장한 것이 들어있을 것처럼 시작하지만 그것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직, 완성의 길 위에 있는 이 작품이 그것을 보여줄 때까지 조급하지 않게 기다려 보고 싶다. -  이수진(평론가)

 



작가의 글 - 윤지영 ​
하거도의 출발은 신의도에서였다. 염전 노예 기사를 접하고 나는 진짜로 화가 났다. 도대체 이 인간 사회는 자신을 지키지도 못할 만큼 약하게 태어난 사람들을 왜 학대하나 - 몇 달간을 끙끙거렸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곤지암 정신병원, 갖가지 고아원과 요양병원에서의 원장들의 만행, 농촌의 무임금노동자들에 대한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봤다. 화는 점점 차올라 어떤 날은 잠을 자지 못해 눈이 시뻘겠다. 누군가 함께 살았다면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할 만큼 나는 그들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나를 좀 달래야 했다. 그래서 신의도로 향했다. 그 멀끔하게 잘 생긴 기자양반이 말 대로, 모두 집으로, 복지시설로 보낸 게 확인이 되면, 깔끔하게 잊고 잠을 좀 자고 싶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나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뉴스에서 봤던 경찰서와 우체국이 한눈에 보였다. 잘 닦여진 도로 위로 아우디와 벤츠가 씽씽 소리를 내며 달렸다. 골목 구석 어디에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섬노예를 상상하기 어려운 쾌적함이었다.
그러다 - 한 청년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청년은 염전에서 일하냐는 내 질문에 그렇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의 옷은 빨지 않아 지독한 냄새가 났고 걸을 때마다 다리 한쪽을 심하게 절뚝었다. 그는 내게 '안녕하세요. 신의도는 살기 좋은 곳이에요. 저쪽으로 가면 농협이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노래방도 있어요.' 라고 말했고, 웃었고, 다시 길게 이어진 길을 걸어갔다. 절뚝거렸지만 쉬지 않고 그렇게 걸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더러운 신발 몇 컬레가 아무렇게  던져진 컨테이너박스 앞이었다. 그는 문을 열었다. 청년이 들어가자 문은 이내 닫혔고,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지도를 구하러 갔을 때 면사무소 직원은 관광 책자에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줬으면서- 과장님은 멀리 여행 왔다고 밀크커피까지 손수 타왔으면서 - 그렇게 다정하게 웃고, 친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왜 - 이렇게 깨끗하게 도로를 정비하고, 전국 방방곡곡 신의도 소금을 안먹는 가정이 없다는데 굳이 왜 - 그리고 - 이제껏 우리는, 나는 왜 -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삿대질뿐인 내가, 삼십몇 년간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나의 무능력이 부끄러웠다. 섬에서 돌아온 후 나는 줄곧 무언가에 홀린 듯 어디론가 쏘다녔다. 어느 도서관 구석에서는 한 남자와 그림을 그렸다.  뻘에 박힌 배에 올라 남자는 성을 탈출하려고 하고 있었다. 볼품없는 스케치 속의 그가 하거도의 첫 모습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판을 두드리는 것 뿐이니, 나도 A4용지 속에라도 청년을 탈출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자판은 늘 Delete키로 끝났다. 백지 속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은 자꾸만 어디론가 나를 불러들였다. 마지막으로 제주 4.3평화공원에 도착했을 때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이름을 보며 미안합니다를 연발했다 분노로 시작된 이야기에 의뢰인은 점점 늘고 있었다. 고개를 저으며 깜냥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나의 희곡에는 못 담아요, 라고 고백했다. 목포의 행복직업소개소와 역전의 택시들, 숫자로 환산돼 버젓이 한 페이지를 차지했던 죽은 양민의 수, 경제발전에 혈안이 돼 아무 짓이나 거리낄 것 없이 자행했던 전직 대통령과 이에 편승해 복지원으로 돈놀이를 하던 기름기 가득한 원장의 얼굴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리고 - 예쁜 얼굴로 광고를 하는 연예인과 하늘 높이 솟아있는 아파트 건물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명품 옷을 걸친 주민들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외제차들이 머릿속의 이쪽과 저쪽을 헤매고 다니며 머리뼈를 두드렸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성배 '그날들'  (4) 2024.07.23
최기우 모노드라마 '여자, 서른'  (1) 2024.07.21
극단 여행과 꿈 (공동창작) '쉼, 표'  (1) 2024.07.20
김광림 '멍'  (1) 2024.07.18
최기우 '가인 박동화'  (1) 2024.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