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성배 '그날들'

clint 2024. 7. 23. 06:02

 

 

축구경기장 외부 벤치에서 처음만난 두 남녀.

서로 만날 약속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만나기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각각 첫 만남에서

잠깐 동안의 헤어짐까지, 영원한 이별의 순간에서 잠깐 동안의 헤어짐까지

시간의 순행, 역행으로 펼쳐진다.

축구경기 후반전이 끝나기 전까지 둘의 대화는 매듭을 지을 수 있을까?


불확실한 인생의 단편들을 축구경기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축구경기장 앞에서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두 남녀의 대화가

축구 경기와 함께 순행 혹은 역행으로 펼쳐진다.

과거 연인들의 에피소드는 과장된 연기로 확연히 장면을 구분했다.

플라타너스처럼 푸르른 청춘의 추억을 잔잔하게 혹은 축구경기장의

떠들썩한 함성으로 새겨놓은 작품이다.
지나갈 날들, 이미 지나버린 날들에 대한 기억들이 단편처럼 펼쳐진 점,

마지막 홀로 조명을 받던 종이로 만든

‘플라타너스 꽃’이 건네는 작은 위로가 인상적이다.

 

 

 

작가의 글 - 김성배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요.”

4월 한국공연예술센터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았을 때 이같이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그날들]이다. 이 작품은 축구경기장 밖 벤치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자신의 옛사랑을 추억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형이다. 남녀의 입을 통해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동시에 축구경기가 진행된다.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은 어떤 것일까를 축구 경기가 이뤄지는 90여분 동안의 과정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풀어냅니다. 기승전결로 사건이 이뤄지기보단,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제 나름대로 재구성했습니다. 에피소드와 축구경기를 시간적인 에너지 측면에서 발맞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축구경기장’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사랑’이라는 소재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김성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한다면 이 작품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을 녹여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그는 ‘축구기자’ 출신이다.
“한때는 ‘축구는 곧 나’가 된 적도 있었어요. 축구에 빠지다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한 적도 있고요. 특히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열광시킨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축구 기자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경험이 녹아 들어가기가 쉬웠죠.” 남녀의 대화 속에 축구에 관한 세밀한 묘사가 들어있는 이유다. ‘함성소리만 들어도 원정팀이 이겼는지 홈팀이 이겼는지 안다. ’와 같은 대사에서 그의 경험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순환구조를 갖추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만남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한용운의 시(詩) ‘님의 침묵’에서처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는 거죠. 만남과 이별을 계속 순환하니까 결국 이 작품은 헤피 엔딩일 수도 있겠네요.”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을까?

“거창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글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라며 운을 뗐다.

“이 작품은 결국 근본적으로 쓸쓸함의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 간의 만남을 통해 약간의 위로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 대본 및 작사과정을 수료하고 있다. 축구기자 활동 당시 영국에 잠시 체류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곳에서 셰익스피어 연극부터 최신 뮤지컬까지 다양한 공연들을 접했다. 특히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 “문화가 선진화될수록 뮤지컬 쪽으로 발달을 많이 하더라고요. 콘텐츠도 마냥 가볍지 않아서 매료가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성을 살리고 싶다고 했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비록 소설이지만 굉장히 음악적이죠. 저도 극을 쓸 때 반복성이 갖고 있는 음악적인 요소들을 살리고 싶습니다.” 연극 [그날들] 에선 남녀 주인공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를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하는 식이다. 그는 “반복이 갖고 있는 울림을 통해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느낌들을 전달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그는 어떤 작가를 꿈꿀까?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제가 쓰고 싶습니다. 극작가도 결국은 관객이죠. 제가 봤을 때 불편한 부분은 피하려고요. 제 작품이 제 언저리에서 진행돼야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