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노희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clint 2024. 7. 25. 16:57

 

 

주인공 인희는 의사남편과 두 자녀,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중년층의 주부이다. 새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인희는 심한 오줌소태로 남편의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의 병이 말기암으로 더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지속되던 오줌소태를 그게 무슨 

병원까지 찾아 올 일이라며 동네 약국에서 약이나 사 먹으라던 남편은, 

평생을 의사로써 살아왔으나 더 이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해고를 

당하는 처지가 밝혀질까 두려운,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의 아버지였다. 

엄마를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의사인 아버지에게 엄마를 살려달라고 

오열을 하는 자식들을 보며 어머니는 마음이 아리고, 

그 시린 가슴을 안고 억척스레 일상을 꾸려 나가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다. 
거의 모든 수발을 도맡아 하면서도 힘든 내색하나 않던 인희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며, 두고 가는 시어머니가 안타까워 함께 가자며 

목을 조르다가 가족들의 제지로 사건은 무마된다. 

생을 마감하는 그녀에게 가족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그녀가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새로 지은 집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인희와 남편, 둘만의 마지막 시간, 

남편은 인희를 깨끗이 씻어준다. 마치 아이를 씻기듯이, 

정성스럽게 얼굴을 부벼대는 가운데, 

인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1996년 4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이후 드라마 PD와 작가들에게 교본처럼 여겨진 이 드라마는 2000년 4월 소설 출간, 2010년 3월 대본집 출간 등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연극으로도 새롭게 재탄생돼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모성애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주인공 인희는 갑작스럽게 자궁암 말기란 판정을 받는다.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 갈 꿈에 부풀었던 인희는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한다. 노희경 작가는 실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년 만에 이 작품을 썼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올리는 글이기도 하다”라며 소감을 밝힌 그녀는 “부디, 젊은 우리는 부모님 살아계실제 철 들길.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어리석은 자식이 철 들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연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드라마의 대사와 구성을 거의 동일하게 무대로 가져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인희가 죽은 후 가족들의 일상이 끝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붙는 정도다.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도 가족들의 삶은 지속된다. 


작가의 글 / 노희경
양지바른 언덕에 예쁜 집 하나 있다. 낮은 울타리 안으로는 때깔 고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멀리서 보아도 그 빛이 고운 진달래, 철쭉, 목련 따위들이다. 그 꽃들을 보고 있자면 식구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의 그리움에 젖는다. 어머니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평생 등이 시린 세월 속에서 눈물밥을 지으셨던 어머니. 연수는 어머니가 일생의 단 하루 안주인 노릇을 했던 새집 베란다에 서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새 집 을 지으며 어머니가 손수 꾸민 안방 베란다에도 어느덧 진달래, 철쭉이 피었다. 사월이다.. 어머니 없이 처음 맞는 봄이다. 진달래는 웃을 때 유난히 곱던 어머니의 입술처럼 붉다. '진달래를 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괜한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애. 연수야, 언제든 마음이 심란하거든 너도 엄마방에 와서 진달래를 보렴.'  해마다 봄이면 진달래를 화분에 옮겨 심으며 쓸쓸하게 웃곤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아끼던 진달래 화분 하나가 이제 막 기우는 노을빛을 받아 은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김인희, 그녀 나이 이제 57세. 연수는 조용히 어머니가 아닌 한 여자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 결혼하기 전엔 한 집안의 딸로서 얼굴도 희미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했고, 결혼 후엔 신혼 초부터 객지로 떠돌던 손님같은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던 그 여자의 고독. 그 공허한 시간들을 오직 가족들을 위해 더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으로 환원시키고, 스스로는 봄날 날리는 벚꽃처럼 산화해버린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자. 부질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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