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상륭 '평심(平心)'

clint 2024. 2. 21. 11:28

 

 

1. 유정() 존재의 중력장.

묵자가 시계 바늘을 뗌으로써 추상적인 공간이 창출.

등장인물들이 존재 중심축들을 말하다.

절대 진리를 찾으며 우주의 안전을 찾는 로이.

남편의 죽음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왈튼 부인,

명상을 통해 자아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려는 앤더슨.

세 인물들이 서로 만나며, 각자의 인식체계가 펼쳐진다.

2. 무정()

반복되는 일상. 끝나지 않는 하루. 시간과 육의 중력.

3. ()

누구의 죽음이 아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죽음.

죽은 왈튼이 묵자의 신호에 일어나 그의 생을 반추하며

체험된 죽음의 순간을 이야기하다.

왈튼의 코러스(사진 액자를 속에 있는)는 그들의 장례식에,

부패해가는 그들의 시체에 놀란다. 영들의 움직임.

4. ()

시간의 틈조차 깨어진 상태. 축소된 우주- 진공 묘유.

인물들이 공에 닿아 또 하나의 우주를 창출한다.

5. ()

일상(존재의 무명)으로 돌아오는 과정.

돌아오는 동안의 인물들의 파열과 진동.

6. 평심()

북 카페의 문학 낭독회. 생명의 새로운 순환

 

 

 

박상륭 작품 세계 속에서의 「평심(平心) 최정우(드라마터지)

박상륭의 잡설이 품고 있는 중심 문제를 단순히 '죽음'이라는 개념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다. 그 광대한 잡설이 끈질기게 포착하고 있는 죽음은 단지 인간 적 상황의 한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인간 조건의 가장 날카로운 극단이며 따라서 박상륭의 문학은 지금까지 계속 그 극단의 벼랑에 존재 전체를 던짐으로써 역설적으로 삶 그 자체를 드러내 주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이 달성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성과에 힘입어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의 극단을 통해 삶 일반을 다시 다르게 사유하는 방법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곧 박상륭의 글쓰기는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렸던 마음의 우주를 다시 우리에게 되찾아 주려는 메시아 콤플렉스의 화현(化現)이었던 것이다. 이 메시아로서의 패관은 <평심>의 첫 세 단편들을 통해 서점 주인의 옷을 입고 이전의 탈역사적이고 신화적인 공간으로부터 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래쪽, 곧 우리의 동시대로 내려온다. 최선(最善)의 해탈에서 시작하여 차선의 선택까지 들려주는 방향으로 서술된 <티베트 사자의 서>처럼, 우리가 삼세(三世)를 굽어보는 보살을 만나게 되는 곳은 바로 그렇게 하강하고 있는 서술의 곡선, 그 잔인할 만큼 절대적인 자비로움 안에서이다. 곧바로 윤회의 사슬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다시금 몸을 입어 태어나게 되는 유정(有情)들에 대한 지극한 측은지심, 이것이 바로 정신이 견디기 힘든 광포한 세계를 던져주었던 메시아가 이제는 아래로 내려와 보살이 되고 예수로 전신하여 서점의 고객들인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이유이다. 우리가 어떤 신적(神的)인 내려옴을 '강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마도 그 내려옴(Untergang)은 차라투스트라의 것이 아니라 저 보살의 것으로 돌려야 할 것이고 또한 그것만이 진정 '강림'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언제나 강림은, 문학은, 연극은 끊임없는 대화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 공간으로 나누어진 무대에 수학자 로이와 여배우인 왈튼 부인, 명상가 앤더슨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아를 이해하려 한다. 로이는 숫자로 세상의 원리를 파헤친다. ‘5+31=7. 51+3=7’ 손가락 개수와 같은 5, 우주를 나타내는 숫자 1, 그리고 더하기와 빼기의 조화, 순서가 바뀌어도 더하고 덜함이 없는 항상 같은 값을 가져다주는 이 수식에서 로이는 잠시 완벽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 왈튼부인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자아분열 현상을 겪는다. 그는 갑자기갈매기’(안톤 체홉)니나를 연기하는가 하면날자, 날자, 날아보자꾸나” (이상의날개)를 외치며 팔을 퍼덕인다. 또 자신의 손을 문득닭발로 인식하는 등 해체주의적 관점을 드러낸다. 앤더슨은 왼쪽과 오른쪽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혼란을 겪는다. 극적이거나 설명적이지 않지만 배우들의 몸짓과 상징적 이미지가 독특한 색채를 전해주는 연극이다.

 

박상륭 작가

 

문학인들도 그 바닥 모를 깊이를 두려워하며 오직 경배를 바칠 뿐이라는 박상륭 문학, 과연 그의 문학의 무엇이 겁 없는 연극인들을 끌어들일까? (박상륭 소설에 대한 연극계의 도전은 1997 '뙤약볕' 이후 두번째다.) 그것은 아마도 박상륭 문학의 세가지 화두라고 할 수 있는 '' '말씀(언어)'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는 바로 연극이, 특히 현대 연극이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세가지 숙제일 수도 있다. 막상 올려진 공연은 원작 소설들로부터는 한걸음 비켜서 있다. 각각의 단편 소설에서 이름을 따온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무대 역시 박상륭 문학의 어둡고 끈적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밝고 아늑한 현대적 일상에서 출발한다. 다만 무대 한편에 벗은 남자의 시신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누워있으며 잘 살펴보면 무대 바닥은 몇 권의 거대한 책들이다. 절대 진리를 꿈꾸는 물리학자 로이, 남편을 잃은 여배우 왈턴 부인과 화투패를 들여다보고 있는 명상가 앤더슨 부인은- 아마도 이들은 '말씀' '' '마음'일 수도 있을 텐데 - 서로 밀고 당기며 덧없는 생명체들의 중력장을 이룬다. 그러다가 이내 '나비의 날갯짓' '폭풍'을 일으키며 카오스 속에서 생명은 자기조직화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생명과 죽음의 순환(有情無情)이 전개되고 그 순환 속 어느 순간엔가 '평심(平心)'이 이루어졌다가는 이내 다시 허물어지는 것이다.노자와 장자, 상대론적 물리학들이 뛰노는 연극은 원작 이상으로 난해하다. 인물들의 씨줄도, 윤회의 날줄도 아직 혼란스럽다. 다만 아름다운 것은 어린애와 같은 천진한 접근으로 '말씀'을 넘어 ''을 통해 '마음'에 다가가려고 했던 연출자의 은근한 노력이며, 빛났던 것은 배우들이 집요하게 건져낸 신체 언어들이다. 북 클럽의 전화벨이나 관객석에 앉아있던 은유적 '박평심'씨의 피살, 옷 바꿔입기 같은 연극적 재치도 심상치 않다. 김방옥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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