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슈테판 안드레스 '우리는 유토피아'

clint 2023. 10. 14. 10:53

 

슈테판 안드레스라는 독일 작가를 아시나요?

노벨문학상을 지명됐지만 2차세계대전으로 수상을 못한 불운한 작가로만 알려진 소설가로 한국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은 작가이다. (1968, 세계문학전집에 달랑 한편 우리는 유토피아만 소개됨) 아마도 노벨상을 수상했다면 우리의 독서행태로 봐서 어느 수준의 판매량과 꽤 박식한 평론가, 문학박사들이 호평을 늘어 놓고, 또 그의 작품 대다수가 번역되어 팔리는 호사를 누렸겠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인 대부분 기억 못하고 네이버나 구글에도 달랑 몇 줄 정도 소개되는데 그친다.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찾고 외국사이트도 돌아다니며 주워 모은 내용을 이 블로그에 올립니다.

또 이 중편소설을 문서룡씨가 번역 각색하여 1986년 극단 광대에서 공연하였다.

 

Stefan Andres

 

작가 슈테판 안드레스(Stefan Andres) 1906 6 23일에 독일의 서부지방 라인란트 팔츠 주() 트리이르(Trier)() 근교에 위치한 브라이트 비이스(Breitwies)마을의 방앗간집 9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신학교에서 신부수업을 받다가 중도에서 자퇴하고 전공을 바꾸어 쾰른(Köln) 예에나(Jena). 베를린(Berlin)등 각 대학에서 신학과 고대 게르만어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 이집트, 그리스 등지의 남국들을 두루 여행한 뒤 이탈리아남부의 양지바른 작은 부락 포지타노(Positano)에 칩거해 창작에 들어갔다. 그가 이곳에 거주를 정하게 된 이유는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랬다는 설과 때마침 독일에서 정권을 잡은 나치스의 압박을 피해서 망명을 했다는 2가지 설이 있으나 아마도 둘 다 이유가 된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엔 서독의 라인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웅켈(Unkel)에서 살면서 작가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장·단편 소설들과 여러 편의 시들. 희곡 작품 등 다방면의 장르에서 높은 실력을 과시하며 수준 높은 역작들을 연달아 발표하였지만 역시 중 장편 소설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독일 "팬클럽"의 회원 "독일어문학 아카데미"의 정회원이었다그의 처녀작은 '루치페르(Lucifer) 형제'로 미국에서 에이브라함 링컨상을 받음으로써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뒤 이어서 중편소설 '엘 그레꼬가 종교재판장을 그리다. (El Greco malt den Grossinguisitor 1936)'와 그리고 단편집 '모젤(Mosel)지방장편 아스테리인’ (Der Mann , VOR Asteri, 1938) 희랍어로 쓴 중편 '질투의무덤’(1940), 중편 '우리는 유토피아(Wir sind Utopia, 1943), 장편 '적들의 결혼식’(Die Hochzeit der Feinde 1947), 장편사랑의 시소(Die Liebesschaukel, 1957)', 장편 '샘속의 소년(Dor Knabe in Brunnen, 1953), 장편 '포르틴쿨라토 향한 여행(Die (Reise nach Portincula, 1954)', '시집’(Godichte, 1956), 소설집 (Novellen und Erzdhlungen) 1, 2, 장편 '정의의 기사(Ritter der Gerechtigkeit, 1960)', 장편 '비둘기 탑() (Der Taubentumn, 1965) 일기체(日記)기행문, 이집트 일지(日誌) (Keyptisches Tagebuch 1967), 장편 바보들(Die Dumme 1969)' 등등의 문제작들을 연달아 발표하여 큰 감동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그의 또 다른 작품은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파란만장하게 겪어온 독일민족의 숙명적 역사에서 취재한 거대한 3부작(Trilogie. 작가는 이 작품에다 Romantrilogie. 붙임)' 대홍수(Sinflut )'로 무려 십년이나 걸려 (1949년 착수- 1959년에 완성) 탈고시켰다. 그 제1부 굴속에서 나온 짐승(Das Tier aus der, 1949), 2부 노아의 방주(Die Arche, 1951), 3 '회색의 무지개(Der graue Regenbogen, 1959)'로 이루어진 이 3부작은 독재자에 의한 고난의 시대가 묘사되어 있어 히틀러의 손에 의해 나치즘이 지배하던 무렵의 독일에 관한 역사적인 풍자를 주로 담고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상징적이고도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독특한 그의 예술관이 담긴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서독문단의 대표적인 대작가로서 보다 더 깊고 노련한 완숙미를 보여줄 또 다른 걸작들을 기대하고 있던 중에 장수 경향이 농후한 노인들의 일반추세에 비추어 "불과" 소리가 절로 나는 64세를 겨우 일주일 넘기고 1970 6 20일에 로마에서 애석하게도 서거하고 말았다. 그의 사후 1년뒤에 유작 장편이 된 '쉬네지오스 (Synesios)의 시도(試圖) (Die versuchung des Synesios)' 1971년에 출판되었다. 그가 즐겨 다루는 작품의 주제는 인간이 집단주의의 횡포에 의해 파멸에 직면하는 진지하고도 숙연한 모습의 끊임없는 추구에 있다. 그의 문장은 세련된 기교를 전혀 배제해버린 야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원시 게르만 적인 관능과 기독교적 신비주의가 한데 뒤섞인 듯한 특이한 무드가 넘쳐 흘러, 생생한 맛과 더불어 그가 추구했던 심오한 작품 내용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독자들에겐 결코 쉽진 않지만 작품의 끝부분까지 숨 막히는 긴장과 박진감 속에 흥미를 끌고 가는 참으로 깔끔한 기법을 쓰는 작가이다.

 

슈테판 안드레스는 이 걸작 중편소설로 독일소설가로서의 위대한 명성을 확립하였다. 이 작품 속엔 영적인 풍요로움과 인간다움이 펼쳐져 있고 바로 이점에서 본 작품의 내적인 아름다움과 위대성이 잘 나타난다.” - 알프레드 베버 (Alfred Weber)-

 

제목 자체부터 독특한 본 작품은 1943년 그의 나이 37세때에 발표한 중편소설로 한 인간의 죽음과 실존, 그리고 양심을 다룬 그의 출세작이다. 출간 즉시 나치스 당국의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3,000부가 비밀리에 배본 된 문제작이었다. 오늘까지 원문만으로도 독일 국내외 각국에서 무려 70만부 이상이나 팔려 나갔고, ·불어를 위시한 각국어로 다투어 번역되어 독자를 얻고 있는 현대의 고전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걸작이다. 독일어에 다소 자신이 계신 독자들 (중급 독일어를 마스터한 정도의 실력)께선 뮌헨의 피페르 출판사에서 1943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여러 번 중판으로 거듭 나오는 단행본과 그의 중 단편 작품집 제7(1962년 출판)에 실려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우리나라의 6.25동란과 같이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뼈아픈 시련을 13년전에 먼저 겪은 1937년도 '에스파냐 내란(통칭 스페인 시민전쟁)의 끝 무렵에서 취재했다.

 

스페인 카르멜 수도원

 

이 작품의 주인공 파코 에르난데스(Paco Hernandez)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1-1975)총통파의 해병대 하사관으로 참전한지 얼마 안되어 적군인 인민전선파에 포로로 잡혀 에스파냐 중부에 위치한 어느 소도시의 카르멜 수도원에 수용된다. 한데 그는 바로 이곳에서 '콘살베스’(Consalves)라고 하는 영세명을 받고 수사신부로 수도하다가 성직에 강한 회의를 느끼고 이미 20여년 전에 탈출을 감행했으므로 교회로 부터 파문당했던 사제였던 것이다. 파코의 상대역인 페드로 귀티에레스란 육군중위는 법대를 중퇴하고 시민전쟁에 참전한 무신론자에다가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이 수도원을 점령할 때엔 소위 성직자란 것들은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쓸모없는 인간 기생충들이란 평소의 확신에 따라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성직자들을 학대, 강간, 학살한 현장의 책임자로 그에게 피살당한 넋들의 환영에 밤마다 시달려온 결과로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져 우선 형식적이라도 고해성사를 가져야 하겠다고 어떤 엉터리 사제라도 애타게 찾고 있는 위인이다. 성직에 회의를 느껴 수도원을 탈출해 나감으로써 파문당한 전직 수사신부이자 고해성사 무용론자인 주인공 파코와, 무신론자에다 공산주의자로 성직자를 '인간 기생충시 하여 엄청난 신성모독죄를 저지르고 죄책감에 빠져서 새삼스레 신부를 애타게 찾고 있던 상대역 페드로 중위와의 만남은 참으로 극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주인공 파코는 포로수용소로 돌변해버린 이 수도원에 도착하자마자 너무나도 놀랍고, 한편 감개무량한데다 착잡해서 그랬겠지만 다른 포로들과는 유별나게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페드로 중위의 주목을 끌게 된다. 몇 마디의 평범한 대화 끝에 파코가 바로 자기가 애타게 찾고 있는 '전직 신부'란 사실을 확인한 페드로 중위는 그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면서 어떤 수단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로부터 고해성사를 받아 내려 애쓴다. 파코는 페드로 중위에게 옛날에 자기가 수도하던 방에 다시 배치해달라는 청을 해서 파코는 제 손으로 20여년전에 미리 쇠줄로 썰어 두었다가 스스로 그걸 밀어 제치고 과감하고 소신 있게 탈출했던 바로 그 방에 다시 감금당한다. 파코는 그 방의 천장을 쳐다보자 예전에 탈출하기 전과 똑같이 스며든 빗물에 의해 변색된 멋진 무늬를 다시 발견하곤, "콘살베스 신부'로 이 방에 살던 때의 신앙적 회의와 갈등들을 회상해낸다. 그는 그 당시에 밤마다 이 환상적인 섬나라 즉 기독교도와 이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이 현실세계의 갖가지 부조리와 갈등들이 깨끗이 해결된 바로 그 '유토피아로 건너간다. 하지만 이런 현실도피 적인 그의 마음속의 갈등을 교리학 교수이자 평소에 존경해왔던 다미아노(Damiano)신부에게 고백하자, 그 노신부는, '당신의 섬나라를 지우시요! 아니 다신 거기로 건너 가지 마시요! 아무도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개혁할 순 없소! 하느님이라도 불가능하오!"라고 타이르고 나선 참신앙을 결론적으로하느님은 유토피아를 향해 우리들을 끌고 올라만 가시는 게 아니요. 그보다는 오히려 그 분이 이 눈물 젖은 땅으로 거듭해서 내려오시는 거요. 왜냐면 이곳엔 끝없는 가난과 한정 없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요. 하느님은 이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거요.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유토피아요! 하지만 그건 이미 완성된 게 결코 아니고 아직도 생성도중이요!" 하며 콘살베스 신부(파코)의 신앙이 지나치게 내세관 또는 피안성에 치중하는 걸 경계시키고 차가운 현실세계에서 성직자가 가져야 될 정신적 자세문제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던 것이다. 한데도 불구하고 콘살베스 신부가 끝내 카르멜 수도원을 탈출하겠다고 당돌하게 고집하자, 그는 하는 수 없다고 단념한 후 떠나가는 애제자에게 단정적으로, '하지만 당신은 당신 인생수첩에서 남은 마지막 수표 한장만은 '참사랑' 만을 위해서 발행하시요! 당신 자신에게가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요! 하고 당부하고 나서 끝으로 콘살베스 신부를 축복해준 뒤에 콘살베스군! 당신은 카르멜 수도원 안에서 죽어야 할 숙명이오!” 라고 단언한 후에 자신의 탈출을 눈 감아준 일이 생각난다. 그 은사의 말이 지금 와선 꼭 무슨 예언처럼 신통하게 들어맞아 그렇게 황급히 도망쳐 나갔던 바로 그 방에 이번엔 전쟁포로로 끌려와 재차 감금당한 파코는 참으로 착잡한 감회에 빠져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페드로 중위는 파코에게 특식에다 칼까지 곁들여 들고 들어와 파코의 환심을 사려 한다. 식사도중에 페드로 중위가 긴급한 용무 때문에 잠깐 방을 비운 사이에 파코는 바로 문제의 그 예리한 나이프를 제 바지속에다 감춘다. 파코는 자기와 아군 포로 2백명을 탈출시킬 열쇠로 바로 그걸 사용키로 결심했던 것이다. 식사가 대충 끝난 후에 빈 그릇을 챙겨간 적군 상사는 칼이 없어진 줄 눈치채지 못 한다. 잠시 뒤엔 포성이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차차 가까이 들려온다. 아군이 진격해온 결과 적군이 후퇴 기미가 역력하게 전세가 유리해진 것이다. 페드로 중위는 수도원 서고에다 책에서 읽은 대로 카톨릭교회의 격식에 맞게 고해실을 꾸며 놓고 파코를 불러들인 후에 자기의 고해성사 집전을 강요한다. 파코는 자유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가운데 자의 반 타의 반 그 부탁에 따를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흑심을 품고 성스러워야 할 고해실에 들어간다. 페드로 중위는 상관으로부터 이미, “그 수도원 부근까지 적군이 몰려가니 아군은 부득이 후퇴해야 해! 따라서 적군 포로 2백 몇명은 그들의 전력증강에 도움을 주게 할 순 없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석방시킬 게 아니라 전원 학살한 뒤에 신속히 후퇴하라!"는 잔혹한 대량 살육 작전명령을 받아 놓곤, 마음속에서 우러난 진심의 회개도 없이 순전히 형식적인 고해성사만 받아내려고 그곳에 들어가는데 반해, 파코는 파코대로 자기를 성직자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페드로를 속이고 성스러운 영대로까지 띠고서도 자기의 생명과 아군포로 2백 몇명을 살려내기 위해서 페드로의 목숨을 노려 칼을 품고 거기로 들어간다. 숨가쁜 두 사람의 각각 다른 내외심의 대결 끝에 파코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해병대 군인정신'은 물러가고 그 자리에 '성직자'가 차지하게 된다. 파코는 중심으로 회개한 죄 많은 젊은이 페드로의 영혼을 구원해주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페드로 중위는 제가 저지른 엄청난 죄를 처음엔 순전히 형식적으로 고해하기 시작했지만 어느 덧 자기 죄에 겨워서 파코의 바짓가랭이를 쥐고 그쪽 편의 동의를 구하느라고 무릎을 강력히 쓰다듬다가 제 손바닥을 파코가 숨겨 들어온 예리한 칼끝에 찔리고 만다. 파코는 이 순간에 다미아노 신부의 예언을 회상해내고 선 칼을 포켓에서 꺼내어 테이블위에다 내던져버리고 선, “, 당신을 사죄시켜준 직후에 당신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단 말이요! 아군 포로 2백 몇명을 탈출시키기 위해서죠.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됐소! 우리 둘 사이엔 천사가 나타났소. 이 모든 게 사람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된 거요! 하고 오히려 페드로 중위를 위로해준다. 페드로 중위는 말로선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만치 깊은 감동을 받았으므로 파코에게, '좀 더 고해할 게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선, “신부님 이건 군사비밀에 속합니다만 신부님 측 포로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후퇴하란 특명을 받았소! 하지만 마땅히 죽어야 할 제 목숨을 살려주신 신부님만은 다른 포로들과 달리 대우해서 목숨을 구해드리고 싶소.” 하고 자기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하려 하지만 파코는 단연코 그 제의를 거부하고 집단학살이 기다리고 있는 지하식당에 내려가 전우들과 함께 적군의 중기관총 세례속에 학살당하고 만다.

 

스페인 내전 사진

 

이 작품의 창작시기는 히틀러 치하의 제3제국이 이미 쇠망기에 들어가 패전의 기미가 뚜렷해져 현실 세계에선 국가민족의 장래가 매우 암담하던 1940년대의 독일에서 유토피아 소설이 한참 유행하던 무렵에 출판되었다. 이런 '유토피아'는 인류가 원시시대 이래로 지내온 영원한 향수이자 동경이다. 그런데 인간이 구축했던 공동사회가 여러 이유로 갑자기 무너져 내리고 기존 질서가 파괴된 후에도 새질서가 미처 확립되지 못하고 혼란스런 시대엔 인간들의 마음은 너나할 것 없이 누구나 고향 없는 설음속에 빠져들게 마련인 바로 그 상당한 순간에 이런 이상향을 공상하고 동경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유토피아'는 이 지상에 불행하게도 실존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다미아노 신부의 입을 빌어 작가 안드레스가 우리에게 토로한, '당신은 카르멜 수도원안에서 죽어야 할 숙명이오!"란 경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당연히 가야 할 방향감각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겐 각자의 좌표를 정립시켜줄 세계관이나 인생관, 신앙관 확립에 하나의 해답으로 제시되어도 마땅한 말이 될 것이다. 고되고 짜증스런 현실에 쉽사리 실의하거나 좌절감에 휩쓸려 안이하게 '유토피아' 만을 통상하는 나약해 빠진 현대인에겐 '지금의 현실. 현재의 직장이나 가정에다 굳건히 뿌리를 박고 긍정적으로 갖가지 어려운 문제와 정면대결해야 한다."는 노신부 다미아노의 주장은 우리들 모두에게 하나의 큰 교훈이 될 것이 틀림없다.

프랑코 총통파의 해병대 하사관으로 참전했다가 적군인 인민전선파 군대에 포로로 붙잡힌 파코는 20여 년 전에 벌써 신앙에 회의를 품고 카르멜 수도원에서 탈출함으로써 카톨릭교회에선 이미 파문당한 행위로 보나 적군을 칼로 찔러 죽여야 내가 살고 아군이 살아나갈 수 있다는 마음속의 살의(殺意)로 보아서 이미 성직자일 순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카톨릭교리에 의하면 그는 실제로 신부 서품을 받은 이상 사제자격을 지닌 영원한 성직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긴급시에 한한다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신부의 직권을 당연히 행사할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제의 직권을 가진 동시에 또한 한 사람의 군인인 것이다. 성직자의 직분을 모독해서라도 2백 몇명의 아군 포로들을 구출해 내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자기를 성직자로 굳게 신뢰하는 적군장교의 고해성사를 집전해 주고 그의 죄악에 물든 영혼을 구제해주는 대신 아군포로 2백 몇명의 목숨과 그에게도 단지 하나뿐인 생명을 희생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중대한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파코는 싫던 좋던 간에 이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우리 현대인 모두가 뭔가 뚜렷이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각종 압력 하에 무방비 상태로 항상 노출되어 외로운 결단을 재촉 당하고 있는 것과도 매우 흡사하다. 논리적이거나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엔 틀림없이 저울대는 대단히 불균형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한쪽 저울대 위엔 단 한 놈의 흉악한 집단학살범이 올라 앉아있는데 비해 다른 편엔 2백여 명의 사람들 목숨이 달려 올라 앉아있다. 그들의 유무죄를 떠나 여하튼 비중은 2001이다. '도대체 고해자가 마음속에 새로운 흉행할 뜻을 품은 채 행하는 고해성사가 과연 어떠한 신학적인 의미가 있겠는가? 고해 받을 신부가 고해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신성스러워야 할 고해실에 과연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성직자들이 판결토록 그들에게 숙제로 넘겨줘 버릴 일이지만 그런대로 파코의 선택은 여러가지 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안될 수 없겠다. 어떤 어려운 상황 하에서 든 간에 타인을 살해한 결과로 내가 사는 편보다. 스스로 상대방에게 피살되는, 즉 남을 위해서 내가 희생당하는 쪽을 택한 사나이의 당당하고 숙연한 태도 앞에 독자들은 다시 한번 소설 전체를 처음으로 되돌아가 음미하게 되고, 소설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소설을 앞에 놓고 논의할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제기될 것이며,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도 각자의 냉정한 이성에서 우러나올 판단이 없을 수 없으리라. 파코는 성직자 답게 자기 한 목숨을 '참사랑'의 제단(祭壇)에 희생시켜 페드로 중위의 병든 영혼을 구원해 주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실천한 건 그런 데로 뜻이 깊은 일이지만, 이백 몇명의 동료포로들까지 도매급으로 과연 사형장으로 끌고 간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할 지, 없다고 봐야 할 지에 대한 논의는 참으로 단정하기 곤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여간 파코는 다미아노 신부의 예견대로 현실세계 속에서 '유토피아"를 발견, 인식하고 제 인생수첩의 마지막 한 장뿐인 수표를 '사랑' 만을 위해 즉 남을 살려주기 위해서 때어주고 자기는 카르멜 수도원 안에서 죽어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속세에서의 유토피아를 그려 수도원을 탈출했다가 거기서 그걸 발견하는데 실패하고 다시 수도원에 돌아와서 바로 그걸 발견하고 여기서 죽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