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톈샤오웨이, 주주 공동작 '윌리엄과 나'

clint 2023. 7. 27. 12:31

 

이보다 잘 엮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본 적 있는가?

2021년 갑자기 툭 튀어나와 중국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윌리엄과 나>는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심오한 개념도, 신기한 형식도, 포스트 어쩌구 하는 미사여구를 표방하지도 않고, 400년 전의 영국으로 되돌아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내면을 추적하여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 인류의 문학이 올림푸스 산이라면 셰익스피어는 제우스라고 했던가,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며, 동서양을 막론한 현대 연극의 출발점이었던지라, 그의 작품이 끊임없이 연극이나 영화의 소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의 생애 또한 수많은 창작자들의 영감의 근원이 되어왔다. 잘 알려진 것만 꼽더라도,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 in Love)>, 드라마 <업스타트 크로우(Upstart Crow)> 등이 있고, 그를 아예 가상의 인물로 보는 시각을 담은 <위대한 비밀(Anonymous)> 같은 영화도 있다. 이 작품들도 모두 실제와 상상을 결합하여 나름의 방법과 시각으로 이 극작가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과 나>는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도와 성과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21장으로 구성된다. 여자 둘, 남자 둘로 이루어진 이 네 명의 배우는 서술자와 극중인물을 수시로 자유롭게 드나들며 윌을 포함하여 50명이 훌쩍 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윌의 일생에 있어서의 주요사건과 작품이 지어지게 된 사연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우리의 눈앞에 늘어놓는다. 어린 윌이 무대에 잘못 올라갔다가 연극과 인연을 맺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의 지지를 받고 집을 떠나 혼자 런던에서 생활하는 이야기, 도제의 신분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마침내 극작가의 포부를 펼쳐내는 이야기를 거쳐서, 후원자들을 만나고 여왕을 접견하며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하고, 극장이 불타고 아들이 죽고, 결국 만년에는 실의에 빠져 은퇴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윌의 일대기와 그가 자신의 주요 작품들을 짓게 된 경위와 사연들이 마치 두루마리 그림처럼 한 장면 한 장면씩 독자와 관객의 눈앞에 펼쳐진다. 각 장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고, 서술자는 전지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 선택은 러닝타임도 길고 등장인물도 많고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나 관객이 길을 잃지 않고 스토리 전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와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복원하여 구현해냈다. 순수하게 서술자와 배역들의 대사를 통해 엘리자베스 여왕시기 영국사회의 상층 귀족과 일반 대중들, 그리고 연극종사자의 생활상이 스토리를 통해 마치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재현된다. 스트랫퍼드 마을이 보이고, 각지에서 몰리든 떠돌이 인생들로 들끓는 런던 시내가 그려지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본업에 충실한 극작가와 배우들 같은 연극종사자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또한 런던타워, 런던 브릿지, 타이번 처형장 등에서 행하여진 공개처형, 교수형과 참수형, 잔혹한 고문들, 페스트의 대유행 등 작품이 그려내는 당시의 생활상이 거대한 화폭처럼 펼쳐진다. 여왕과 그 주변의 귀족들, 대주교, 극장주들, 윌리엄에 앞서 명성을 날리던 극작가 말로와 그린, 후배극작가들, 유명 연기자들, 그리고 윌리엄의 가족들 등 그 나라 그 시대 전공자들이 아니라면 이름을 들어보기도 쉽지 않았던 수많은 인물들이 쉬지 않고 등장했다 사라진다. 50명이 넘는 인물은 "갈색 피부의 유나"를 제외하고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유나는 셰익스피어가 지은 154편의 소네트 가운데 127번 이후에 등장하는 "검은 미인"에서 가져온 인물이다. 시대와 인물을 몽땅 가져다 풀어놓았지만 어마어마한 정보량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그 이유는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그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고유의 표현을 반복한다. 그것도 매우 유머있게. 호사스런 모자를 자랑하는 그린, 세상의 끝에 닿아본 말로, "주께서 말씀하시길"을 반복하는 대주교, 윌의 싸구려 반지에 집착하는 여왕, 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거는 족족 내기에서 이기는 사우샘프턴 백작, 일거수일투족이 '불에 데인 것" 같은 악덕 극장주 헨슬로,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이 백조 같았던 유나까지, 그 많은 인물들에게 꼬리표처럼 붙은 이 표현들에 또 이 반복되는 표현들이 이 기나긴 극본을 읽어나가게 해준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상당 부분은, 바로 셰익스피어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대사를 가지고 셰익스피어의 일생을 재구성하였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료는 이 극작가의 지명도나 영향력에 비해 많이 부족해서, 그의 일생에 대해서, 또 작품의 창작상황에 대해서는 고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400년 전 영국의 작가와 영국의 사회상, 인물들의 군상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옮겨다 놓았다.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포함하여 당시 상황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들을 퍽 많이, 정성껏. 공들여 읽은 것 같다. 소소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있음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결과 시공을 뛰어넘어 윌리엄과 삶과 작품들, 그리고 그 시대를 모두 작품과 무대에 구현해 놓았다. 자료가 증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마치 중국의 <삼국지연의>가 그 시대의 역사 그대로가 아니듯이. 이것을 중국에서는 예부터 "허와 실"을 결합한 창작이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작가의 진정한 작업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과거 윌리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에게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여기에서 작가의 창작담을 들어보자. (작가 텐샤오웨이와 주주(朱珠)는 부부이자 협력자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다. 톈샤오웨이가 극작과 연출과 연기를 겸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터뷰는 텐샤오웨이가 대표로 했다.) 톈샤오웨이는 중국 현대극의 메카인 중앙희극학원연출학과 출신으로(00학번) 졸업 이후 수십 편의 공연 제작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남의 작품을 각색, 연출해온 터라, 창작극 제작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모처럼 맞이한 창작극 제작의 기회를 아예 연극인으로서는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인물인 셰익스피어와 마주하기로 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이미 4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대에 그가 겪었던 삶의 기복과 무대를 대하는 감정은 바로 자신과 중국 연극인들이 겪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꼈고, 이에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감정이입과 동일시가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이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의 이야기가 된 것이고, 따라서 제목도 <윌리엄>이 아니라 <윌리엄과 나>가 된 것이다.

 

 

윌리엄을 연기하는 배우도 한 사람이 아니다. 배우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윌을 연기한다. 윌의 일생을 유년, 청년, 중년, 노년 시절로 나눠서 한 사람이 한 시기의 윌을 맡는다. (공연할 때는 누가 원인지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의상에 공을 들였고, 각 시기마다 조끼나 재킷, 망토 등을 이용해서 구별했다.) 이 방식은 우리 모두는 누구나 월이 될 수 있다는, 이 작품의 궁극적 취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배우는 여자와 남자 각각 두 명씩이니, 성별의 제한도 두지 않았다.

정성껏 차려 놓은 윌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되어 그저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작가는 촘촘하게 짜 놓은 윌의 이야기라는 그물 속에 독자도, 관객도 빨려 들어와서 같이 복작거리며 거리 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였다. "어떤 배역을 연기하며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당시 그 순간의 장면에 집어넣고, 그 작품들과 대사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표현하는 것이었다."(텐샤오웨이의 인터뷰에서)

 

텐샤오웨이(田曉威)

 

 

작가는 또 윌리엄이 살았던 시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환경사이에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예술의 정치권력이나 자본 권력과의 관계, 작가와 독자의 관계,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 꿈을 이루려고 수도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꿈을 이뤄가기도 하고, 수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며 표류하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걸핏하면 공연장을 닫아걸게 만들어던 전염병까지. 독자들은, 관객들은 이 장면들이 더 이상 먼 나라 멋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음을 느낀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등장하는 모든 인물 누구에게서도 절대적 인 선과 악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다른 어느 작품들과도 다르게, 셰익스피어의 머리 위에 주인공의 후광을 씌우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게 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하지만, 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우리와 똑같이 평범하게 태어나고 자라서,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고, 곤경에 처하고, 비굴해지고 타협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독자는, 관객은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윌에게 가까워지고 공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이 작품이 반복해서 던지는 명제와 질문이 나에게로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이 세상은 무대이고 나는 배우다. 내가 살아가는 이 연극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