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신철욱 '불의 신화'

clint 2023. 5. 29. 14:07

 

어느 날 현직 공안검사가 참혹한 주검으로 늪속에서 떠오른다.

그의 이름 강영진, 그는 왜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

어린 시절 강영진의 친구였으며, 동료로서 함께 검사생활을 해 오던 박진우 검사는

그의 사인을 추적해 나간다.

박 검사는 신원미상의 불가사의한 인물인 문달수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강 영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달수는 왜 정신이상자가 되어야 했을까?

그리고 강영진은 왜 문달수를 찾아갔을까?

박진우 검사는 죽은 강영진 검사와 문달수의 주변수사를 계속해 나간다.

그와 함께 희생당한 흔들이 등장해 피 어린 역사를 증언한다.

강영진은 과거에 공안검사로서 김승일이라는 민노련의 청년을 가혹하게 고문한적이 있었다.

박진우 검사는 강영진의 친부 김영수가 과거에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것.

그의 아들인 김승일이 바로 문달수이며, 강영진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강영진은 태생의 비밀을 모르는 채 김승일을 고문했고

후에 자신의 태생과 뿌리를 찾아 이복동생인 김승일(문달수)를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과거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되었으며

같은 핏줄임을 모르고 있은 김승일은, 강영진이 김승일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고문하던 때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발적으로 강영진을 살인한다.

빨치산의 아들 강영진은 우리시대에 있어서 과거 역사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박진우 검사는 분단조국의 비극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 무고한 희생자들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글 신철욱

1. 모든 가치가 모든 이념들이 무너지고 있다. 쾌도난마하던 모든 입장들이 궤멸되고 있다. 마치 세상은 굉장한 대폭발 속을 아우성 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던 주의주장들이 빛을 잃고 이제 사람들은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못한다. 어디에선가 일어난 엄청난 일들에 분노하기 보다는 그저 멍하니 입만 벌리고 계속해서 묻는다. 그게 사실이냐고.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 세상 모든 일에 무감해진 사람들은 이제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고 한눈도 팔지 않으며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걸어가기만 한다. 지치고 찌들리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팍팍한 가슴패기엔 한점 눈물조차 솟아나지 않는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어두운 그들 속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기만 한다.

2. 어떤 연극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원래 어린애들은 타인의 마음에 들도록 언제나 고분고분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억압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행동한다. 권력의 횡포가 거의 일상화되면서 사회의 모순에 대한 의식은 마비되고 사람들은 뭔가를 실천할 용기를 잃어간다. 무력해진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연극을 보여줘야 한가? 결국은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 같은 역사였다.

3. 이 작품을 쓰면서 다시 돌아본 우리의 자취는 바람이 지나간 흔적과도 같았다. 이제는 깨어진 포석과 허물어진 벽과 매서운 한기만이 남아있는 아무것도 없는 빈 터, 누구에게나 잊혀지고 누구에게나 버림받고 이제는 한겨울의 침묵만이 남아있는 공간이 우리가 걸어온 길이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거리를 차갑게 감싸 도는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우리들의 과거를 의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4. 언제나 머물지 않는 그리움처럼 투명한 시간들이.. 바위 틈에서 한 방울씩 솟아나던 물방울이 거대한 물결로 용솟음치듯 도도한 시간들이....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피고름 같은 시간들이.... 우리들의 곁을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시간의 풍화 속을 살아남은 자들의 창백하고 빛 바랜 시간들이 우리 곁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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