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작)은 92- 94년 최장기 베스트 셀러 소설이다. 격렬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와 상상을 뛰어 넘는 극적 전개로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는 이 작품은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94년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그에 연극으로 올려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원작을 뛰어 넘어 한층 밀도 있게 살린 각색(김광림작가)으로 경쾌함과 속도감을 보여주고, 연출은 이호성이 맡았다.
최고의 인기남자 배우를 납치한 한 젊은 여성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여주인공 강민주는 여성문제 상담소의 전화 상담원이기도 하다. 학대받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전화상담 사례를 접하면서 그녀는 남성들의 폭력에 대해 증오하게 되고 결국 남성에 대해 응징을 결심한다. 응징의 대상으로는 당대의 가장 주목받는 영화배우 백승하를 택한다. 자신의 보디가드처럼 일을 돕는 황남기의 도움으로 백승하를 납치한 그녀는, 백승하를 아파트에 가두어 놓고 이른바 길들이기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강민주는 백승하와의 연극연습을 계기로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작가의 글 – 양귀자
“모든 금지된 것은 유혹이고 아름다움이다. 죽음조차도” 소설 속에서 강민주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도록 했을 때, 나는 은밀한 선동가였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나는 결코 선동가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 명백한 증거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내가 바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가란 함부로 결론을 내리거나 과격한 주장을 외치기로는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은 존재들이다. 작가는 다만 이렇게 묻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가, 떠오를 수 있는가. 드러낼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동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아니, 과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개인사에는 전혀 개입한 적이 없는 낯선 욕망이고 충동이었음에도 그랬다. 여태까지의 은밀함과 우회하는 말투로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교활한 억압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이 사회의 두터운 무감각을 깨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하나의 소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결과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속의 강민주였다. 나는 내게 금지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을 강민주로 하여금 행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런 다음 우리 모두가 함께 인간으로서의 "소망" 지금 강민주는 나에게서 떠나긴 했지만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강민주가 만들어졌다. 이제 강민주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을지를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연극은 소설이라는 장르와는 달리 순간순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객석과 무대를 관통하는 숨결은 세기에 따라 강민주는 수시로 변신하고 우리를 감동시킬 것이다. 강민주란 인물의 세계를 단순하게 읽어버리지 않기, 우리 모두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여린 심정의 목숨들임을 망각하지 않기, 이 정도의 마음가짐만 있다면 무대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한 준비는 충분할 것이다. 모든 금지된 것은 유혹이고 아름다움이니까.
각색의 글 - 김광림
작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읽었을 때의 풋풋한 내음과 <천마총 가는 길>에서의 숙연한 느낌. <희망>의 가슴 벅찬 기쁨, 그리고 <숨은 뜻>에서 살아있는 예술혼을 잊지 못한다. 좋은 작품을 읽고 그에 공감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 벅찬 기쁨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또한 그러하다. 흔히, 오늘날 여성의 모습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가장 종합적이고도 심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와 그들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는 이 사회에 만연된 남성중심적 사고와 그 문화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의 산물이다. 한 성에 의한 다른 성의 억압과 착취가 이루어지는 문화는 결코 올바른 문화일수 없다. 이른바 새로운 사회운동의 물결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시각의 접근 없이는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의 극복도 한낮 허울좋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문제는 분명 새로운 사회와 해방된 인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인간회복운동의 맨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각색에 임하면서 먼저 성의 대결이나 우월을 가리는 것보다 이 사회의 두개의 성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각자의 몫을 동등하게 제시하며 살아가자는 작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힘없는 외침이 아니다. 대립이 아닌 조화, 증오가 아닌 아래의 길을 찾는 노력.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사랑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강민주, 백승하, 황남기 이 세 사람의 모습 속에서 우린 인간의 영원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존재가치인 사랑을 확인한다. 연극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은 바로 이 세 사람이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원작의 강렬한 언어를 적극적으로 살리면서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보여질 수 있도록 장면을 구성해 보았다. 배우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는 배우 그 자신이다. 배우 자신이 연출을 맡고 혼신의 힘을 쏟는 젊은 연기자 세 사람이 어우러졌기에 이 연극에 거는 기대 또한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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