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폰팔이. 이름은 사강이. 2003년에 태어난 월드컵둥이.
홍명보의 슛이 골대를 가른 날 바로 그날 내가 생겼대.
맞아. 학교에서 핸드폰 파는 삐끼 새끼. 걔가 나야.
설마 아직도 날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핸드폰 바꾸려면 나한테 와야지.
공짜폰 그냥 준다니까?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어?
알잖아. 나 정직한 사람인 거. 정말이야. 죽지 못해 판다니까?
묻지 마. 공짜라구. 아이는 아이폰, 어른도 아이폰. 아가씨 아저씨 갤럭시 사가지.
그래. 다들 안 믿는 거 알아. 안 바꿔도 정말 괜찮아.
어차피 다들 핸드폰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잖아.
다들 나한테 오게 돼 있잖아. 학교가 수익모델인데. 안 그래?
근데 있지. 나, 요새 이상해. 학교 가는 게 무서워. 부끄러워.
학교에서 한마디도 안 하는 애.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애. 나만 아는 애.
자꾸만 니가 눈에 들어와서. 널 알게 되고 자꾸만 내가 부끄럽고 그래.
니가 보고 싶고 그래. 만지고 싶고 핥고 싶고 그래. 일하기 싫고 그래.
너 지금 어디 있니? 아무 말 말고 전화 받아. 민아.
사강이와 민이는, 학교가 마치면 옥상에서 만난대.
만나자마자 얼싸안고 키스 한대. 매일 같이. 매일? 같이? 벌써 네 시간이 지났대.
거짓말처럼 시간이 흐르고, 저녁이 되면, 그때서야 말한대. 아니, 묻는대.
나는 무슨 맛이야? 지금 여긴 어디야? 나 맛있어? 나 어떡해?
사강이는 겨우 대답한대. 몰라. 아까 내가 없어졌던 것 같아. 미치겠어.
죽을 것 같아. 민이는 속삭여. 우리 도망가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강이는 아무 말도 없이, 민이를 바라봐. 제발 이 지옥에서 나를 꺼내줘.
제발. 옥상 위에 햇빛은 오늘도 뜨겁지. 우리 몸은 오늘도 뜨겁지.
<폰팔이>는 2003년생 월드컵둥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이가 어른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그러니까 ‘진짜 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청소년 연극이다. <폰팔이>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살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연극은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파는 사강이가,
그러니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말단에 밀려나 있는 청소년 비정규식 영업사원이
스마트폰을 팔지 않기를 선언하는 아주 자그마한 이야기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일을 멈추게 된 이유이다.
키스를 알고, 섹스를 알고, 사랑을 알고, 아픔을 알고 나서
사강이는 어제와 같은 시간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배우고 사강이는 살아있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를 선택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영광과 함께 잉태되었지만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는 학교에서 사강과 민은 기어코 서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마취되어 있는 이 시간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감각하려 한다.
사강이의 마지막 대사처럼, “무서운 걸 무섭다고 할 줄 알”고,
“부끄러운 걸 부끄럽다고 할 줄” 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살아있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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