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상범 '착란'

clint 2023. 5. 16. 16:14

 


「착란錯亂」은 「청문聽聞」의 연작이다. 
「청문」이 외부의 다자적多者的 시점에서의 추궁이라면, 
「착란」은 내부의 단일 시점에서의 공격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청문이다 보니 일관성이 없다.
 ‘나’의 정신은 오락가락한다. 
세상이 어지러워서 그런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한다. 
당당한 듯 도피처 찾기에 바쁘다. 비굴하다 싶다가도 이내 측은해진다. 
한심해 웃음이 터졌다가도 나름 정신 부여잡고 

온전히 살아보려는 몸부림이려니 톺아보면 돌연 숙연해지기도 한다. 
착란이라니. 정신을 부여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흐려지는 고통이라니. 
깨어 있으려 몸부림치는 영혼의 숙명이라니. 
인생 참 잔인하다. 잔혹하다. 
그렇다고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작가의 글 - 이상범
미친 사람이 건강하다                                 

  나는 나다.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그도 아니다. 나는 나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하나다. 아니다. 나는 하나가 아니다. 그도 아니다. 나는 하나라고 할 수도 있고, 여럿이라고 할 수도 있다. 뭐가 이렇담. 그러니 환장할 수밖에. 미칠 수밖에. 하루도 정신이 온전한 날이 없다. 평안한 날이 없다. 누군가 나를 잡아 철창에 가두지 않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냉정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엄격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날카로울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잔혹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이렇게 다정해도 되는가.
              나는 나에게 이렇게 자비로워도 되는가.
              나는 나에게 이렇게 너그러워도 되는가.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무심해도 되는가.
              나는 나에게 이렇게 방심해도 되는가.
              나는 나에게 이렇게 나약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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