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진수 '아! 선각자여'

clint 2016. 6. 27. 20:47

 

 

 

춘원 이광수의 생애를 기록극 형태로 쓴 작품임
<선각자여>는 이광수의 일대기이다. 그의 친일 행각이 반드시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존속을 위한 심오한(?) 것인데 그 본의를 몰라 주는 세속적인 민중들에 대한 작가적 변명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시각을 달리하면 인물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서 이광수라는 인물 해석을 새로운 접근을 통해 시도한 이재현의 원작은 그만한 선각자적 행적이 다듬어지지도 않은 두루마리식 서사 형식인데 이광수의 친일 행적도 극적 모티브가 뚜렷한 것이 아니고, 이광수를 보는 작가의 시각도 뚜렷하지 않아서 대본 심사과정에서는 연출가 이효영의 솜씨에 무대공연의 성과가 맡겨진 채 통과되었던 것이다.


이효영과 가교의 이승규는 몇 년간의 미국 체류기간에 수련되었을 연출 능력으로 해서 우리 연극계의 기대주임이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민중극단의 <선각자여>는 대본의 미비점이 연출력으로 커버되리라는 여망 아래 연극제 참가작품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재현· 정진수 공동작업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더니 마침내 개막은 정진수 연출로 고정하였다. 그 사이에 극단측 사정은 있었겠지만 공연 비용을 타내기 위한 공적인 극단 활동으로서는 지나치게 ‘공작적’이라는 인상을 풍긴 <선각자여>는 마침내 작가와 연출가 사이에 개작 문제를 놓고 또 말썽이 되었다. 그것은 개작의 선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와 함께 작가가 개입하지 않은 연출가의 개작이 저작권 침해냐 아니냐의 문제로 확대된다. 작가 이재현은 민중극단의 연습 도중에 한 번도 연출가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 막이 오른 <선각자여>는 20여 명의 등장인물을 5명으로 줄인 정진수의 작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정진수 교수가 1972년도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곧장 연극현장에 뛰어들어 연출 활동을 시작한 것도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다. 잘했든 못했든 난 연출 활동을 하면서 무엇보다 희곡을 중요시 했다. 연륜이 쌓이면서 더러 무대적 상상력도 늘었을지는 몰라도 난 지금도 연출 활동이란 무엇보다 좋은 희곡을 찾아서 공연을 통해 이를 소개한다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해 오고 있다. 그래서 희곡을 열심히 읽었고 작품이 좋다고 느끼며 한국의 관객들에게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작품들을 골라서 열심히 무대에 올리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현대 영미 희곡 작품들을 주로 많이 번역해서 연출해 왔고 대개는 당시에 주목 받는 신작들을 많이 공연했다. 우리 창작극이기 때문에 공연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해서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창작극 연출도 해왔다. 다만 창작극을 연출할 때에는 연출에 앞서서 희곡을 먼저 손봐야 한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사연들로 해서 모여진 작품이 한 여섯 편이 넘자 책으로 꾸며보기로 한 것이다.

 

 

 

작가의 말

춘원의 반민특위에의 체포, 조사과정을 지켜본 어느 인사는 춘원의 훼절을 안타가워하며 이렇게 통탄했었다.
차라리 상해에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차라리 붓대를 꺾어버렸거나! 차라리 서대문 형무소에 있을 때 죽어버렸거나!  차라리 보석으로 의전병원에 입원했을 때 죽었거나! 차라리 금강산으로 휴양갔을 때 깊숙이 들어가 중이나 되었거나! 이 말을 인용하는 뜻은 이 연극을 만들면서 역사에 대하여 얻은 내나름의 느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은연중 과거 역사에 있었던 일들을 불가피했던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이번에 춘원의 행적을 더듬는 가운데 가장 절실하게 느껴진 것은 그 암담하고도 강압적인 시대속에서도 그가 친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자유가 주어져 있는가. 그의 모든 행동은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나 역시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새삼 책임감이란 것을 되느낄 수 있었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나의 행동이란 없어 보인다. 동시에 이 연극을 하면서 인간 춘원에 대한 커다란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게는 참으로 특이한 면이 있어 보였다. 그는 한번도 행동을 주저한 적이 없다. 그 보다도 훨씬 못한 인물들이 단지 한 번의 부작위에 의하여 역사에 애국자로 기록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였는데 반하여 춘원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김윤식씨의 이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 항상 행동으로 줄달음쳤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서 그에게서 거인다운 풍모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한가지 이 연극을 하면서 느낀 것은 춘원만큼 우리 최근세사에 유명한 인물도 드물건만 그의 행적에 대한 충실한 기록마저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부족하고 단편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춘원에 대한 허구만은 단정적, 편파적 견해들이 나올 수 있었음에 대하여는 놀라움과 씁쓸함이 따른다. 그러나 '문학사상' 에 연재중인 김윤식씨의<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필자특유의 해설을 접어둔다면 내가 접한 가장 충실한 고찰이었다. 춘원에 대한 가장 큰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가 우리 민족의 열등성을 입증하려한 일제의 식민지사관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정신을 가진 인물치고 자기가 살았던 시대와 사람에 대하여 비관을 말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던가. 그들은 한결같이 시대의 반역아였었다. 나는 결코 춘원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민족이 진정 자유와 독립을 구가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오늘 이 시대를 돌아보아도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뿐이다. 이 연극은 이재현의 원작을 토대로 했으나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자의적인 윤색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자료에 의하여(그 자료들의 신빙성은 알 길이 없으나)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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