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 박근형
알고 보면, 인류의 모든 불행은 과대망상에서 비롯됐다.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히틀러의 야심도, 탈아시아를 넘어 전 인류를 일본화하겠다는 천황의 꿈도 어쩌면 모두 과대망상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또 좁게는 성공에 대한 미련, 사랑에 대한 집착, 삶에 대한 불행도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은 과대망상이다. 이 작품은 현실에 동화되지 못하는 두 인간의 과대망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도소를 나와 한번 대차게 인생을 살아보자는 계획 아래 꿈을 안고 세상의 거친 파도에 뛰어들지만 그들의 꿈은, 세상에 대한 야심은 모두 과대망상이며 그 끝은 불행과 절망이다. 삶은 보편적이며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어쩌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 희망은 있다. 그러나 이변은 없다.
<삽 아니면 도끼>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보면 인물간의 대사가 지나치게 예의바르고 인정이 넘친다. 교도소 문을 나서는 아들과 맨발의 대화나 아들의 출소 마중에 늦은 가족들이 화난 아들을 달래는 모습은 다른 작품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장면이다. <삽 아니면 도끼>의 가족은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면서 왜곡된 현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들 가족은 희망 없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너무도 많은 것을 쉽게 쉽게 받아들인다. ‘九星 장군' 맨발을 영화감독으로 받아들이고 가짜 영화감독인 그를 또 쉽게 사위로 받아들인다. 그를 찾아온 아내와 아이는 큰 갈등 없이 그들의 새식구가 된다. 막내딸의 순정을 빼앗은 맨발의 정체가 밝혀져도 가족들은 오히려 맨발을 위로해주고 가족의 일원이 되어달라고 비상식적으로 매달린다. 가해자와 피해자, 범죄자와 결백한 자의 입장이 뒤바뀐 적반하장의 상황에서 미천한 인물들이 나누는 서로를 존중하는 대사나 태도는 우습고 어이가 없다. 웃음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한데 박근형 극의 웃음은 독특한 면이 있다. 엉뚱한 상황과 인물들의 예의바른 대사와 배려는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풍긴다. 엉뚱하게 왜곡시킨 비정상적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모습과 충돌시키는 것. 그리고 그 충돌의 지점을 아주 기발하게 만들어냄으로써 발생하는 재미가 그의 웃음의 제조법이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인물들의 '일상은 관객의 기대나 연상을 파괴한다. 연상의 파괴에서 웃음이 유발될 수 있는데 이러한 웃음과 함께 빠른 장면 전환이나 감각적인 박근형의 감각적인 대사의 힘은 관객들에게 판단을 내릴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난해하다. 논리적인 세계가 아닌 때로는 비상식적이며, 황당하며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세계, 영화감독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은 세계, 진실과 거짓의 구분으로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되는 세계, 기껏해야 죽기 밖에 더 한 세상, 알면 재미없고 모를수록 신나는 세계이다. 그래서 그의 극은 언제나 재밌고 흥미롭다. 그리고 하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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