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덫에 걸린집'

clint 2016. 6. 16. 12:07

 

 

 

문예진흥원 추천 창작희곡으로 선정된 바 있는 작품이 『덫에 걸린 집』이다.

희곡작가 정복근씨의 작품으로 한 중산층 가정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폭력으로 인한 문제에 무기력하게 대처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비굴과 회피, 방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현대의 에고이즘과 무관심을 질타하는 문제작이다.

 

연극적 인연으로는 잘 맺어지지 않을 듯한 작가 정복근과 연출가 임영웅이 이 작품을 축으로 서로의 세계에 진폭을 더한다. 가정문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의식이라고 말하면 거창해지지만 작가는 밖으로 목소리를 높이려 하고 연출가는 안으로 소리를 다져들이려 하는 긴장이 <덫에 걸린 집>의 연극적 재미다. 이 작품에서는 역사의 세 가지 정점에서 성폭행과 도덕이라는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시키는가를 보여준다. 아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질문한다. 작가는 질문하려 들고 연출은 그저 보여주려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비겁과 교활이 보여지는 것 자체도 괴롭고 부끄러우며 질문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고문처럼 아프다. 우리가 역사 속에 묻어 버렸던 과거의 망상-임진왜란 때 왜놈들의 손에 붙들려 능욕당했던 여인들의 수모와 차단됐던 그녀들의 가정 복귀-사이에 독묻은 칼날을 번뜩인 성모럴이라는 가치체계의 허구성은 일제시대의 이른바 ‘정신대’라는 이름의 희생양이 된 여인의 경우에도 해당되고 급기야 현대사회의 철면피한 가정 파괴범들의 성폭력이라는 구조적 모순 속에도 엄존한다. 당연히 피해를 본 여성들은 역사에 대해서, 사회구조에 대해서 항의해야 하고 그 항의가 부끄럽고 고통스런 기성의 역사와 사회는 여전히 외면하며 없었던 사실로 덮어두려 한다. 없었던 사실로 얼버무리려는 음모가 무대 정면에서 진행될 때마다 극중에서는 한의 가락인 구음(口音)이 역사와 사회의 신음처럼 울려 퍼지고 사막(紗幕) 뒤로 제물인 여인이 일어나 간증을 한다. 그녀가 ‘어머니’라는 사실로 해서 우리 시대의 피해 당사자인 ‘아내’와 ‘남편’ 및 ‘시누이’ 사이가 너무 인위적으로 꾸며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차피 작가에게 있어서 성폭력의 희생자들이 여인뿐이라는 사실이 날카롭게 고발되어야 한다면 그런 희생자의 고통과 소외와 함께 근거 없는 도덕적 규범으로 지탱되어 온 결혼제도라는 남녀의 관계나 사회구조의 모순을 보여주어야 하는 연출가의 의도는 기성 가치관의 도덕률에 얽매인 인간군상을 그저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극단 산울림의 앙상블은 믿을 만하고, 작가세계는 치밀하고 연출의 흐름은 절제되어 있다.

 

 

 

 

정복근

연극_ < 여우>, <자살나무>, <태풍>, <도깨비 만들기>, < 산 넘어 고개 넘어>, <밤의 묵시록>, <실비명(모욕)>, < 위기의 여자>, <검은 새>, <지킴이>, <덫에 걸린 집>, <웬일이세요 당신?>, <독배>, <표류하는 너를 위하여>, <숨은 물>,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첼로>, <이런 노래>, <덕혜옹주>, < 박씨전>, <얼굴 뒤의 얼굴>, <세종 32년>, <나, 김수임>, <나운규-꿈의 아리랑>, <배장화 배홍련>, < 짐>, <나는 너다>

수상 연보
1976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여우>
1978 제2회 흙의 문학상 <태풍>
1989 제26회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실비명>
1994 제18회 서울연극제 희곡상(‘이런 노래>
1997 제23회 영희연극상 수상
2008 제16회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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